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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지난 국토여행기 1 - 남도의 땅끝으로 봄마중을 가다1

by 장돌뱅이. 2012. 6. 26.

이런저런 사정으로 다른 곳에 올렸던 지난 국토여행기 몇편을 옮겨보고자 합니다.
멀리 떠나와 살다보니  국토에 대한 그리움이 절실해 질 때가 있습니다.
지난 여행을 다시 읽어보며 아내와 함께 행복했던 그 시간으로 잠시 돌아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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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 사자봉의 아침>

*위 사진 : 땅끝 전망대에서 본 일출

절기상으로는 입춘이 지났지만 아직도 겨울은 술래잡기 놀이를 하는 개구쟁이처럼 뒤뜰
응달진 곳에 웅크리고 숨어 있다간 느닷없이 소리를 지르듯 달려 나와 풀린 강물과
서둘러 피어난 꽃망울을 놀라게 하곤 한다.

그런 날이면 아직 갈무리해 두지 않은 두터운 외투를 다시 꺼내 입고 어깨를 웅크린 채
‘봄이 와도 봄이 온 것 같지 않다’(春來不似春)는 상투적인 옛 시구를 여러 번 떠올려야
했다. 우리의 봄이 ‘꽃도 없는 오랑캐땅’(胡地無花草)과 같을 수는 없지 않느냐고
구시렁거리기도 하면서.

좀 더 일찍 봄을 보고 싶어 꼬박 밤을 새워 남쪽으로 차를 몰았다. 그러나 국토의 최남단
해남군 송지면 갈두리의 이른 새벽에도 겨울은 여전히 만만찮은 기세로 남아 있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문을 열자 송곳같이 매서운 바람이 날카롭게 옷 속으로 파고들었다.
어두운 계단길을 걸어 땅끝인 사자봉으로 향했다.  


*위 사진 : 땅끝 마을의 아침

높이가 100여 미터에 불과한 사자봉이지만 오를수록 바람은 거세졌다.
정상에 오르자 다도해의 섬들이 눈에 들어왔다. 검은 실루엣의 섬들은 여명이 스민
무채색의 바다에 정지된 풍경으로 떠있었다. 섬과 섬 사이로 붉은 기운이 짙어지는가싶더니
아침 해가 떠올랐다. 별로 공덕을 쌓아본 일이 없는 터에 어디서건 온전한 해돋이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언제나 행운이고 행복이다. 바람은 수그러들지 않았지만 첫 햇살이
바다를 건너 내게 전해오면서 천천히 얼었던 몸이 풀려옴을 느낄 수 있었다 


*위 사진 : 땅끝탑

상징이 없으면 우리는 형편없이 초라해질 거라고 누군가 말한 적이 있다.
해돋이를 보면서 지구의 자전이 만들어내는 반복적인 자연현상일 뿐이라고
무덤덤해진다면 세상이 얼마나 삭막하고 가난해지랴.

아침노을은 새로운 시작과 희망스런 설레임의 가치를 더해 더욱 가슴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먼 길을 달려 온 아내와 내게 땅끝도 이름처럼 ‘세상끝’의 절박함이나 비장함의 의미가
아니라 새로운 봄이 시작되는 원초적인 공간으로 생명과 기쁨 그리고 부활의 싱싱한
기운이 넘치는 장소였다. 

   이곳은
   우리나라 맨끝의 땅
   갈두리 사자봉 땅끝에 서서
   길손이여
   토말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게
   ...<중략>...
   수묵처럼 스며가는 정
   한 가슴 벅찬 마음 먼 발치로
   백두에서 토말(土末)까지 손을 흔들게
   수천년 지켜온 땅끝에 서서
   수만년 지켜갈 땅끝에 서서
   꽃밭에 바람일 듯 손을 흔들게
   마음에 묻힌 생각 하늘에 바람에 띄워 보내게  
                       -땅끝탑에 새겨진 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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