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국토여행기 1 - 남도의 땅끝으로 봄마중을 가다2

<달마산 미황사(達磨山 美黃寺)>

땅끝을 나와 해남군 송지면 달마산 기슭의 미황사로 향했다. 절로 오르는 길 주변은
제법 초록이 가득하다. 서둘러 봄이 온 것이 아니라 한 겨울에도 그 빛이 변치 않았을
난대성 상록수들이기 때문이다. 숲 속엔 차가우면서도 맑은 아침 기운이 서려 있었다.

절 마당에 서서 돌 기간 위에 우뚝한 대웅보전을 올려보았다. 단청이 없어 수수해 보이지만
처마 밑을 받치는 다포의 모양새가 정교하고 화려해 보인다. 지붕 너머로 칼바위 연봉을
세운 달마산의 능선도 장관이다. 아침 햇살이 산 정상의 바위 사이에서 부챗살 모양으로
갈라지며 절 마당에 내려앉았다. 옛날 풍랑으로 표류해온 송나라 사람이 달마산을 보고
“해동 고려국에 달마명산이 있어 그 경치가 금강산보다 더 낫다 하여 구경하기를 원하였더니
이 산이 바로 달마산이구나” 하며 찬탄을 했다더니 과연 늠름하고 아름다운 산이다. 

*위 사진 : 미황사 부도탑

절 마당을 지나 오른편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 부도밭으로 향했다.
미황사를 찾는 즐거움에서 가장 큰 것을 숲 속의 부도밭과 그곳까지 가는 오솔길이라고 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 글 때문에 ‘동백나무와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바닥에는 산죽이나 진달래 등이
섞여 자라는 숲속길’(답사여행의 길잡이)을 예상하였으나 생각보다 길은 널찍하게 트여 있었다.
자연에 대해서만큼은 반듯하게 다듬고 깔끔하게 손질하는 것이 반드시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는
점에서 다소 실망스러웠지만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길옆 초록 숲을 보며 걷는 호젓함에서
그나마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위 사진 : 부도탑에 조각된 다양하고 소박한 문양들

절터에서 멀찍이 떨어진 미황사의 부도밭은 요란스럽지 않으면서도 소담스럽다.
고승들의 사리나 유골을 간직한 부도에서 풍기는 경건함이나 묵직함 대신에 미황사의
부도들에선 유독 평화스러움과 살가움이 진하게 느껴진다. 아마 부도에 새겨진 앙증맞은
조각들 때문일 것이다. 미황사의 부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세월의 풍화로 닳아진 거북이와
새, 물고기, 새 등의 자그마한 문양들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런 은밀함의 발견은 마치
어릴 적 소풍에서 보물찾기 놀이를 할 때처럼 짜릿함을 맛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