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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함덕19

제주 함덕 31(끝) 어제 오드랑 빵집에서 남겨온 빵으로 아침을 하고, 청소를, 짐 정리를, 숙소 주인과 작별을 했다. 다시 멀리 한라산을 바라보았다. 늘 같은 곳에서 바라보아도 보이는 모습은 그때그때 다르다. 오늘은 선명한 외곽선이 드러나 있지만 구름에 가려 아예 보이지 않을 때도 많다. 보이면 보이는 대로 안 보이면 안 보이는 대로, 선명하건 흐리건 그 모든 모습의 총체가 한라산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생을 살아가는 나의 모습이 그런 것처럼 . "한라산아 안녕! 한 달 동안 늘 창밖에 있어주어서 고마워!" 제주도에 올 때 공항에서 우리를 맞아주었던 아내의 친구 부부가 고맙게도 다시 숙소에서 공항까지 차로 태워 주었다. 그들은 앞으로 2개월 이상을 더 제주에 머무를 예정이다. 그들에게 남은 시간이 부러운 한편으로 집으로 가는.. 2022. 11. 18.
제주 함덕 25 아침마다 자리에 엎드려 만화 읽는 재미에 빠졌다. 제주살이를 마칠 때까지 계속될 듯하다. 최규석의 『습지생태보고서』는 비가 오면 물이 새는 지하 단칸방에서 자취하는 가난한 대학생 네 명과 사슴 한 마리(?)의 이야기다. 만화는 가난을 미화하지도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죄악시하지도 않고 그냥 가난하게 사는 청춘들의 '리얼궁상'을 보여준다. 비루할 때도 허황된 꿈을 꿀 때도 보는 사람은 웃음이 나온다. 나도 비슷한 젊은 시절이 있었던 것도 같다. 어제 치맥 모임 하고 남은 떡볶이로 '아점'을 했다. 오후엔 아내와 함께 올레길 19코스인 조천만세동산에서 (육지와 가장 가까운 곳이라는) 관곶을 지나 신흥리까지 걸었다. 나 혼자 아침 산책으로 이미 파악한 길이어서 아내를 안내하기가 수월했다. 바람은 불었지만 푸근한.. 2022. 11. 12.
제주 함덕 24 밤사이 제주에 온 이래 처음으로 비가 내렸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길이 젖어 있고 베란다에도 비가 들이친 흔적이 있었다. 하지만 날이 새면서는 비가 더 오지 않았고 하늘이 걷히며 햇볕이 반짝 돋아났다. 올해 제주는 10월에 11일부터 31일까지 21일간 계속해서 비가 내리지 않았다. 이는1973년 이후 10월 연속 무강수일수 역대 2위 수준이라고 한다. 11월 들어서도 비가 내리지 않는 날이 이어지면서 현재 한 달 가까이 비가 내리지 않고 있다. 여행하기는 더없이 좋았다. 마스크를 하고 돌아다녔더니 뺨에 자국이 남을 정도였다. 하지만 길어진 가을 가뭄으로 힘들어진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오후에 아내의 친구와 옆방 지인을 초대해서 치맥을 하기로 해서 오늘은 12시까지만 빈둥거리기로 했다. 간단히 아침을 먹.. 2022. 11. 11.
제주 함덕 23 베란다에 나가 한라산 사진을 찍고 들어와 책을 읽다가 아침산책을 빼먹었다. 어제 "아베베"에서 사 온 크림빵과 커피로 아침을 먹고도 편한 자세로 소파에 기대 계속 책을 읽었다. 아내의 허리를 고려하여 오늘은 멀리 가지 않기로 했다. 점심을 "싱싱촘맛집"에서 하기 위해 함덕해수욕장에서 버스를 탔다. 세 정거장을 이동하여 함덕비석거리 정거장에서 내려 걸어갔다. 회덮밥과 한치물회를 먹었다. 한치는 제철이 아니라 냉동 한치를 사용한다고 했다. 그래서그런지 회덮밥이 더 입맛에 맛았다. 식사를 하고 앞갯물에서 신흥리까지 걸었다. 바다에서 살짝 벗어나 대부분 마을과 밭 사이를 걷는 길이었다. 도중에 양파를 심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경기도에서 내려와 12년째 제주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부부가 함께 여행을 .. 2022. 11. 11.
제주 함덕 21 새벽에 숙소를 나섰다. 함덕 해변을 통해 서우봉으로 향했다. 서우봉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 일찍 출발을 한 것이다. 오후에 아내와 함께 서우봉을 걷기 위해 사전답사를 겸한 아침 산책이기도 했다. 서우봉(犀牛峰)은 올레길 19코스 '조천-김녕 올레'의 일부이다. 올레길을 통해 함덕 동편의 북촌리까지 가서 돌아올 때는 버스를 이용할 생각이었다. 서우봉에 오르면서는 자주 뒤를 돌아보게 된다. 함덕 해안의 모습이 높이에 따라 다르게 보이기 때문이다. 여명 속의 돌아본 아침 바다는 특별히 차분했고 멀리 한라산은 더욱 의젓한 것 같았다. 올레길은 서우봉 정상에 오르지 않고 에돌아 지난다. 북촌리 바다가 눈에 들어오자 이미 바다 위로 솟아 오른 아침 해가 보였다. 긴장과 대립이 없이 하루를 시작하고 계절을 만드는 자연.. 2022. 11. 10.
제주 함덕 20 아침 함덕 해변을 걸었다. 기온은 다시 온화해지고 바람도 한결 잦아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오드랑 빵집에서 어니언 베이글을 사다가 버섯수프와 함께 먹었다. 제주살이가 10일 정도 남았으므로 이제부턴 냉장고 속의 식재료를 줄여나가야 한다. 점심엔 며칠 전 아내의 친구가 사다준 갈치를 꺼냈다. 재료가 워낙 싱싱한 터라 그냥 프라이팬에 구웠을 뿐인데도 여느 갈치구이 전문식당의 맛에 뒤지지 않았다 제주시 용담동에 있는 용두암은 해외여행 자유화 이전, 제주도가 신혼여행지로 각광을 받던 시절에 제주 인증샷을 찍는 장소였다. 신혼부부의 집들이를 갈 때마다 벽에 걸린 용두암 배경의 사진을 볼 수 있었다.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가지 못한 나는 아내에게 빚처럼 남아 있는 곳이기도 했다. 세월이 지나 아내와 용두암을 찾았을 때.. 2022. 11. 9.
제주 함덕 19 제주에 와서 한 번도 거르지 않았던 아침산책을 나가지 않았다. 날이 더 추워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누워서 조천읍도서관에서 빌려온 (만화)책을 읽는 맛이 좋았기 때문이다. 한껏 게으른 자세로 있다가 옆방의 지인이 준 감자를 삶아 아침으로 했다. 나는 간장게장을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지만 아내는 매우 좋아한다. 검색을 해서 간장게장을 먹으러 갔다. 며칠 전 아내가 평소에는 외면하던 해장국을 다분히 나를 위해 먹으러 나선 것과 같은 이유다. 부창부수(夫唱婦隨)와 부창부수(婦唱夫隨)의 공존이다. "제주동문 간장게장"의 게장은 적절한 염도와 달작지근한 게살로 그런 나를 영락없는 밥도둑으로 만들어 놓았다. 초로의 주인아주머니 혼자서 운영하여 조용하고 아담한 분위기도 좋았다. 식당을 나와 관덕정으로 가는 길에 동문시장.. 2022. 11. 9.
제주 함덕 18 간밤에 바람이 많이 불었다. 기온도 많이 떨어졌다. 여느 때처럼 반바지 운동복 차림으로 아침 산책을 나가니 종아리에 감기는 공기가 서늘했다. 함덕 해변의 모래에는 밤새 강한 바람에 지나간 흔적이 잔물결처럼 남아 있었다. 이 정도라면 한 겨울에는 바닷가 집과 상가로 불어닥치는 모래바람이 장난이 아닐 것 같았다. 해변 전체를 비닐로 덮는 월동 준비가 이해가 되었다. 제주 시내에 나가 점심을 했다. 돌하르방식당에서 각재기국으로 먹었다. 며칠 전 숙소 근처 함덕촐래식당에서 처음 먹은 각재기국은 아내와 나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연하게 푼 된장과 초록의 배춧잎이 어우러진 각재기탕은 통영의 봄철 음식 도다리쑥국에서 쑥 향기를 뺀 맛처럼 슴슴하고 은근했다. 식탁 위에는 다진 마늘과 매운 양념장이 있었지만 아내와 나는 .. 2022. 11. 7.
제주 함덕 17 전형적인 가을 날씨. 티끌 하나 없는 하늘 아래로 한라산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어제 아내의 지인이 같은 숙소 옆방에 체크인을 했다. 함덕이 처음인 지인을 위해 아침에 빵집 "오드랑"에서 마농바게트를 사 오며 우리도 같은 것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그로 인해 한동리에서 언덕과 들길을 따라 행원포구까지 걷는 것으로 평소보다 조금 늦은 아침 산책을 했다. 길은 밭담을 끼고 휘어지며 오르내렸다. 마치 오래간만에 고향을 찾아가는 듯한 따뜻한 감성이 샘솟는 길이었다. 그렇듯 걷는 일은 숨어있는 내면의 길을 찾는 일이기도 하다. 길옆 표지판에 박노해의 글이 쓰여 있었다. "마음아 천천히 천천히 걸어라. 내 영혼이 길을 잃지 않도록." 세화포구 근처 연미정에서 전복밥을 먹었다.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은 식당이고 음식이었다.. 2022. 11.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