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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제주 함덕 31(끝)

by 장돌뱅이. 2022. 11. 18.

어제 오드랑 빵집에서 남겨온 빵으로 아침을 하고, 청소를, 짐 정리를, 숙소 주인과 작별을 했다.

다시 멀리 한라산을 바라보았다. 늘 같은 곳에서 바라보아도 보이는 모습은 그때그때 다르다. 오늘은 선명한 외곽선이 드러나 있지만 구름에 가려 아예 보이지 않을 때도 많다. 보이면 보이는 대로 안 보이면 안 보이는 대로, 선명하건 흐리건 그 모든 모습의 총체가 한라산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생을 살아가는 나의 모습이 그런 것처럼 .

"한라산아 안녕! 한 달 동안 늘 창밖에 있어주어서 고마워!"

제주도에 올 때 공항에서 우리를 맞아주었던 아내의 친구 부부가 고맙게도 다시 숙소에서 공항까지 차로 태워 주었다. 그들은 앞으로 2개월 이상을 더 제주에 머무를 예정이다. 그들에게 남은 시간이 부러운 한편으로 집으로 가는 것이 좋기도 했다.  

집으로 왔다. 아침에 빵 몇조각 먹고 아무것도 먹지 않은 탓에 배가 고팠다.
제주공항에선 사람들이 너무 많아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고 서울에 와선 아내에게 빨리 누울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주기 위해 귀가를 서둘러야 했다. 급한 대로 라면부터 끓였다. 라면은 김치와 조합만으로  최고의 맛을 냈다.

짐을 다시 해체하고 밀린 우편물을 열어보았다. 앞집에 사는 손자 또래의 어린 친구와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저녁엔 집앞 거리에 나가  칼국수집과 고깃집과 마트와 치킨집과 카레집과 태권도 도장과 수학 학원과 초등학교와 복권명당과 생맥주집과 횟집, 국민은행과 제일은행과 파리바게트와 스타벅스와 베스킨라빈스를  지나 도서관까지 산책을 해보았다. 여전히 그곳에 있는 그들이 아늑한 안도감을 주면서 또 얼마큼은 진부해 보이기도 했다.

호접몽(胡蝶蒙)이었던가? 장자(莊子)는 꿈에 나비가 되어 즐겁게 되어 유쾌하게 날아다니며 자신이 장자라는 걸 깨닫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꿈에서 깨어나자 자신이 나비인지, 나비가 자신인지, 자신이 나비의 꿈을 꾼 것인지 나비가 자신의 꿈을 알기 어려워했다.

제주라는 '나비의 꿈'에서 돌아온 지금 내게 제주는 꿈만이 아니고 이곳이 현실만도 아닌 것 같다.
꿈과 현실, 양쪽을 넘나들며 아내와 오래 그 경계를 걸어가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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