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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제주 함덕 29

by 장돌뱅이. 2022. 11. 16.

윤태호의 만화 『로망(老妄)스』은 노인들의 일상을 과장되게 표현한 좌충우돌과 걸찍한 성적(性的) 이야기들로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24시간 내내 진지하게만 어찌 살랴. 가끔씩은 재미도 북돋으며 살 일이다. 나보다 먼저 읽은 아내는 "어휴, 능글능글 해. 딱 당신이 좋아할 만화네" 하며 도리질을 했다.

'한 번은 가볼(해볼)만 하다'는 말은 한 번도 안 해도 괜찮은 일이라고 한다. 나도 그 말에 긍정하는 편이다. 하지만 두 번까지는 필요 없고 정말 한 번 정도는 해도 괜찮은 일이 있는 것 같다. 함덕의 고집돌우럭 식당이 내겐 그렇다. 지난번 처음 방문 때 배가 고픈 데다가 오래 기다린 끝이어서인지 정신없이 먹은 식당이어서 제주를 떠나기 전 복습을 해 볼 식당으로 꼽았다.

기다림이 길고 인터넷 예약도 쉽지 않아 식당문 여는 시간에 맞추어 아점을 먹으러 갔다. 사람들이 여전히 많았지만 기다림 없이 자리를 잡을 수는 있었다. 지난번과 같은 메뉴를 시켰다. 맛도 차이가 없었다. 그런데 내가 느끼는 감동은 처음처럼 크지 않았다. 다시 함덕에 온다고 해도 찾지는 않을 것 같은, 한 번 정도는 가볼 만한 식당이었다.

식사를 하고 버스를 타고 이동하여 김녕항에서 구좌해안도로를 따라 동복리까지 걸었다. 한 이틀 꾸물거리던 날씨가 그간의 우중충함을 보상이라도 하 듯 화창했다.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드러난 수평선에선 약간의 냉기를 품은 바람이 불어왔다. 이제 여행도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매일 같이 바다를 보며 지냈음에도 물리지 않았다. 우리는 아까운 풍경들을 눈에 꼭꼭 눌러 담으며 걸었다. 그리고 이번 여행의 마지막 버스 타기를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게으른 자세로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따뜻했다. 음악을 들으며 만화를 읽었다. 오후 늦게 궁금해진 속은 감자를 쪄먹으며 달랬다.

저녁엔 함덕오일장에서 사서 갈무리해 두었던 갈치로 조림을 했다.
두툼한 살은 포슬포슬한 식감에 고소하고 달짝지근한 맛을 냈다. 이번 여행 중 갈치조림과 구이를 각각 두 번씩 해 먹었다. 앞으로 서울 마트에서 갈치를 볼 때마다 이곳의 갈치와 비교를 하며 마땅찮아할 것 같아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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