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손자친구18

달에 갈 수 있다는 듯이 다시 손자 친구들과 보낸 며칠. 매번 그랬듯이 2호와는 "로보카 폴리, 로이, 앰버, 헬리"와 함께 수시로 집에 침입하는 도둑을 잡고, 거실과 방마다 번갈아 나는 불을 끄고, 다친 사람들을 병원으로 실어 나르며 긴박하게(?) 보냈다. 한글용사 아이야와 텔레토비를 좋아하던 2호는 요즘 주제가도 따라부를 정도로 "로보카 폴리"에 빠져 있다. 조만간 "최강전사, 미니특공대"로 관심사가 옮겨 갈 것도 같지만. 실내놀이가 루스해지면 밖으로 나갔다. 자전거를 타고 미끄럼틀을 타고 그네를 탔다. 어린이집 행사로 영문도 모르는 채 입어야 하는 할아버지 세대의 교복과 개그맨 임하룡 스타일의 빨간 양말은 싫어하지만 경찰복은 좋아했다. 어느 옷을 입었건 미끄럼틀에서 내려올 때 뒤에서 나를 들이박으며 까르륵까르륵 고개를 젖히.. 2023. 10. 16.
저하들과 추석 보내기 추석의 유래와 형식은 조상님들께 바치는 제사겠지만 실질은 가족들과, 특히 저하들과 만나는 축제다. 아내와 나는 저하들의 사소한 말과 행동에도 쉽게 감동하고 자지러질 준비가 되어있다. 추석빔을 입은 저하들의 절을 받는 잠깐의 절차가 끝나고 다시 평상복 차림이 되면 저하들은 이내 평소의 권력을 자유롭게 행사하기 시작한다. "새로운 마술을 보여줘요." 하는 최초의 하명에 야심 차게 준비한 마술을 보여주었지만 실패했다. 요즘 1호 저하의 마술을 보는 수준이 여간 아니어서 매의 눈으로 서툰 나의 비법을 쉽게 간파하고 말았다. '깽깽이' 수준을 겨우 벗어난 1호의 바이올린 연주를 참을성 있게 들어주기도 해야 한다. 가끔씩은 연주하는 노래를 따라 부르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한다. 옛날에 즐거이 지내던 일 나 언제나 그.. 2023. 10. 1.
꽃 피어 만발하고 활짝 개인 미래, 그리고 지금 ♬내 평생 소원이 무엇이더냐. 우리 손주 손목 잡고 금강산 구경일세. 꽃피어 만발하고 활짝 개인 그날을 기다리고 기다리다 이내 청춘 다 갔네······.♬ 대학시절, 양희은이 부른 를 처음 들었다. 막걸리 집에서 이 대목을 부를 때 정말 나도 언젠가 흰머리의 노인이 되어 손주 손을 잡고 걷게 되는 날이 올까? 실감 나지 않는 상상을 가끔씩 해보곤 했다. 물론 흰머리와 손주보다는 막연하게 "꽃 피어 만발하고 활짝 개인 그날"을 더 많은 방점을 두었지만. 세월이 흘러 나는 어느덧 노래 속 흰머리 노인이 되었다. 긴 시간을 돌아 제자리로 돌아온 듯 세상은 다시 젊은 그 시절의 암울한 모습을 닮아 있지만 상상 속에 추상이던 손주들은 이제 현실 속 실체가 되어 곁에 있다. 주말 동안 손자들과 놀고 웃고 달리다 왔.. 2023. 9. 25.
친구들이 있다 친구들은 매일 놀고 먹고 잔다. 웃고 울며, 떼를 쓰고 고집을 피우며 하루하루가 다르게 자란다. 떨어져 있는 시간에도 아내와 나는 늘 그런 모습과 목소리를 눈과 귀에 달고 산다. 1호가 내 핸드폰에 메모를 남겼다. "나는 원래 요리사가 될 꺼였다. 하지만 나는 과학이 더 재미있어서 과학자가 될 꺼였는데 내가 수요 축구에서 열 골을 넣고, 토요 축구에서 다섯 골을 넣어서 축구 선수로 바꿨다. 또 다른 이유는 내 모든 슛팅이 강해서에요." 지난 6월 아내와 나는 1호 친구와 태국을 여행했다. 여행 중 1호는 한국의 부모에게 카톡을 보냈다. "엄마 아빠, 오늘 스노클링 했어요. 잘 지내고 있어요? 잘 지내시면 금요일 오후에 만나요. 잘 지내시지 않으면 남은 시간 동안 잘 지내세요." "엄마 아빠, 할아버지가 .. 2023. 9. 2.
비 오는 날의 '손자병법' 장마비가 시작되었다. 손자친구들과 보낸 2박 3일을 마무리하는 날. 아침에 큰손자의 등교길에 함께 했다. 하교를 하면 할아버지가 집에 없을 거라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면서도 한번 더 확인을 한다. 못내 아쉬움이 역력해 보인다. 매번 반복되는 이 순간. 사실 나도 시큰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둘이서 함께 동요를 부르며 걸어갔다.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 우산 셋이 나란히 걸어갑니다. 빨간 우산 파란 우산 찢어진 우산 좁다란 골목길에 우산 세 개가 이마를 마주 대고 걸어갑니다.작은 손자는 비를 핑계로 어린이집을 보내지 않고 집에서 나와 놀기로 했다. 아내는 '횡재'라고 했다. 작은 손자와 나, 둘 다에게 그런 것 같다는 의미다. 큰손자에게는 특급비밀로 부쳐졌다. 차놀이, 낚시놀이, 구슬놀이, 음식놀이, 숨.. 2023. 6. 22.
어쩔 수 없는 일에 너무 속상해 하면··· 1호 손자저하가 돌봄교실의 친구에게 쓴 편지. 예정되었던 파티가 취소되면서 생일 축하(위로?) 편지를 쓰는 것으로 했던 모양, OO아, 생일 축하해. 코로나 때문에 파티는 못하지만 생일을 축하해주고 싶어서 이 편지를 쓰는 거야. 6월 며칠이 생일이야? OO아, 생일 파티를 못해서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어. 우리 엄마가 말했는데 어쩔 수 없는 일에 너무 속상해하면 에너지를 다 쓴대. 그러니 너무 속상해하지 말고 우리 돌봄 교실에서 잘 지내자. 생일 축하해. OO아 사랑해. 글의 내용이 제법 의젓하다. '어쩔 수 없는 일에 너무 속상해 하면 에너지를 다 쓴다'는 말도 눈길을 끈다. 알고 보니 제 엄마가 원래 '어쩔 수 없는 일을 속상해하는데 에너지를 다 쓰지 말라'고 말해준 적이 있단다. 아이들의 기억과 기.. 2023. 6. 10.
빠짜이와 빠떼꿍 손자1호가 지금의 2호 만했을 적 가끔씩 "빠짜이!"라는 외치곤 했다. 어디서 배웠는지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 말을 사용하는 상황을 미루어 짐작하건대 기분이 좋을 때 쓰는 말임을 알 수 있었다. 황당할 때는 가끔씩 자신이 그 말을 해놓고 "근데 빠짜이가 무슨 말이지?" 하고 되물을 때였다. 얼마 전에는 제 엄마와 어떤 문제로 작은 실랑이 끝에 1호가 말했다고 한다. "엄마는 잔소리 좀 그만해요." 딸아이가 되물었다. "너 잔소리가 무슨 뜻인지나 아니?" 1호가 말문이 막힌 듯 사이를 두더니 조금 자신 없는 대답으로 엄마를 웃겼다고 한다. "글쎄?··· 잘 때 하는 소린가?" (아마 잔소리의 '잔'을 '잔다'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급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사실 어른들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2023. 5. 2.
이름 부르는 일 여행에서 돌아와 서둘러 친구들을 만나러 갔다. 작은 친구는 발을 동동 구르며 격렬하게 좋아했고, 그 모습을 본 큰 친구는 자못 어른스럽게 말을 했다. "아주 난리가 났네. 난리가 났어." 잠에서 깨자마자 아직 눈도 뜨지 못한 어린 강아지 같은 얼굴로 내게 안기는 작은 친구와, 도미노(Domino)나 우노(Uno) 등 작은 친구가 함께 할 수 없는 놀이를 기대하는 큰 친구 사이를 오고 가며 일박이일을 지치도록 놀았다. 사실 여행의 거의 모든 순간과 모든 대상에 아내와 나는 친구들을 대입시키고 평가했다. "이 옷이 친구들에게 어울릴까?" "이 음식은 친구들도 좋아하겠다." "친구가 망고를 무척 잘 먹었는데······ 두리안도 먹을 수 있을까?" "여기 수영장은 친구들이 놀기에 좀 깊다. 친구들과는 유아풀에 .. 2023. 4. 27.
나의 친구 나의 저하 손자친구들을 보러 갈 때면 종종 이중섭의 아이들 그림이 생각나곤 한다. 그림 속 아이들처럼 친구들과 꽉 끌어안고 뽀뽀하며 뒹구는 (큰손자와는 이걸 '쌔서미' 혹은 '참기름'이라 부른다) 걸 상상하는 것이다. 큰손자는 '안 돼!' 하며 고개를 모로 꼬고 품 안에서 버둥거리거나 아예 저만큼 도망치는 듯하지만 그건 거부가 아니라 따라오라는, 그래서 그 과정을 더 즐기려는 몸짓이다. 친구 2호가 열이 나서 어린이집을 가지 못해 아내와 내가 출동했다. 아프긴 하지만 1호가 유치원에 간 시간이라 모처럼 둘이서만 오래 같이 있는 시간이 생긴 것이다. 1호는 어렸을 때 아내와 나의 관심을 혼자서 독차지 할 수 있었지만 2호는 그럴 수 없었음에도 더할 수 없이 우리를 따라서 늘 미안하던 차였다. 열이 있고 콧물에 기침도.. 2023. 2.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