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친구들을 보러 갈 때면 종종 이중섭의 아이들 그림이 생각나곤 한다.
그림 속 아이들처럼 친구들과 꽉 끌어안고 뽀뽀하며 뒹구는 (큰손자와는 이걸 '쌔서미' 혹은 '참기름'이라 부른다) 걸 상상하는 것이다. 큰손자는 '안 돼!' 하며 고개를 모로 꼬고 품 안에서 버둥거리거나 아예 저만큼 도망치는 듯하지만 그건 거부가 아니라 따라오라는, 그래서 그 과정을 더 즐기려는 몸짓이다.
친구 2호가 열이 나서 어린이집을 가지 못해 아내와 내가 출동했다.
아프긴 하지만 1호가 유치원에 간 시간이라 모처럼 둘이서만 오래 같이 있는 시간이 생긴 것이다.
1호는 어렸을 때 아내와 나의 관심을 혼자서 독차지 할 수 있었지만 2호는 그럴 수 없었음에도 더할 수 없이 우리를 따라서 늘 미안하던 차였다.
열이 있고 콧물에 기침도 있지만 노는 일과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 친구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잘 놀았다. 대부분의 아이들처럼 2호 친구도 수시로 노는 종목을 바꾼다. 자전거를 타다가 '빠빵차'로, 트램펄린을 뛰다간 공놀이를 한다. 타요버스를 만지다가 경찰차와 구급차를 굴린다. 블록으로 집을 짓다가 악기를 연주하고, 별안간 '꺼꺼' 방에 들어가 '꺼꺼'가 있으면 만져보기 힘든 '꺼꺼'의 애장품 게임 도구들을 만진다. (왜 그런지 2호는 제 형을 '꺼꺼'라고 중국어처럼 발음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형아라고 발음해야 한다.)
아이들의 특징은 같은 놀이나 동작을 지루해하지 않고 반복한다는 점이다.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것은 손자2호가 순간적으로 사라지거나 투명인간이 되는 기술(?)이다.
갑작스레 이 동작을 취하면 아내와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2호를 찾는 시늉을 해주어야 한다.
"어? 우리 친구가 없어졌네? 어디 갔지? 금방 있었는데? 책 밑에 있나? 우유 밑에 있나?"
그러면 어느 순간 친구가 "짜잔!"하며 얼굴을 가렸던 손을 치우며 나타난다.
이럴 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두 팔을 벌리며 과장되게 놀라는 표정을 짓는 것은 정형화된 필수 답례다.
이 놀이를 열 차례쯤 반복한 뒤에는 요즘 막 꽂힌 노래 '반쪽 반짝 작은 별'을 율동과 같이 하자고 한다.
이 역시 열 차례쯤 반복해야 한다. (한 번 해달라는 표시로 친구는 검지 손가락을 코에 댄다. 1호도 어릴 적 같은 동작을 했었는데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도 이런 걸 닮는 건 신기한 일이다.)
아이들과 노는 건 같이 아이들이 되는 일이다.
더 많이 아이들이 될수록 더 고소한 참기름이 더 많이 나온다.
2호는 내게 특별한, 다른 사람에겐 결코 허락하지 않는, 특권을 선물로 준다.
식탁의 친구 오른쪽 옆자리는 나만 앉을 수 있다. 밥을 먹여달라는 것이다. 아내가 앉으려고 하면 손으로 단호하게 밀어낸다. 흘러내린 콧물을 닦아주는 영광에서도 아내는 제외다. 기저귀를 갈아줄 수 있는 황공한 성은은 물론 나에게만 베푼다. 나는 2호가 만든 이 '카스트제도'에서 최상위 브라만계급인지 아니면 노예인 수드라계급인지 헷갈리지만 특권의 소임을 다해야 한다.
아내는 "야 치사하다 치사해"하고 애교섞인 원망을 한다.
아내가 '집에 간다'하면 빠이빠이 손을 흔들지만 내가 '집에 간다'면 고개를 흔들며 안된다고 울상을 짓는다. 언젠가 한 번은 내가 주차장에서 짐을 꺼내느라 아내만 먼저 혼자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갔을 때 2호가 '할아버지'를 부르며 통곡을 한 적도 있다. 아내는 태어나서 받아본 적 없는 구박을 손자들에게 받는다고 어이없어한다. 식구들은 이런 현상을 미스테리로 규정한다. 1호에 비해 함께 지낸 물리적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데도 특별히 할아버지만을 바치는 합리적인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아내와 다정스런 모습을 찍은 위 사진 3장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2호의 차별적 '신분제도'는 요지부동일 것이다. 아내에게 내가 기세등등해지는 유일한 이유이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올 때 아내에게 "친구들의 차별은 당신이 나에게 잘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에둘러 표현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속내를 그야말로 '에둘러' 표현했다가 '찌릿'하는 카톡 이모티콘 같은 아내의 눈총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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