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가족과 국토를 여행할 때면 자주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갖고 다녔다.
책에 나와 있는 문화재나 유적지 앞에서 그 책의 내용을 함께 읽곤 했다. 여행이 한결 풍부해지는 느낌이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그의 말이 문화재에 백지 문외한인 내게 용기를 주었다.
그의 유려하고 유머러스한 글과 세상과 문화재를 보는 안목과 열정, 그리고 탄탄하고 폭넓은 지식을 좇아, 마치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따라 부르듯 책 속 그의 '추천' 장소로 가족들을 안내하기도 했다. 아내와 딸아이는 그런 나에게 '사이비 유홍준'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유홍준의 미를 보는 눈 Ⅲ'이라는 부제가 붙은『안목(眼目)』은 그런 '사이비 안목'을 위해 읽었다. 『국보순례』와 『명작순례』라는 두 권의 '안목 시리즈'가 앞서 나와 있었다. 내친 김에 찾아 읽어볼 생각이다. '시를 쓰는 일보다 어려운 일은 좋은 시를 고르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장르를 불문하고 안목이 중요함을 말하는 것이겠다.
'미(美)를 보는 눈'을 우리는 '안목'이라고 한다. 안목이 높다는 것은 미적 가치를 감별하는 눈이 뛰어남을 말한다. 안목에 높낮이가 있는 것은 미와 예술의 세계가 그만큼 다양하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보통 예술적 형식의 틀을 갖춘 작품을 두고서는 안목의 차이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기존 형식에서 벗어나 시대를 앞서가는 파격적인 작품 앞에서는 안목의 차이가 완연히 드러난다. 서양 미술사에서 쿠르베의 리얼리즘, 마네의 인상파, 반 고흐가 푸대접을 받은 것은 아직 세상의 안목이 작가의 뜻을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후대는 물론 당대에도 그 예술을 알아보는 귀재들이 있어 그들 덕분에 예술적 재평가와 복권이 이루어진다.
책『안목(眼目)』은 건축, 불상, 청자, 백자의 우리의 전통 유물에 담긴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이어서 화론, 평론, 감식, 서화감정, 한국미술사로 나누어 그 아름다움을 알아보고 보존하고 알리려는 '대안목(大眼目)'들을 소개한다. 또한 그 아름다움을 지닌 작품들을 모으고 소장하려는 애호가들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거기에는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민족사적 수난기에 단순히 희귀 미술품에 대한 개인적인 소유의 차원이 아닌 민족의 자존심을 지켜내려는 고결한 의지를 지닌 사람들도 있어 감명을 준다. 개인의 재산을 바쳐 우리의 문화재를 지킨 간송 전형필은 그런 안목과 애국심을 지닌 대표적 선구자다.
도자기는 우리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도자기를 보면서 잘 생겼다, 멋지다, 아름답다, 우아하다. 품위 있다, 귀엽다, 앙증맞다, 호방하다, 당당하다, 듬직하다, 수수하다, 소박하다 등등 여러 감정을 본 대로, 그리고 느낀 대로 말한다. 그런 미적 향유와 미적 태도를 통해 우리의 정서는 순화되고 치유된다.
어디 도자기뿐이겠는가. 모든 예술품이 그렇지 않은가. 그렇게 순화되고 치유된 정서는 개인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또 선한 영향력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데도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문화를 창조하는 것은 생산자이지만 문화를 창달하는 것은 소비자"라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안목(眼目)』에 실린 고종의 일화는 당사자 개인적으로도 국가적으로도 비극이었다.
1906년 초대 통감으로 온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최고의 장물아비였다. 그는 고급 청자를 마구 사들여 메이지 일왕과 일본 귀족들에게 선물하였다. 그 숫자가 수천 점에 이른다. 그런 이토가 어느 날 고종에게 고려청자를 보여주자 고종이 "이 푸른 그릇은 어디서 만든 것이오?"라고 물었단다. 이에 이토가 "이 나라 고려시대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자 고종은 고개를 저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런 물건은 이 나라에는 없는 것이오."
이 허망한 말이 결국 고려청자에 대한 조선의 마지막 기록이다.
한 권의 책으로 없던 안목이 갑자기 생길 리 없다. 생래적으로 남다른 안목과 능력을 가진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처럼 둔감한 사람은 그저 많이 보고, 읽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안목을 키우는 방법이겠다. 김부식은『삼국사기』에 백제 온조왕의 궁궐 신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었다.
"작신궁실 검이불루 화이불치(作新宮室 儉而不陋 華而不侈)"
'새 궁궐을 지었는데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았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았다'는 뜻이다. 사실상 이 "검이불루 화이불치"는 백제의 미학이고 조선 왕조의 미학이며 한국인의 미학이다. 이 아름다운 미학은 궁궐 건축에 국한되지 않는다. 조선시대 선비문화를 상징하는 사랑방 가구를 설명하는데 "검이불루" 보다 적절한 말이 없으며, 규방문화를 상징하는 여인네의 장신구를 설명하는데 "화이불치"보다 더 좋은 표현은 없다. 모름지기 오늘날에도 계속 계승 발전시켜 우리의 일상 속에서 간직해야 할 소중한 한국인의 미학이다.
올해는 아내와 서울 시내 궁궐을 돌아보며 궁궐 건물의 이마에 붙은 현판과, 벽과 기둥에 붙은 주련의 의미에 대해 알아볼 작정이다. (*이전 글 : 경희궁)
개개 궁궐과 건물의 역사와 의미를 알기 전에 궁궐 건축에 우리 조상들이 심은 그런 바탕미학을 알게 된 것은 즐거움이고 자부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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