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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저하17

저하야 Pattaya랑 놀자 1 딸아이네와 함께 태국 파타야를 다녀왔다. 여행의 목적과 일정은 단순했다. '손자저하들의, 저하들에 의한, 저하들을 위한'. 대부분의 시간을 두 곳의 숙소 수영장에서 물놀이로 보냈다. 2호저하는 이번 여행에서, 거창하게 말하자면, 물놀이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마침내 처음으로 혼자서 수영(발버둥?)을시작한 것이다. 비록 뜰개를 착용한 상태지만 그게 뭐 대단하냐고? 아내와 내겐 마치 닐 암스트롱이 달 표면을 걷는 순간을 볼 때만큼이나 경이로웠다. 내친걸음의 2호는 유수풀의 안개 구간과 폭포수 구간을 통과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파도풀장에서 파도에 몸을 맡기고 물결에 따라 출렁이며 즐거워하는 여유까지 보여주었다. 1호는 1년 사이에 수영을 배워 뜰개를 벗어던지고 맨몸으로 수영을 할 수 .. 2024. 4. 17.
힘들어 좋은, 좋아서 힘든 날들 저하들은 어떤 환경, 순간, 물건도 장난(감)이나 이야기로 만든다. 모든 어린이가 지닌 재능일 것이다. 바람 불고 비 오는 하굣길에서 우연히 바람에 우산이 뒤집어졌다. 저하는 놀람과 동시에 깔깔거리더니 만류에도 불구하고 계속 우산을 바람에 맞서 쳐들어 뒤집어지는 것을 즐기다가 결국 우산이 망가지고 말았다. 비에 젖은 옷은 덤이었다. 검은 말을 쥔 저하, 흰 말은 나. 흰색의 킹 하나만 남아 더 이상 게임 진행이 무의미한데도 옴짝달싹 못하는 체크메이트까지 계속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언젠가부터 저하는 사진에 고개를 돌리기 시작한다. 그래도 얼마전 국기원에서 딴 품띠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장소에 상관없이 과감한 포즈를 취해준다. 이소룡을 능가하는 얼굴 표정도 인상적이다. 미국으로 출장간 아빠가 돌아오면 들려.. 2024. 3. 5.
생일 저하 집에 오면 나는 1호 방에서 잔다. 저하의 침대 옆 매트리스가 나의 잠자리다. 가끔씩은 저하 침대에서 자기도 한다. 1인용이라 비좁지만 저하는 한 번도 싫어하는 기색을 보인 적이 없다. 가만히 누워 함께 BTS나 뉴진스의 노래를 듣다가 보면 저하의 숨소리가 차츰 고르게 잦아든다. 거기에 전해지는 달달한 체취, 뒤척임, 잠꼬대까지 전해지면 나는 아늑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손자'저하'1호의 생일. 해마다 쌓이는 한 살 한 살이 대견스럽고 신기하다. 경외스럽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고개를 숙이고 누군가에게 감사 기도를 올리기도 한다. 부디 이 대견과 신기와 경외와 감사의 즐거움을 오래 지켜볼 수 있기를! *이전글 : 2024. 3. 2.
와 설날이다! 어릴 적 설날은 설빔을 기다렸다가 맛난 음식을 기다렸다가 무엇보다 세뱃돈을 기다리는 날이었다. 세배를 하고 난 뒤 어른들이 손 안에서 만지작거리는 돈의 액수를 조바심치며 가늠해보곤 했다. 이제 내게 설날은 이틀 전에 보았으면서도 '오래간만이네요?'라고 품 안에서 뜻밖의 인사를 건네기도 하는(2호) 손자를 기다리는 날이다. 드디어 띵동! 저하들이 왔다. "누구세요?" 이미 카톡으로 알고 있지만 묻는다. "도둑이에요." 2호저하의 유모어다. 아내와 나는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반긴다. "아아니∼! 대감 어쩐 일이시오?" 요새 설빔은 큰 의미가 없다. 아니 설빔이란 게 특별히 없다. 아마 내 어린 시절의 설빔보다 지금 아이들의 평상복이 더 좋을 것이다. 저하들에겐 설빔은 단지 평소와 다른 거추장스러운 옷일지도 .. 2024. 2. 11.
다시 찾은 SK나이츠 손자저하와 함께 다시 SK나이츠의 경기를 보러 잠실학생체육관을 찾았다. 한 달 남짓한 시간을 두고 두 번째 오니 경기장 분위기와 응원가도 한결 익숙하다. 저하도 그러했는지 앞장서서 입구로 나를 잡아 끈다 국민의례 때 태극기 옆에 걸린 문경은과 전희철의 이름이 적혀 있다. 90년 대 초 인기몰이를 했던 "농구대잔치"에서 쟁쟁했던 스타들이다. 프로에 와서도 여전했던 모양인지 각각 영구결번이라는 영예를 얻은 것 같다. 전희철은 지금 SK나이츠의 감독이다. 198cm이라는 큰 키에 짙은 회색 양복을 입고 사이드라인에 서있는 맵시가 도드라져 보였다. 야구와 축구와 달리 실내 경기인 농구는 선수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현장감과 관람 집중도가 높다. 경기의 박진감이 생생하기도 하지만, 경기가 멈추는 시간마다 치어리.. 2023. 12. 4.
아주 작은 뭐라도 하며 요즈음 아내는 손자저하들을 보러 갈 때면 바빠진다. 1호저하가 요구한 음식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1호가 좋아하는 음식은 갈비찜, 만둣국, LA양념 갈비 등이다. 얼마 전까진 내가 만든 등갈비강정이나 삼계탕을 좋아했는데 요즈음은 주도권이 완전히 넘어갔다. 아내가 만든 음식을 1호는 저녁으로 먹고 잠자기 전에 또 먹는다. 그리고 아침으로도 먹고 싶어 한다. 반복해서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고 한다. 아내와 나는 어릴 적 비슷했던 딸아이의 모습을 떠올린다. 딸아이가 손자 나이 때 한동안 비빔밥의 매력에 빠져 지냈다. 자주 가던 고깃집에서 전주식 비빔밥을 냈는데 한 번 맛을 본 뒤로는 그 좋아하던 고기도 마다하고 비빔밥만 찾았다. 아내와 난 그때 속이 니글니글 해질 때까지 비빔밥을 먹어야 했던 탓에 그 뒤로는.. 2023. 11. 16.
저하들과 추석 보내기 추석의 유래와 형식은 조상님들께 바치는 제사겠지만 실질은 가족들과, 특히 저하들과 만나는 축제다. 아내와 나는 저하들의 사소한 말과 행동에도 쉽게 감동하고 자지러질 준비가 되어있다. 추석빔을 입은 저하들의 절을 받는 잠깐의 절차가 끝나고 다시 평상복 차림이 되면 저하들은 이내 평소의 권력을 자유롭게 행사하기 시작한다. "새로운 마술을 보여줘요." 하는 최초의 하명에 야심 차게 준비한 마술을 보여주었지만 실패했다. 요즘 1호 저하의 마술을 보는 수준이 여간 아니어서 매의 눈으로 서툰 나의 비법을 쉽게 간파하고 말았다. '깽깽이' 수준을 겨우 벗어난 1호의 바이올린 연주를 참을성 있게 들어주기도 해야 한다. 가끔씩은 연주하는 노래를 따라 부르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한다. 옛날에 즐거이 지내던 일 나 언제나 그.. 2023. 10. 1.
꽃 피어 만발하고 활짝 개인 미래, 그리고 지금 ♬내 평생 소원이 무엇이더냐. 우리 손주 손목 잡고 금강산 구경일세. 꽃피어 만발하고 활짝 개인 그날을 기다리고 기다리다 이내 청춘 다 갔네······.♬ 대학시절, 양희은이 부른 를 처음 들었다. 막걸리 집에서 이 대목을 부를 때 정말 나도 언젠가 흰머리의 노인이 되어 손주 손을 잡고 걷게 되는 날이 올까? 실감 나지 않는 상상을 가끔씩 해보곤 했다. 물론 흰머리와 손주보다는 막연하게 "꽃 피어 만발하고 활짝 개인 그날"을 더 많은 방점을 두었지만. 세월이 흘러 나는 어느덧 노래 속 흰머리 노인이 되었다. 긴 시간을 돌아 제자리로 돌아온 듯 세상은 다시 젊은 그 시절의 암울한 모습을 닮아 있지만 상상 속에 추상이던 손주들은 이제 현실 속 실체가 되어 곁에 있다. 주말 동안 손자들과 놀고 웃고 달리다 왔.. 2023. 9. 25.
친구들이 있다 친구들은 매일 놀고 먹고 잔다. 웃고 울며, 떼를 쓰고 고집을 피우며 하루하루가 다르게 자란다. 떨어져 있는 시간에도 아내와 나는 늘 그런 모습과 목소리를 눈과 귀에 달고 산다. 1호가 내 핸드폰에 메모를 남겼다. "나는 원래 요리사가 될 꺼였다. 하지만 나는 과학이 더 재미있어서 과학자가 될 꺼였는데 내가 수요 축구에서 열 골을 넣고, 토요 축구에서 다섯 골을 넣어서 축구 선수로 바꿨다. 또 다른 이유는 내 모든 슛팅이 강해서에요." 지난 6월 아내와 나는 1호 친구와 태국을 여행했다. 여행 중 1호는 한국의 부모에게 카톡을 보냈다. "엄마 아빠, 오늘 스노클링 했어요. 잘 지내고 있어요? 잘 지내시면 금요일 오후에 만나요. 잘 지내시지 않으면 남은 시간 동안 잘 지내세요." "엄마 아빠, 할아버지가 .. 2023. 9.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