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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저하 다녀가다

by 장돌뱅이. 2025. 3. 4.

큰 손자저하가 일박이일로 다녀갔다. 방학을 하면 며칠은 와서 자고 가곤 했는데 이번 겨울 방학은 저하의 일정이 워낙 바빠서 아내와 내가 가야만 만날 수 있었다.
저하가 축구에 빠져 있어 매일 저녁 훈련을 하러 가야했기 때문이다. 

가끔씩 손님이 와야 집은 단정해지고 매무새가 잡힌다.
아내는 정리와 청소를 하고 나는 식사를 준비했다.

첫 식사는 저하가 가장 좋아하는 치킨마요로 준비했다.
오기 전에 음식에 대해 문자로 저하가 묻고 내가 대답하는 스무고개를 했다.
- 외식입니까? (아닙니다.)
- 국물이 들어갑니까? (아닙니다.)
- 치킨이 들어갑니까? (옙)
- 치킨마요! (딩동댕!)

이미 수차례 검증된 음식이라 엄지척을 받았다.

치킨마요

이튿날 아침엔 야심차게 바나나 팬케익을 만들었다. 저하로부터 '먹을만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먹을만하다'는 건 다음에 해도 되고 안 해도 되고, 저하가 열심히 찾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저하는 특정 음식에 관해서는 나름대로 세심한 취향을 갖고 있다.
달걀프라이는 'Sunnyside Up'을 고집한다.
노른자를 터트려서 흰자를 찍어 먹는 게 좋다고 한다.

바나나팬케익

점심엔 근처 가게에서 피자와 파스타를 포장해 왔다. 
볶음밥과 탕수육이냐, 피자와 파스타냐의 고심 끝에 저하는 후자를 선택했다. 

오락거리는 저하가 직접 준비해서 싸들고 왔다.
우리집에 있는 걸로는 장기와 오목을 했다.
낮부터 밤까지 쉬지 않고 놀고 먹었다.

잠시 오락을 멈추고 쉬는(?) 시간에는 유럽 축구를 봤다.
저하는 리버풀과 레알마드리드를 좋아한다. 물론 손흥민의 토트넘에도 관심이 많다.

책은『푸른 사자 와니니』를 가져왔지만 마지못해 30분 정도 읽었다.
그 외에는 수도쿠(Sudoku)를 풀거나 핸드폰을 달라고 해서 게임을 했다.

내 핸드폰에는 저하의 게임앱이 깔려있다.
저하가 책을 읽는 동안 창밖에는 눈이 내리고 바람이 거셌다.
비발디의 <봄>을 틀어주었다.

나는 예전 손님을 만날 때 비가 오면 '귀한 사람은 비와 바람을 부른다(貴人召風雨)'라는 말을 자주 썼다. 오늘 같은 날은 '귀인소풍설(貴人召風雪)'이 어울리겠다.
나는 '손자저하'라고 하는데, 한 시인은 '손자님'이라고 한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마음은 같다.

오늘은

기쁜 날

하느님이 보내주신
귀한 선물
손자님 오시는 날

거실과 안방
사악삭, 스윽슥
신나는 대청소

온 집안
맑은 공기 가득 채우고,
현관엔
활짝 핀 군자란 화분.

할아버지 할머니,
몸과 맘
정갈하게 다듬고
서성인다.

밝음과 따스함
온 누리에 전할
우리 집 해님!

손자님 오시는 날

- 안종완, 「손자님 오시는 날」 -

저하는 가기 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
"할아버지, 할머니, 나중에 내가 결혼해서 애를 낳으면 그때도 같이 놀아주면 안 돼요?"
"왜?"
"재미있게 놀아주니까요."
"근데 그때는 아마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마
······"
"좀 더 늙어있긴 하겠죠."
(예전엔 이럴 땐 '죽어있을 것'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삼가는 걸 보니 그만큼 철(?)이 든 것도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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