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층의 바위 절벽이 십리 해안을 돌아나가고 칠산바다 파도쳐 일렁이는 채석강 너럭바위 위에서 칠십육년 전 이곳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던 해산 전수용을 생각한다
산낙지 한마리에 소주를 비우며 생사로서 있고 없는 것도 아니요 성패로써 더하고 덜하는 것도 아니라던 당신의 자명했던 의리와 여기를 떠난 몇 달 후 꽃잎으로 스러진 당신의 단호했던 목숨을 생각한다
너무도 자명했기에 더욱 단호했던 당신의 싸움은 망해버린 국가에 대한 만가였던가 아니면 미래의 나라에 대한 예언이었던가 예언으로 가는 길은 문득 끊겨 험한 절벽을 이루고 당신의 의리도 결국 바닷속에 깊숙이 잠기고 말았던가
납탄과 천보총 몇 자루에 의지해 이곳 저곳 끈질긴 게릴라로 떠돌다가 우연히 뱃길로 들른 당신의 의병 부대가 잠시 그 아름다움에 취했던 비단 무늬 채석강 바위 위에서 웅얼거리는 거친 파도 소리 듣는다.
- 최두석, 「채석강」-
인간이 문자를 만들면서 처음 기록한 것은 곡물 수확량을 조사한 세금 장부라고 한다. '국가는 사람들의 피땀을 세금이란 합법의 이름으로 거두어 부자에게 몰아주는 조직된 강도'라는 극단적인 말도 있다. 지나간 역사를 돌이켜보면 그 말이 전혀 터무니없지는 않은 것도 같다. 온갖 가렴주구에 못 견딘 백성이 더 이상 자식을 낳지 않겠다고 자신의 생식기를 잘랐다는「애절양(哀絶陽)」이란 정약용의 끔찍하면서도 애절한 시가 전해오지 않던가.
국가는 냉혹한 괴물들 가운데서 가장 냉혹하다. 그 괴물은 차갑게 거짓말한다. 그 괴물의 입에서는 "나, 즉 국가는 민족이다."라는 거짓말이 기어 나온다. - 니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중에서-
그런데 그런 국가의 명운이 기울어갈 때 분연히 떨쳐 일어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도 국가에서 받은 것이라곤 '입대 영장과 세금고지서 밖에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은 늘 놀랍다. 해산 전수용(1879∼1910)은 전북 임실에서 태어나 1908년 의병을 일으켜 일제에 항거하다 체포되어 교수형으로 처형된 사람이다. 그에게, 그리고 또 다른 '전수용'들에게 국가는 무엇이었을까?
*출처 : 나눔문화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해도 믿는 사람들과 사슴을 가리켜 사슴이라고 알려주어도 믿지 않는 사람들. 끝내는 그들도 거두어야 하겠지만 당장엔 아니다.
오늘은 삼일절이다. 106년 전의 그날처럼 '너무도 자명하기에 더욱 단호해질' 수밖에 없는 날이다. 될 때까지 모이자! 경복궁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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