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손자저하18

친구들이 있다 친구들은 매일 놀고 먹고 잔다. 웃고 울며, 떼를 쓰고 고집을 피우며 하루하루가 다르게 자란다. 떨어져 있는 시간에도 아내와 나는 늘 그런 모습과 목소리를 눈과 귀에 달고 산다. 1호가 내 핸드폰에 메모를 남겼다. "나는 원래 요리사가 될 꺼였다. 하지만 나는 과학이 더 재미있어서 과학자가 될 꺼였는데 내가 수요 축구에서 열 골을 넣고, 토요 축구에서 다섯 골을 넣어서 축구 선수로 바꿨다. 또 다른 이유는 내 모든 슛팅이 강해서에요." 지난 6월 아내와 나는 1호 친구와 태국을 여행했다. 여행 중 1호는 한국의 부모에게 카톡을 보냈다. "엄마 아빠, 오늘 스노클링 했어요. 잘 지내고 있어요? 잘 지내시면 금요일 오후에 만나요. 잘 지내시지 않으면 남은 시간 동안 잘 지내세요." "엄마 아빠, 할아버지가 .. 2023. 9. 2.
내 인생의 특별한 여행 3 유수풀 - 워터슬라이드 - 파도풀. 저하는 여행 내내 세 곳을 번갈아 가며 쉬지 않고 흘러가고 미끄러지고 출렁거렸다. 함께 따라다니다 가끔씩 갑자기 저하를 안으면 품 안에서 벗어나려고 버둥거렸다. "안 돼요. 빨리 저기 가야 돼요!" 미리 말을 하고 다가서면 사력을 다해 수영으로 도망을 갔다. 성큼성큼 쫓아가서 다시 꼭 안으면 저하는 싱싱한 물고기처럼 요동을 쳤다. 팔과 가슴에 전해지는 그 작은 꼼지락거림이 좋아서 자꾸 안아 보고 싶었다. 저하도 말과는 달리 그리 싫지만은 않은 기색이었다. 웃는 시간을 따로 떼어 두어라 영혼의 음악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시간을 따로 떼어 두어라 인생이 너무 짧기 때문이다. -로버트 브라우닝의 시 중에서 - 2023. 7. 6.
내 인생의 특별한 여행 2 스페이스 호텔의 수영장에는 저하에게 3개의 놀이터가 있다. 물이 흐르는 풀(유수풀)과 물미끄럼틀(워터슬라이드), 그리고 파도가 치는 풀장이다. 저하는 잠시도 쉬지 않고 세 곳을 교대로 옮겨 다녔다. 나는 저하를 근접 경호(?) 하며 함께 놀았다. 가끔씩 아내가 역할을 교대했다. 유수풀은 숲 사이로 흐르는 물로 이어져 계속 따라가면 원점으로 돌아오는 형상이었다. 물의 깊이는 1미터로 일정해서 어린아이들에겐 최적이었다. 곳곳에 안개가 뿜어져 나오거나 동굴과 폭포 등이 설치되어 있었다. 저하는 그런 코스를 지날 때마다 마귀나 독거미와 싸우는 상상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지어냈다. 물에 떠내려 가는 나뭇잎을 헤엄쳐 구해내(?) 소중한 보석처럼 손에 쥐고 다녔다. 나는 가끔씩 물속으로 잠수하여 저하의 다리를 낚아채며.. 2023. 7. 5.
비 오는 날의 '손자병법' 장마비가 시작되었다. 손자친구들과 보낸 2박 3일을 마무리하는 날. 아침에 큰손자의 등교길에 함께 했다. 하교를 하면 할아버지가 집에 없을 거라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면서도 한번 더 확인을 한다. 못내 아쉬움이 역력해 보인다. 매번 반복되는 이 순간. 사실 나도 시큰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둘이서 함께 동요를 부르며 걸어갔다.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 우산 셋이 나란히 걸어갑니다. 빨간 우산 파란 우산 찢어진 우산 좁다란 골목길에 우산 세 개가 이마를 마주 대고 걸어갑니다.작은 손자는 비를 핑계로 어린이집을 보내지 않고 집에서 나와 놀기로 했다. 아내는 '횡재'라고 했다. 작은 손자와 나, 둘 다에게 그런 것 같다는 의미다. 큰손자에게는 특급비밀로 부쳐졌다. 차놀이, 낚시놀이, 구슬놀이, 음식놀이, 숨.. 2023. 6. 22.
어쩔 수 없는 일에 너무 속상해 하면··· 1호 손자저하가 돌봄교실의 친구에게 쓴 편지. 예정되었던 파티가 취소되면서 생일 축하(위로?) 편지를 쓰는 것으로 했던 모양, OO아, 생일 축하해. 코로나 때문에 파티는 못하지만 생일을 축하해주고 싶어서 이 편지를 쓰는 거야. 6월 며칠이 생일이야? OO아, 생일 파티를 못해서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어. 우리 엄마가 말했는데 어쩔 수 없는 일에 너무 속상해하면 에너지를 다 쓴대. 그러니 너무 속상해하지 말고 우리 돌봄 교실에서 잘 지내자. 생일 축하해. OO아 사랑해. 글의 내용이 제법 의젓하다. '어쩔 수 없는 일에 너무 속상해 하면 에너지를 다 쓴다'는 말도 눈길을 끈다. 알고 보니 제 엄마가 원래 '어쩔 수 없는 일을 속상해하는데 에너지를 다 쓰지 말라'고 말해준 적이 있단다. 아이들의 기억과 기.. 2023. 6. 10.
빠짜이와 빠떼꿍 손자1호가 지금의 2호 만했을 적 가끔씩 "빠짜이!"라는 외치곤 했다. 어디서 배웠는지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 말을 사용하는 상황을 미루어 짐작하건대 기분이 좋을 때 쓰는 말임을 알 수 있었다. 황당할 때는 가끔씩 자신이 그 말을 해놓고 "근데 빠짜이가 무슨 말이지?" 하고 되물을 때였다. 얼마 전에는 제 엄마와 어떤 문제로 작은 실랑이 끝에 1호가 말했다고 한다. "엄마는 잔소리 좀 그만해요." 딸아이가 되물었다. "너 잔소리가 무슨 뜻인지나 아니?" 1호가 말문이 막힌 듯 사이를 두더니 조금 자신 없는 대답으로 엄마를 웃겼다고 한다. "글쎄?··· 잘 때 하는 소린가?" (아마 잔소리의 '잔'을 '잔다'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급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사실 어른들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2023. 5. 2.
이름 부르는 일 여행에서 돌아와 서둘러 친구들을 만나러 갔다. 작은 친구는 발을 동동 구르며 격렬하게 좋아했고, 그 모습을 본 큰 친구는 자못 어른스럽게 말을 했다. "아주 난리가 났네. 난리가 났어." 잠에서 깨자마자 아직 눈도 뜨지 못한 어린 강아지 같은 얼굴로 내게 안기는 작은 친구와, 도미노(Domino)나 우노(Uno) 등 작은 친구가 함께 할 수 없는 놀이를 기대하는 큰 친구 사이를 오고 가며 일박이일을 지치도록 놀았다. 사실 여행의 거의 모든 순간과 모든 대상에 아내와 나는 친구들을 대입시키고 평가했다. "이 옷이 친구들에게 어울릴까?" "이 음식은 친구들도 좋아하겠다." "친구가 망고를 무척 잘 먹었는데······ 두리안도 먹을 수 있을까?" "여기 수영장은 친구들이 놀기에 좀 깊다. 친구들과는 유아풀에 .. 2023. 4. 27.
나의 친구 나의 저하 손자친구들을 보러 갈 때면 종종 이중섭의 아이들 그림이 생각나곤 한다. 그림 속 아이들처럼 친구들과 꽉 끌어안고 뽀뽀하며 뒹구는 (큰손자와는 이걸 '쌔서미' 혹은 '참기름'이라 부른다) 걸 상상하는 것이다. 큰손자는 '안 돼!' 하며 고개를 모로 꼬고 품 안에서 버둥거리거나 아예 저만큼 도망치는 듯하지만 그건 거부가 아니라 따라오라는, 그래서 그 과정을 더 즐기려는 몸짓이다. 친구 2호가 열이 나서 어린이집을 가지 못해 아내와 내가 출동했다. 아프긴 하지만 1호가 유치원에 간 시간이라 모처럼 둘이서만 오래 같이 있는 시간이 생긴 것이다. 1호는 어렸을 때 아내와 나의 관심을 혼자서 독차지 할 수 있었지만 2호는 그럴 수 없었음에도 더할 수 없이 우리를 따라서 늘 미안하던 차였다. 열이 있고 콧물에 기침도.. 2023. 2. 9.
올해의 '첫' 일들 새해 첫날, 특별히 단호하게 어떤 결심을 세우지 않았다. 도전과 성취의 의지를 다지는 대신에 이전부터 해오고 올해도 변함없이 반복할 자잘한 일상들을 잠시 생각해 보았을 뿐이다. 책 읽기, 음식 만들기, 영화 보기, 걷기, 손자들과 열심히 놀기 그리고 그림 그리기 따위. 1. 첫 책 2023년에 읽은 첫 책은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1 - 서울편』이었다. 올해 아내와 함께 궁궐을 포함하여 서울 시내를 돌아볼 때 그의 답사기를 참고할 것 같다. 하지만 이전의 답사기에 비해 작가의 개인적인 인맥담과 소회가 많아지면서 읽는 재미는 덜 했다. 특히 "인사동3"은 인사동 관련한 유명 인사들의 인명을 단순 나열하는 식이어서 저자에게는 친근감 있는 이야기일지 모르겠으나,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생면부지의 사람들.. 2023. 1.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