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 사이에 손자저하 2호가 열이 났다.
어린이집을 갈 수 없어서 아내와 내가 출동을 했다.
열은 39도에 육박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저하는 잘 놀고 잘 먹었다.
감기약을 먹고 나면 잠을 잘 수 있다는 주의사항 속 약발은(?) 전혀 듣지 않았다.
어린이집에서 몸에 배였을 점심 후 낮잠이라는 규칙도 별 소용없었다.
잠을 자자는 다독임에 말똥말똥 5초쯤 누워있다가 "다 잤다!" 하고 일어났다.
미지근한 물로 몸을 닦으면 열내림에 좋을 것 같은데 단호히 거부했다.
그리고 순간순간 놀이를 바꿔가며 구석구석 온 집안을 돌아다녔다.
중간에 잠시 1호저하 하교 마중을 나갔다.
저하는 같은 반 친구를 카페로 이끌어 서슴없이 딸기요거트 한 잔을 냈다.
나는 저하 선심의 뒷정리를 하고 다른 테이블에 앉아 둘의 수다를 지켜보았다.
사진 찍히는 걸 거부하는 저하 몰래 사진을 찍기도 했다.
파리 생제르맹의 유니폼을 입고 등교할 만큼 1호저하는 축구에 열심이다.
방 책장 옆에는 전시된 각종 대회에서 받은 상패와 트로피는 저하의 자부심이다.
2020년 9월부터 핸드폰에 걷기 관련 앱을 깔았다.
하루 8천 걸음 이상 일주일 평균은 만보 이상을 유지하는 걸 목표로 삼았다.
앱에는 하루 걸음 측정 이외에 걷기를 독려하기 위한 이런저런 항목이 있다.
일테면 총며칠을 걷었다던가, 지금까지 사하라사막까지 걸었다던가 하는 식으로.
각각의 항목은 다시 세분화되어 도달한 기록에 따라 탐험가며 영웅이라는 칭호가 붙여 주었다.
그중에 내게 가장 어려운 항목이 있다. 바로 연속해서 며칠을 걸었는가 하는 '콤보데이즈'다. 이제까지 최고 기록은 25일이다. 중간에 저하들을 만나야 하는 날이 있으면 일일 걸음수를 채우기가 어렵다.
이번에도 저하를 만나러 가면 또 이 기록이 깨지겠다고 하니 아내가 말했다.
"전화기를 내려놓지 말고 주머니에 넣고 놀면 아마 만 오천 보는 넘지 않을까?"
놀랍게도 정말 그랬다. 아침부터 저녁 무렵까지만 주머니에 넣고 놀았더니 걸음수는 만 오천보에 육박했다. 저하들과 노는 즐거움을 그까짓 걸음 기록 따위에 비할 순 없다.
기록을 유지할 방법을 찾은 것보다 나와 이 걸음을 함께 한 어린 저하들의 무한체력에 새삼 놀라게 되었다. 도대체 저하들의 하루 걸음수는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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