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텔레비전에서 3년 남짓 억울한 옥살이를 한 캐나다 교민의 사연을 보았다.
간절한 기다림 끝에 마침내 감옥에서 풀려난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한국음식점에서 김치찌개를 실컷 먹는 것이었다고 한다. 김치찌개는 그에게 오랫동안 그리워한 음식이며 비로소 자유로운 곳으로 돌아왔다는,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안도의 의미였을 것이다.
"뭐 먹고 싶어?"
"아침으로(점심으로, 저녁으로) 뭘 먹을까?"
아내에게 이런 질문을 건넬 땐 늘 느긋한 기분이 든다.
그 느낌이 좋아 이미 마음 속으로 만들 음식이 정해져 있는데도 일부러 물어볼 때도 있다.
먹고 싶은 것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은 축복이다.
집에서 만들어 먹는 음식은 유명 음식점에서 나오는 것처럼 특별하고 화려한 모양과 맛이 나지는 않지만 일상의 덤덤하고 평화로움이 맛에 녹아 있다.
두부조림은 양파를 뜸뿍 넣어 은근하게 달달한 맛을 바탕에 깔고 고춧가루와 간장으로 양념한다.
아내와는 조림을 만들어 냉장고 식힌 후 먹는 걸 좋아한다. 조림에 밥을 비벼 먹을 때도 있다.
아내는 모든 종류의 전을 좋아한다.
향긋한 향과 바삭한 식감의 깻잎전도 예외일 수 없다.
버섯과 들깨를 먹으면 괜히 건강식을 하는 것 같다. 아내가 좋아하는 감자도 넣었다.
멸치육수에 남은 밥과 짜투리 야채들을 모야 죽을 쒀봤다.
원래는 아보카도도 넣을 생각이었는데 상태가 좋지 않았다(겉으로 봐선 알 수가 없다).
과감히 버리고 대신에 다진 양파를 볶아 넣었다.
남은 명란젓으로 파스타를 만들었다.
김어준의 금요미식회에서 참돔리조또를 소개했는데 냉장고에 참가자미가 있어 가자미리조또로 만들어 보았다. 아내가 훌륭하다고 했다. 그러면 된 거다!
만드는 공력에 비해 맛이 훌륭한 가지구이덮밥.
지인이 준 묵가루로 묵을 쒔다.
계량컵으로 한 컵을 물에 풀어 만들었는데 아내와 둘이서 두 끼를 먹을 수 있었다.
아내가 열무김치를 좋아한다. 열무김치비빔밥은 더 좋아한다.
나는 열무김치와 된장찌개가 더 좋은 조합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고등어. 아내는 조린 무를 더 좋아한다.
문어와 깻잎과 양배추 채를 간장소스와 함께 무쳤다. 문어 대신 주꾸미를 쓸 때도 있다.
바지락과 주꾸미, 새우에 애호박과 감자를 넣은 해물수제비.
비가 오거나 날씨가 궂은날에는 수제비가 당긴다.
음식이 정해지면 어떤 재료부터 어떻게 다듬어 준비를 할까 순서를 정한다.
끓이거나 볶을 때도 재료마다 넣는 순서가 다르다는 것도 요리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넣고 끓이는 것도 있고 끓이고 넣어야 하는 것도 있고 불의 세기를 달리 해야 하는 것도 있다.
사는 일도 음식 만드는 일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먼저 해야 할 일과 나중에 해야할 일을 구분해야 하고 강하게 대처해야 할 일과 은근히 뜸이 들기를 기다려야 할 일이 있다.
올해는 아내와 결혼한지 40년이 되는 해다.
아내는 30년 넘게 부엌일을 담당해 왔다. 내가 부엌을 접수한(?) 지는 10년 안짝이다.
음식을 만들며 새삼 철이 드는 것 같지만 나는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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