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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와 설날이다!

by 장돌뱅이. 2024. 2. 11.

어릴 적 설날은 설빔을 기다렸다가 맛난 음식을 기다렸다가 무엇보다 세뱃돈을 기다리는 날이었다. 세배를 하고 난 뒤 어른들이 손 안에서 만지작거리는 돈의 액수를 조바심치며 가늠해보곤 했다. 이제 내게 설날은 이틀 전에 보았으면서도 '오래간만이네요?'라고 품 안에서 뜻밖의 인사를 건네기도 하는(2호) 손자를 기다리는 날이다.

드디어 띵동! 저하들이 왔다.
"누구세요?"
이미 카톡으로 알고 있지만 묻는다.
"도둑이에요."
2호저하의 유모어다.
아내와 나는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반긴다.
"아아니∼! 대감 어쩐 일이시오?" 

요새 설빔은 큰 의미가 없다. 아니 설빔이란 게 특별히 없다.
아마 내 어린 시절의 설빔보다 지금 아이들의 평상복이 더 좋을 것이다.
저하들에겐 설빔은 단지 평소와 다른 거추장스러운 옷일지도 모른다.

위 하굣길 사진처럼 1호저하는 요즘 사진 찍히는 걸 거부한다. 제 부모가 멋진 양복과 한복을 준비해서 입고 왔지만 사진은 찍지 못했다.

"나는 오늘 뭐 먹을지 알아요."
1호는 현관에 들어서며 기대에 찬 목소리로 말한다.
"뭐?"
"갈비찜!"
저하가 명절마다 먹고 또 제일 좋아하는 음식 중의 하나다.

명절은 여전히 음식에서 살아있다. 우리 집 '대장금' 아내가 모처럼 팔을 걷어붙이는 날이다.
아내는 떡국과 갈비찜, 새우전을 준비했다. 떡국에 얹을 노랗고 흰 달걀지단의 고명을 부쳐 타파 통에 담아두고, 이틀 전부터 갈비를 다듬고 데치고 기름기를 걷어내고 무와 당근을 둥글게 깎았다. 또 저하들을 위해 대추의 씨를 뺐다. 갈비찜에 내가 거든 것은 생밤을 깎는 일이다.
나는 매번 이걸 제일 힘든 일이라고 우기고 아내는 그냥 인정해 준다.
나는 두부김볶음과 더덕구이, 야채샐러드를 만들었다.
그리고 갓김치와 김장김치 그리고 며칠 전 만든 봄동겉절이와 함께 상에 올렸다.

가장 중요하고 예쁜 떡국을 저하들과 놀다 찍지 못했다.

음식을 먹기 전에 저하들의 세배를 받았다.
누구나 그렇게 하듯 아내와 나도 덕담과 함께 세뱃돈을 건넸다.
1호저하는 돈의 의미와 액수에 조금 눈을 떴지만  2호는 액수보다는 몇 장인가에 관심이 있다.

2호의 절은 네팔식 오체투지다.

 자신들의 식사 정량을 먹고 나면 저하들은 외친다.
"할아버지! 그만 먹고 빨리 놀아요."
1호와 2호저하의 놀이 시간 배분이나 공통 놀이는 어렵다.

1호와는 장기와 체스를 두었다.

2호는 변함없이 경찰차 폴리 놀이다. 소방차 로이도 등장하고 구급차 앰버도 등장한다.
경찰차는 '위용, 위용, 위용' ,  소방차는 '애애애앵∼',  구급차는 '미모, 미모, 미모' 하는 소리를 내며 달린다고 저하가 가르쳐 준다. 듣고 보니 그럴듯한 음성어다.

저하의 집에서 놀 때의 사진
비행기 날리고 번호대로 찾기

나는 마술 세 가지를 준비해서 보여주기도 했다.
손가락 끝으로 불꽃 옮기기,  토끼의 변신, 우유컵 마술이었다. 1호는 점점 '매의 눈'이 되어 모든 마술의 비법을 파헤치려 하고 2호는 반짝반짝하는 불꽃 옮기기에 관심을 보였다.

토끼의 변신
불꽃 옮기기. 우유컵 마술은 찍지 못했다.

저하2호는 1호 따라쟁이다. 자주 아웅다웅하면서도 형이 하는 모든 것을 따라한다.
영문도 모르지만 놀이에 껴주면 좋아한다.
아래 영상은 BTS의 유튜브를 틀어놓고 춤과 노래를 따라하는 모습이다. 
(나는 아래층 이웃에게 잠시 소음과 진동을 양해해 달라고 카톡을 보내야 했다.)

그리고 저녁 늦게 저하들이 돌아갔다.
배웅을 하고 돌아오니 방 한쪽에 미처 챙겨가지 않은 경찰차 폴리가 가만히 남아 있었다.

집은 갑자기 깊은 산속 절간에 들어온 듯 적막하기 그지없었다.  
아내와 나는 잠시 소파에 앉아 정신을 추스르고 집 정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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