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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겨울나무

by 장돌뱅이. 2024. 2. 13.

산책을 하며 헐벗은 겨울나무가 눈에 들어올 때면 동요 <겨울나무> 를 부르곤 했다.
아니면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떠올리며 세상의 모든 겨울나무는 '세한도 속의 소나무'거나, 백석의 시에 나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고 생각해 보기도 했다.

언덕 위에 줄 지어 선 나무들이 아름다운 건
나무 뒤에서 말없이
나무들을 말없이 받아 안고 있는 여백 때문이다
나뭇가지들이 살아온 길과 세세한 잔가지
하나하나의 흔들림까지 다 보여주는
넉넉한 허공 때문이다
빽빽한 숲에서는 보이지 않는
나뭇가지들끼리의 균형
가장 자연스럽게 뻗어 있는 생명의 손가락을
일일이 쓰다듬어 주고 있는 빈 하늘 때문이다
여백이 없는 풍경은 아름답지 않다
비어 있는 곳이 없는 사람은 아름답지 않다
여백을 가장 든든한 배경으로 삼을 줄 모르는 사람은……

  - 도종환, 「여백」-

이 시를 읽고 나무 뒤에 있는 허공과 여백이 눈에 들어왔다.

 

사랑한다는 떠들석한 공치사 없이도 '논에 물을 대주듯/상처에 눈물을 대주듯/끝모를 바닥에 밑을 대주듯/한 생을 뿌리고 거두어/벌린 입에/거룩한 밥이 되어'주는, '무작정 내 전부를 들이밀며/ 무주공산 떨고 있는 너의 가지 끝을 어루만져/ 더 높은 곳으로 너를 올려' 주는 정끝별의 시 속'세상의 등뼈'가 느껴졌다. 

 

나의 오늘 뒤에 버티고 선 저 거칠 것 없이 넓고 투명한 누군가의 '여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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