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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해피 발렌타인데이

by 장돌뱅이. 2024. 2. 15.

손자들을 돌보러 가는 길에 사위가 카톡을 보냈다.
"발렌타인데이 쵸코렛 하나 준비해 두었습니다. 맛있게 드십시오."
아내에게 물었다.
"근데 발렌타인데이에 남자가 여자에게 쵸코렛 주는 거야? 아니면  여자가 남자한테?"
"글쎄 사위 덕분에나 먹어볼까 장돌뱅이와는 수십 년 살아도 발렌타인 날 뭘 받아보질 못해서······."
아내는 가끔씩 포괄적인 의미를 담아 정곡을(?) 찌르는 반격을 한다. 물론 나는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아내 역시 '여자가 남자에게 쵸코렛을 사주는 날'이라는 인터넷
검색 결과에 개의치 않는다.
어쨌거나 커피에 곁들여 먹은 딸아이네 표 쵸코렛은 달콤했다.

수천 년에 또 수천 년도
부족하리
우주의 한 별 지구
지구 위의
파리
그 파리의 몽수리 공원에서
겨울 햇빛 아래 어느 날 아침
나와 그대
그대와 내가 입맞춤한
영원의 한순간을
다 얘기하기엔.

- 자크 프레베르, 「공원」-

곱단 씨와 나도 '첫 키스'를 한 날을 기억한다.
······ 때와 장소는 말해줄 수 없다. 파리의 몽수리 공원은 아니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그때 주위에 알리지 말라는 곱단 씨의 수줍고도 엄중한 경고가 아직 해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위 시에서 말하듯  '영원의 한 순간'을 설명하기는 불가능하다.
이후로 결혼을 했고, 딸을 낳았고, 딸이 결혼을 했고, 두 분의 손자저하까지 이어졌다.
그  '영원의 한 순간'이 늘 신비로 남아 발렌타인데이의 쵸코렛 따위는 구태여 필요하지 않았다, 고 말한다면 누군가 너무 오글거리는 나의 가식을 지적할지도 모르겠다.
아내는 또 나의 뻔뻔함을 불만스러워 할 것이다.
중요한 건 그렇게 수십 년을 함께 해왔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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