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 쓰레기 장에 던져버린 역사의 오물을 다시 뒤적거리는 이들이 있다.
마치 자신들의 뿌리라도 찾는 양 자못 진지하다.
터무니없이 진지해서 코미디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결코 웃을 수 없는 우리들에겐 결국 비극이다.
그렇게 해야만 자신들의 현재의 모습을 합리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홍범도를 치우는 자리에 들어서는 이승만.
해방된 조국에 친일파를 득세시켜 집권하고, 전쟁 중 피난처에서도 자신의 권력 유지에만 혈안이 되어 비열한 정치 파동을 일으키는가 하면, 양민 학살에 국민방위군으로 뽑은 수많은 젊은이들을 숨지게 하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온갖 부정선거를 획책하다 끝내 깡패들과 총탄의 야만에도 굴하지 않는 민중들의 저항에 쫓겨간 늙은 망령.








오래전 대학로 근처 이승만의 숙소 이화장을 지나며 썼던 글을 다시 인용해 본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숙소, 이화장(梨花壯)>>
![]() 이승만은 1875년 몰락한 양반가문의 6대 독자로 태어나 13살 때부터 몇 차례 과거에 응시했으나 낙방하였고 20살 때 배재학당에 입학하여 신문명에 접하기 시작했다. 1904년 미국에 건너간 그는 하버드대와 프린스턴 대학에서 공부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3.1운동의 영향으로 "1919년 중국 상해에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국무총리로 추대되었다. 그러나 이승만은 미국에서 대통령으로 행세하며 총리호칭을 거부하므로, 임정에서는 대외적으로 임정이 둘이 있다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되겠다고 임정조직을 대통령 중심제로 개편하여 이승만의 대통령 행세를 합법화했다."(송건호, 『한국민족주의의 탐구』)
![]() 이화장의 대문 옆에 부착된 동판에는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 우남 이승만박사 기념관”이라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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