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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생일

by 장돌뱅이. 2024. 3. 2.

저하 집에 오면  나는 1호 방에서 잔다.
저하의 침대 옆 매트리스가 나의 잠자리다. 가끔씩은 저하 침대에서 자기도 한다.
1인용이라 비좁지만 저하는 한 번도 싫어하는 기색을 보인 적이 없다.
가만히 누워 함께 BTS나 뉴진스의 노래를 듣다가 보면 저하의 숨소리가 차츰 고르게 잦아든다.
거기에 전해지는 달달한 체취, 뒤척임, 잠꼬대까지 전해지면 나는 아늑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손자'저하'1호의 생일.

해마다 쌓이는 한 살 한 살이 대견스럽고 신기하다.
경외스럽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고개를 숙이고 누군가에게 감사 기도를 올리기도 한다.

부디 이 대견과 신기와 경외와 감사의 즐거움을 오래 지켜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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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등극!

이른 아침 잠을 깨우는 전화벨 소리. "뭐지? 혹시?" 에상은 적중했다. 손자녀석이 예정보다 며칠 빠르게 세상에 나왔다는 강펀치의 소식. 외할아버지를 닮아 성미가 급한가 보다. 아내는 "감사합

jangdolbange.tistory.com

저하는 오전에 축구 경기를 끝내고 친구들과 엄마들과 모여 밖에서 생일 파티를 했다.
아이들에게 적당한 음식과 놀거리를 마련해 주고 적당한 거리에서 이를 지켜보며 비슷한 또래의 엄마들끼리 육아 고행담을 나누는 것이 요즈음 흔한 풍속도라고 한다. 방과 후 같은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의 등하원을 품앗이할 때도 있고 육아 정보 교환의 장이기도 해서 엄마들의 관계망은 단순 수다 떨기 이상의 필수인 듯도 했다.

아내와 나는 집에서 저녁에 가족끼리 나눌 음식 몇 가지를 만들었다. 내가 오징어와 새우, 버섯과 파프리카 등속을 볶아 넣은 해물잡채 한 가지를 만드는 동안, 아내는 세 가지-미역국과 샐러드, LA갈비-를 만들었다. 미역국과 잡채와 샐러드는 아내가 결혼  이후 가족들의 생일 음식에 빼놓지 않고 만들어온 음식이다. LA갈비는 다분히 저하의 취향을 고려하여 만든 것이다.

'집은 장소가 아니라 미역국이 있는 곳'이라던가.
아기를 낳은 엄마가 미역국을 먹고 그 젖을 우리가 먹고 컸으니 미역국은 한국인의 소울 푸드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생일인데 미역국이라도 먹었니?'라는 물음엔 '밥은 먹고 다니니?'처럼 단순히 끼니 안부 이상의 애정이 담겨 있음을 한국인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 미국 주재할 때 아이를 낳은 직원 부인에게 미국 병원에서 찬 오렌지 주스와 샌드위치를 식사로 주었다고 해서 웃었던 적이 있다. 우리나라 말고 또 미역(국)을 먹는 나라가 또 있을까? 있다면 어떤 형태이고 무슨 맛일까? 문득 궁금해진다.

최근에 '소미역국'이란 말을 알게 되었다. 처음엔 소고기를 넣은 미역국으로 이해를 하였는데 아니었다. '소(素)미역국'은 고기나 생선 따위를 넣지 않고 미역만 넣어 끓인 미역국이라고 한다. 국간장에 미역을 볶다가 쌀뜨물을 넣어 끓이는 것이다. 육류와 해물이 귀하던 옛날에는 산모가 소미역국을 일주일만 먹어도 몸조리 잘했다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먹을 재료가 흔한 요즈음에는 거꾸로 소미역국의 담백한 맛을 별미로 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저녁 생일상 중에서 저하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었던 음식 역시 아내가 끓인 미역국이었다. 2번씩 추가하여 밥과 국을 먹고도 더 먹겠다는 1, 2호 손자들을 말리며 대신 꼭꼭 두세번 씩 부둥켜안아 주었다.

뭐랄까······  오늘 같은 저녁은······  어쩌다 오게 된 거겠지만······  이 세상이······  너무 아름다운 것 같다고······  태어나길 참 잘했다고······     
- 김선우, 「뭐랄까, 오늘 같은 저녁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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