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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단 한 사람

by 장돌뱅이. 2024. 2. 28.

새해 결심 중의 하나가 일주일에 (어떤 그림이라도) 그림 한 장 그리는 것이라고 말했더니 어반스케치 모임의 회장님이 그러지 말고 하루에 10분씩만 그리는 걸로 하라고 했다. 
10분은 부담이 없지만 일단 한번 펼친 스케치북을 10분 만에 닫는 경우는 없을 것임을 노린, 나 같은 '귀차니즘' 중독자를 위한 독려의 방법이겠다.
새해도 두 달이 다 지나가는 시점에서야 그 말을 실천에 옮기고 있는 중이다.


방학 중인 손자를 돌보며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그림 두 장을 그렸다.
위 그림은 이중섭의 그림 중에 쉬운(?),「다섯 어린이」를 따라 한 것이다. 
이중섭이 헤어져 멀리 있는 두 아들을 그리워 하며 그렸을 것이다.
나는 요즘 매일 함께 뒹구는 손자저하들을 생각하며 그렸다.

두 번째 그림 역시 이중섭의 「부부」를 따라 그린 것이다.
정말 대략 10분 만에 크레파스와 수채화 물감으로 그렸다.
원본과 대조하면 엉성하기 그지없다. 시간을 더 투자했더라도  그 엉성한 정도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래도 뭐 상관없다. 잘 그린 그림들은 보려면 국립미술관이나 인사동 갤러리에 가면 된다.
이건 내가 그린, 오직 나만를 위한 그림이라는데 만족한다.
(욕심을 부리자면 나의 글과 그림을 가장 처음으로 읽고 보는 아내도 위한.)

이중섭이 아내에 대한 사랑을 더 격렬하게 그린 「부부」라는 같은 제목의 다른 그림(아래)이 있다.

이런 그림은 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내 능력에 감히 유채화(油彩畵)는 흉내조차 낼 수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중섭, 「부부」

잠시 저하들이 학원으로 어린이집으로 간 대낮.
모처럼의 한가함이 꼬숩다.
아내와 함께 차를 마시거나 유튜브를 본다.
창을 타고 들어와 거실을 비추는 이른 봄의 햇살이 따뜻한 시간이다.

함께 사는 것이 기뻐서
함께 늙는 것도 기쁘다

함께 늙는 것이 즐거워서
함께 죽는 것도 즐겁겠지
그 행운이 내게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밤마다 몹시 괴로워하면서도

- 다니카와 슌타로, 「함께」-

은퇴를 하면 현직에 있을 때의 연락처를 지우고 그 자리를 새로운 관계망으로 채우라는 충고를 들은 적이 있다. 세상은 더 많은 시간을 늙어서 살아야 하는, 이른바 '호모헌드레드(Homo-Hundred)'의 시대인지라 일리가 있어 보였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 크게 애를 쓰지는 않았다.

한 사람, 수십 년을 함께 해온 아내가 있는 한, 삶이 메마르거나 크게 외로울 일은 없다는 생각을 한 건 오래 전부터였다. 사람이 평생 만나는 약 삼천 명의 사람 중에 이름과 얼굴을 함께 기억하는 사람은 삼백 명 정도인데 그 중에서 친구는 서른 명이고, 절친으로 꼽을 수 있는 사람은 세 명이며, 사랑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라고 한다.
아내는 친구였다가 애인이었다가 아내였다가 이제는 그냥 내 자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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