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저하32 빠짜이와 빠떼꿍 손자1호가 지금의 2호 만했을 적 가끔씩 "빠짜이!"라는 외치곤 했다. 어디서 배웠는지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 말을 사용하는 상황을 미루어 짐작하건대 기분이 좋을 때 쓰는 말임을 알 수 있었다. 황당할 때는 가끔씩 자신이 그 말을 해놓고 "근데 빠짜이가 무슨 말이지?" 하고 되물을 때였다. 얼마 전에는 제 엄마와 어떤 문제로 작은 실랑이 끝에 1호가 말했다고 한다. "엄마는 잔소리 좀 그만해요." 딸아이가 되물었다. "너 잔소리가 무슨 뜻인지나 아니?" 1호가 말문이 막힌 듯 사이를 두더니 조금 자신 없는 대답으로 엄마를 웃겼다고 한다. "글쎄?··· 잘 때 하는 소린가?" (아마 잔소리의 '잔'을 '잔다'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급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사실 어른들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2023. 5. 2. 이름 부르는 일 여행에서 돌아와 서둘러 친구들을 만나러 갔다. 작은 친구는 발을 동동 구르며 격렬하게 좋아했고, 그 모습을 본 큰 친구는 자못 어른스럽게 말을 했다. "아주 난리가 났네. 난리가 났어." 잠에서 깨자마자 아직 눈도 뜨지 못한 어린 강아지 같은 얼굴로 내게 안기는 작은 친구와, 도미노(Domino)나 우노(Uno) 등 작은 친구가 함께 할 수 없는 놀이를 기대하는 큰 친구 사이를 오고 가며 일박이일을 지치도록 놀았다. 사실 여행의 거의 모든 순간과 모든 대상에 아내와 나는 친구들을 대입시키고 평가했다. "이 옷이 친구들에게 어울릴까?" "이 음식은 친구들도 좋아하겠다." "친구가 망고를 무척 잘 먹었는데······ 두리안도 먹을 수 있을까?" "여기 수영장은 친구들이 놀기에 좀 깊다. 친구들과는 유아풀에 .. 2023. 4. 27. 나의 친구 나의 저하 손자친구들을 보러 갈 때면 종종 이중섭의 아이들 그림이 생각나곤 한다. 그림 속 아이들처럼 친구들과 꽉 끌어안고 뽀뽀하며 뒹구는 (큰손자와는 이걸 '쌔서미' 혹은 '참기름'이라 부른다) 걸 상상하는 것이다. 큰손자는 '안 돼!' 하며 고개를 모로 꼬고 품 안에서 버둥거리거나 아예 저만큼 도망치는 듯하지만 그건 거부가 아니라 따라오라는, 그래서 그 과정을 더 즐기려는 몸짓이다. 친구 2호가 열이 나서 어린이집을 가지 못해 아내와 내가 출동했다. 아프긴 하지만 1호가 유치원에 간 시간이라 모처럼 둘이서만 오래 같이 있는 시간이 생긴 것이다. 1호는 어렸을 때 아내와 나의 관심을 혼자서 독차지 할 수 있었지만 2호는 그럴 수 없었음에도 더할 수 없이 우리를 따라서 늘 미안하던 차였다. 열이 있고 콧물에 기침도.. 2023. 2. 9. 올해의 '첫' 일들 새해 첫날, 특별히 단호하게 어떤 결심을 세우지 않았다. 도전과 성취의 의지를 다지는 대신에 이전부터 해오고 올해도 변함없이 반복할 자잘한 일상들을 잠시 생각해 보았을 뿐이다. 책 읽기, 음식 만들기, 영화 보기, 걷기, 손자들과 열심히 놀기 그리고 그림 그리기 따위. 1. 첫 책 2023년에 읽은 첫 책은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1 - 서울편』이었다. 올해 아내와 함께 궁궐을 포함하여 서울 시내를 돌아볼 때 그의 답사기를 참고할 것 같다. 하지만 이전의 답사기에 비해 작가의 개인적인 인맥담과 소회가 많아지면서 읽는 재미는 덜 했다. 특히 "인사동3"은 인사동 관련한 유명 인사들의 인명을 단순 나열하는 식이어서 저자에게는 친근감 있는 이야기일지 모르겠으나,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생면부지의 사람들.. 2023. 1. 3. 「너무나 많은 행복」 옆에 누운 손자가 뒤척였다. 잠을 깨는 기척이다.나는 얼른 자는 척을 하며 실눈을 뜨고 손자가 하는 양을 살폈다.눈을 비비고 일어난 손자는 잠시 정신을 차리고 나를 살피더니 뭔가 생각났다는 듯 득의의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 코를 잡아 흔들었다.어제 밤 잠들기 전에 먼저 일어나는 사람이 그렇게 하기로 약속을 한 터였다.내가 깜짝 놀라는 시늉을 지으며 일어나자 깔깔깔 침대 위를 구른다.아침을 먹고 마술놀이와 규칙이 손자 임의대로 바뀌는 정체불명의(?) 마녀놀이를 했다.둘이서 마녀가 되어 다른 사람에게 '간지럼 독'을 퍼트려 웃게 만들었다. 아파트 관리실에서 마련한 화분에 상추와 치커리 모종도 심어 보았다.일정한 간격으로 작은 구멍을 만들고 모종을 끼워넣는 단순 작업이었지만 손자는 진지한 호기심을 보였다. 채.. 2021. 9. 5. 이전 1 2 3 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