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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빠짜이와 빠떼꿍

by 장돌뱅이. 2023. 5. 2.

손자1호가 지금의 2호 만했을 적 가끔씩 "빠짜이!"라는 외치곤 했다. 
어디서 배웠는지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 말을 사용하는 상황을 미루어 짐작하건대 기분이 좋을 때 쓰는 말임을 알 수 있었다. 황당할 때는 가끔씩 자신이 그 말을 해놓고 "근데 빠짜이가 무슨 말이지?" 하고 되물을 때였다. 

얼마 전에는 제 엄마와 어떤 문제로 작은 실랑이 끝에 1호가 말했다고 한다.
"엄마는 잔소리 좀 그만해요."
딸아이가 되물었다.
"너 잔소리가 무슨 뜻인지나 아니?"
1호가 말문이 막힌 듯 사이를 두더니 조금 자신 없는 대답으로 엄마를 웃겼다고 한다.
"글쎄?··· 잘 때 하는 소린가?"
(아마 잔소리의 '잔'을 '잔다'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급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사실 어른들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모든 단어의 사전적 정의를 명쾌히 알고 말을 하지는 않는다.
말은 맥락 속에서 배우게 되는 것이다.)

위 사진 속 공(탄력이 있는 고무공)을 손자2호는 "빠떼꿍"이라고  부른다.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 '꿍'은 공을 말하는 것 같지만 그 앞의 '빠떼'는 추리가 불가하다.
아마 어른들의 사용하는 말 중에 일부를 자기가 그렇게 들은 것 같다.
하지만 2호 덕분에 빠떼꿍은 우리 집안만의 공용 언어가 되었다. 

손자들과 '빡센' 1박2일을 보냈다. 아이들은 놀 때 종종 예측불허다. 
이어지는 놀이 선후의 인과관계가 없다.

특히 2호는 한가지 놀이를 5분 이상 지속하는 경우가 드물다.  불자동차가 출동해서 불을 끄고 곰돌이푸를 구해내다간  갑자기 눈에 띄는 로보카 폴리를 집어 들고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가상의 사막과 절벽 위를 달린다. 나는 헬리(콥터)로 그 위를 날아가야 한다. 그러다가 내려앉은 헬리와 폴리 박치기시키고 구급차를 들고 와 병원으로 이송한다. 책을 읽어달라고 들고 오는가 하면 장난감 악기로 손 가는 대로 연주를 한다. 자기 나름대로 장난감 놀이를 변형시켜가며 미처 내가 생각하지 않은 부분에 깔깔대기도 한다.   

초등학생이 된 1호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모두의 마블'이나 카르카손, 도미노 같이 어울려 하는 게임에 관심이 크다. 윷놀이도 좋아한다. 같은 있는 동안 그 모든 게임을 번갈아가며 한번씩은 해야 한다.

태권도 파란띠의 발차기 위용


첫 번째는 나
2는 자동차
3은 늑대, 4는 잠수함

5는 악어, 6은 나무, 7은 돌고래
8은 비행기
9는 코뿔소, 열 번째는 전화기

첫 번째의 내가
열 번째를 들고 반복해서 말한다
2는 자동차, 3은 늑대

몸통이 불어날 때까지
8은 비행기, 9는 코뿔소,
마지막은 전화기

숫자놀이 장난감
아홉까지 배운 날
불어난 제 살을 뜯어먹고

첫 번째는 나
열 번째는 전화기 

- 박상순,  「6은 나무 7은 돌고래, 열 번 째는 전화기」-

은퇴 후 갖고 싶은 초능력을 쓰고 그 이유를 발표하라는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손자친구의 마음을 들여다 보고 싶다고 적었다. 심사숙고해서 골라간 비싼 장난감보다 먹고 남은 음료수병에 관심을 보이고 의도치 않은 몸짓이나 말에 깔깔거리는 친구들의 속내를 미리 알고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었던 것이다. 

위 시를 쓴 시인의 원래 의도와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짐작도 안 간다. 이상이 쓴  난해시 <오감도>만큼 어렵다. 나는 손자친구들을 생각하며 이 시를 읽었다. 그러니 암호가 풀리는 듯 비로소 이해가 가고 또 그래서 이해가 안 갔다. 중요한 한 가지는 그래도 즐겁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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