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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10

지난 여행기 - 1999북경(끝) 25. 조선족에 대하여 북경의 마지막 밤, 시드니 올림픽 아시아 최종 예선 한국대 중국의 축구경기가 있었다. 북경에서 경기가 있었다면 당연히 운동장으로 갔겠지만 이 날의 시합은 상해에서 열렸다. 우리는 맥주를 준비해놓고 TV 앞에 앉았다. 그리고 침대가 들썩이도록 응원을 했다. 결과는 우리 팀의 통쾌한 승리였다. 오래 전 중국 현지 공장의 조선족에게 한국과 중국의 운동경기가 있으면 어느 팀을 응원하느냐는 우문을 던진 적이 있다. 평소 매우 궁금했던 것이다. 그 때 그는 '당연히 중국팀'이라고 대답했다. 왜?라고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그는 그런 질문은 우습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이 중국사람이니 당연한 것 아니겠느냐고 되물었다. 맞는 말이다. 그들은 한국말, 아니 조선말을 하는 중국인인 것이다. 그들은 .. 2017. 9. 5.
지난 여행기 - 1999북경12 22. 벽운사 (碧雲寺) 벽운사(보윈쓰)는 1925년 죽은 손문(孫文)의 유해가 남경(南京)으로 옮겨지기까지 2년간 머문 곳이다. 지금도 전당의 중앙 홀에는 손문 상반신 상과 소련에서 보내온 수정관이 전시되어 있다. 이 관은 손문의 유해가 입관이 끝난 후에 도착하여 사용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1911년 신해혁명을 일으킨 손문은 대만에서도 중국에서도 모두 존경받는 인물이다. 손문의 부인인 송경령이 살던 집은 자금성 옆에 있으며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중국 근대사의 격변기를 살아간 송씨 집안의 세 자매의 삶은 자못 드라마틱하다. 첫째 애령은 중국 중앙 은행 총재와 결혼하였고, 둘째 경령은 중국의 국부 손문의 아내가 되었으며, 셋째 미령은 장개석의 후처가 되었다. 흔히들 애령은 부을 사랑하였고, 미령은 권력.. 2017. 9. 5.
지난 여행기 - 1999북경11 20. 폐허의 원명원 (圓明园) 이른 아침 우리는 남쪽 문을 통해 원명원(위안밍위안)으로 들어갔다. 문안에 들어서니 이제껏 우리가 북경의 황실 유적에서 보았던 금빛 기와의 거대한 건물 대신에 잡초 사이로 난 소롯길이 낮은 언덕을 돌아 넘어가고 있었다. 몇몇 노인이 낚시대를 드리운 호수에는 파란 하늘이 시린 모습으로 잠겨 있었고 길가의 잡초는 벌써 노랗게 퇴색한 모습으로 늦가을의 여린 햇살 아래 한가로웠다. 가끔씩 자전거를 탄 사람이 옆을 지나갈 뿐인 싫지 않은 조용함 속을 우리는 걸어갔다. 한 때 번성했으나 지금은 폐허가 되어 버린 어떤 곳에 가면 누구나 조금쯤은 감상적이 된다. 퇴락한 빈집이나 운동장에 가득 잡초가 돋아난 시골 폐교의 깨진 유리창, 아니면 답사 여행때 만나게 되는 텅 빈 폐사지 - 금빛.. 2017. 9. 4.
지난 여행기 - 1999북경9 16. 용경협(龍慶峽)엔 잘못이 없다 우리 가족은 용경협(룽칭사)을 가볼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하여 잠시 고민하였다. 여행 안내 책자나 여행기에는 대부분 이 곳의 풍광에 대하여 '작은 계림'이란 말로 찬사를 늘어 놓았다. 우리는 만리장성과 명13릉 관람을 빼고는 북경 시내 관광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엔 가고 말았다. 그리고 실망하고 말았다. 가기로 한 것은 나의 욕심 때문이었고 실망을 한 것은 나의 착각 때문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기온이 뚝 떨어져 있었다. 매우 쌀쌀한 날씨였다. 호텔 창밖으로 내려다 보이는 공원의 나무들이 바람에 이리저리 크게 몸을 흔들고 있었다. 겨울용 잠바를 준비해 온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나는 호텔 앞에 주차되어 있는 택시와 용경협, 만리장성, 지하궁전.. 2017. 9. 2.
지난 여행기 - 1999북경8 14. 방선반장(倣膳飯莊) 우리는 고궁을 나와 택시로 가까이 있는 북해공원(北海公園 베이하이 꽁위엔)으로 갔다. 고궁의 서북쪽에 위치한 이 공원은 요나라 때 설립되어 역사가 9백년이나 된다고 한다. 역대 왕조의 어원(御苑)이었는데 지금은 북경시민들이 즐겨 찾는 휴식처로 변하였다. 공원에는 북해(北海)라는 유명한 호수가 있으며, 호수중앙에는 인공섬인 경도(瓊島)가 있다. 이 공원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라마교식 거대한 백탑(白塔)이 경도 정상에 있다. 우리는 남문에서 하차하여 영안교를 건너 경도로 들어갔다. 먼저 배를 채운 후 나오는 길에 백탑을 돌아보기로 했다. 이 곳에는 황실요리를 내는 방선반장(팡산 판쥬앙)이 있기 때문이다. 청나라 말기에 절대적인 권력을 자랑했던 서태후의 식탁을 통해 황실음식을 살.. 2017. 9. 1.
지난 여행기 - 1999북경7 12. 천안문 (天安門) 천안문(티엔안먼)은 우리가 9시 뉴스 시간에 북경 특파원이 소식을 전하는 뒷 배경 자주 나와 가보지 않아도 이미 낯익은 곳이다. 한가운데에 거대한 마오저뚱의 초상화가 걸려있고 그 왼쪽에는 '중화인민공화국만세', 오른 쪽에는 '세계인민대단결만세'라고 붉은 바탕에 흰 글씨가 씌여 있는 곳이다. 천안문은 명나라 영락(英樂)15년(1417)에 건설되었는데, 지어질 당시에는 승천문(承天門) 이라고 불렀다한다. 이후 전화로 소실되었다가 1651년 청나라 때 재건되었으며 이때부터 천안문이라고 불렀다. 청나라 때 천안문은 황제가 조령을 발표하던 곳이며, 1911년 12월 25일 중국의 마지막 황제 부의가 퇴위조서를 발표한 곳이고, 1949년 10월 1일 모택동 주석이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을 선.. 2017. 9. 1.
지난 여행기 - 1999북경4 6. 천단공원 (天壇) 호텔 체크인을 마치고 고궁,만리장성과 더불어 북경을 대표하는 천단(티엔딴)으로 향했다. 북경엔 구꿍(古宮,흔히 말하는 자금성)을 중심으로 남북으로는 천단과 지단, 동서로는 일단과 월단이 대칭을 이루고 있다. 각 단에는 각각의 신이 모셔져 있다. 천단에는 하늘의 신이 모셔져 있다. 천단은 명,청 양대의 황제들이 하늘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중국의 황제는 자신이 하늘의 아들로서 하늘의 명을 받들어 인간을 다스린다는, 그래서 자신의 권한이 신성한 것이라는 의식을 백성들에게 심어 봉건체제를 유지하고자 한 것이다. 황제가 제사를 위해 천단으로 이동할 때 백성들은 부복하여야 하며 고개를 들어 황제를 쳐다보면 그 대가는 바로 죽음이었다고 한다. 우리는 천단공원의 남문으로 들어가 기년전.. 2017. 8. 30.
지난 여행기 - 1999북경3 4. 중국 국내선 비행기 타기 먼저 1984년에 중국을 여행한 한 서양 아저씨의 경험담을 들어보자. 물론 15년전의 이야기이니 지금은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우리처럼 중국도 맹렬히 변화하고 있는 중이므로. 나는 공항에 (출발 예정시간) 3시간 전에 도착해야만 했는데 비행기는 5시간이나 지연된 후에야 출발했다. 비행기는 낡은 러시아 제트기로, 금속으로 된 껍데기는 금이 가고 찌그러져서, 쓰다 버린 담배갑의 은박지 같았다. 좌석은 너무 좁게 배치되어 있어 무릎이 아팠고 다리에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였다. 좌석은 꽉 찼으며 사람들은 모두 무거운 짐을 들고 탔다. 그래서 머리통을 깰 만큼 큰 짐짝들이 머리 위 선반에서 떨어졌다. 비행기가 이륙하기도 전에, 사람들은 머리를 숙이고 손을 맞잡은 채 토하기 시작했.. 2017. 8. 30.
지난 여행기 - 1999북경2 2. 먹어야 산다 간 밤에 손님과 마신 술 때문에 배가 더부룩했다. '우정이 깊으면 단숨에 마셔야 한다'는 중국말이 있다는 선배의 충고를 따라 호기를 부리며 수없이 간뻬이(干杯)를 했던 것이다. 밥 생각은 없었지만 나는 한 손으로 배를 쓸며 호텔 식당으로 내려갔다. 그 때 나는 제품 수출 관련하여 중국을 방문 중이었고 하루종일 장거리 이동을 하면서 중국인들과 협상을 계속하려면, 그리고 저녁 때 마다 퍼부어지는 독한 중국술 세례를 견디려면 식사라기 보다 안주를(?) 조금이라도 미리 먹어 두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아침으로 오렌지 쥬스 한 컵과 달걀 후라이 2개를 먹으려고 했다. "오렌지 쥬스 앤 투 후라이드 에그스" " ...???....셔머?" 그러나 주문을 받으려고 다가온 남자 종업원에게 나의 주문.. 2017. 8.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