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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네 발에서 두 발로

by 장돌뱅이. 2025. 4. 25.

큰 손자저하가 두발자전거를 배우기 시작했다.
부모가 날렵한 자전거를 사주었다. 이제 한두 번 타 본 거라 아직 중심을 못 잡고 비틀거리지만 어려운 게 아니니 곧 몸을 세우고 달리게 될 것이다. 

나도 비슷한 나이에 두발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그때까지 탔던 세발자전거가 시시해져 버리고 나면 어른 자전거를 탈 때까지는 키가 작아 기다려야 했다. 당시에는 레저용 자전거라는 것이 없었다. 주위에 있는 어른 자전거는 대개 모두 짐을 싣는 용이었다. 우리집에는 그마저도 없었다. 농산물은 리어카나 소달구지로 실어날렀기에 구태여 자전거가 필요 없었다. 동네 다른 친구들의 사정도 같았다.

나는 동네 친구들과 함께 동네 쌀가게의 배달용 자전거로 배우기 시작했다.
가게 점원은 20대의 청년이었는데 마음이 너그러워 배달이 없는 시간에는 가게 옆 공터에서만 타라는 조건을 붙여 자전거를 흔쾌히 빌려주었다.
물론 어떤 친구들은 멀리 다른 곳으로 자전거를 몰고 가 점원의 애를 태우기도 했다. 

자전거는 짐을 많이 싣기 위해 여기저기 개조를 하고 보조 철근을 덧붙여 무거웠다.
하지만 무거운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안장이 높아 발이 페달에 닿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안장에 앉지 못하고 자전거 프레임 사이로 발을 넣어 타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자전거에 비스듬히 달라붙은 형태로 타는 것이다.
그러다가 중심을 잡는 게 점차 몸에 배면 일단 안장에 올라앉게 된다.

안장에 앉았다고 온전히 자전거를 타게 된 것이 아니다.
양쪽 페달에 온전히 발에 닿지 않으므로  한쪽 페달을 우선 힘차게 누르고 반대쪽에 올라오는 페달을 눌러야 한다. 뒤에서 보면 엉덩이가 좌우로 씰룩거리게 된다.

'숏다리'는 내릴 때도 문제였다. 안장에 처음 올라탔을 때 기분은 날아갈 것 같았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가게 점원이 자전거를 가져오라고 불렀을 때 내려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였다. 다리가 짧으니 부드럽게 정지하며 내리기가 힘들었다.
몇 차례 점원의 독촉을 받고서야 모진 결심을 했다. 서서히 브레이크를 잡으며 공터 주변 언덕 경사면으로  일부러 쓰러지는 하차(?) 방식을 택한 것이다.

나뒹구는 나의 모습을 본 점원은 낄낄거리다가 바쁜 중에도  페달 위쪽 덮개 부분을 밟고 계속 달리면서 천천히 내리라고 시범까지 보이며 친절히 하차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는 내가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도 가장 중요한 팁을 주었다.
"핸들을 넘어지는 쪽으로 꺾어야 돼."
처음에는 그게 이상했다.
안 넘어지려면 넘어지는 반대쪽으로 핸들을 꺾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말을 듣고 난 후 중심 잡는 게 거짓말처럼 빨라졌다.

그 이후 어린 조카에게 자전거를 가르칠 때도 나는 똑같은 비법을 알려주었다.
손자저하에게도 물론 그렇게 했다. 저하는 예전의 나와 똑같이 되물었다.
"반대로 꺾어야 하는 것 아니에요?" 
나는 처음에는 의식적으로 방향을 꺾어야 하지만 한 번 몸이 그걸 기억하게 되면 그 뒤로는 생각하지 않아도 그렇게 된다는 설명을 덧붙여 주었다.

날이 점점 길어지니 다음 주부터는 하교를 한 후에 본격적으로 저하와 자전거 놀이를 할 생각이다.
날이 다르게 자라는 손자들
··· 자전거를 가르치며 돌아보는 흘러간 시간 저편이 가까운 듯 멀다.
개구장이였던 내가 어느새 내가 칠순을 바라보게 되었다니······.

열세살, 까가머리,
중학교 1학년 때
자전거 타기를 처음 배웠다
읍내에서 십여리 떨어진 '청전' 마을에
내 동무가 살았다
토요일 오후면 나는
자전거 빌려 타고
그 동무를 찾아갔다
오월 신작로 양편 논에
모가 파랬고
바람을 받고 달리는 내 가슴으로
길가의 미루나무가 우쭐우쭐 다가섰다
자전거 페달에
키 작은 내 발이 닿지 않아
그게 한 바퀴 돌아오면
다시 밟았다
산중턱에 올라와서
차들이 세차게 달리는 산업도로를
내려다본다
문득 옛 생각이 깊어진다

- 김명수, 「자전거」 - 

둘째저하도 자전거 타기를 좋아한다. 킥보드에 이어 자전거도 형아로부터 물려받았다.
아파트 구석구석과 근처 공원까지 안 가는 곳이 없다.
자신의 자전거는 바퀴가 네 개라고, 형아 자전거보다 바퀴가 많다고 자랑스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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