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 FM 93.9를 매일 듣는다. 처음에는 운전 중에만 들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집에서도 켜놓게 되었다. 93.9에선 이른바 '7080'의 영화 음악이나 팝송, 국내 가요가 비교적 자주 나오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엔 팝송이라면 자세한 가사를 몰라 '오빠 만세(All by myself)', '냄비 위에 밥이 타(Let me hear your body talk, 올리비아 뉴톤 존의 "피지컬"중 )', '코닥!(Hold out, 리오 쎄이어의 '웬 아이 니드 유' 중)'으로 겨우 입을 오물거리는 수준이었다.( 지금도 겨울왕국의 주제가는 '렛잇고'만 부를 수 있는 수준이다.) 여전히 의미를 모르지만 그럭저럭 귀에 익숙해진 노래들이 그리 싫진 않게 되었다.
"Oh Carol" 이나 "The Young Ones"가 나왔을 때 지하철에서 다리를 흔들고 있다고 문자를 보낸 사람이 있는 걸 보면 나보다 더 앞선 연배의 청취자도 있는 거 같다. 목소리로 광고를 보내는 연예인도 내 나이 또래가 많다. 가끔씩 고등학생이 문자를 보냈다며 디제이가 지르는 환호성이 이해가 간다.
거기서 들은 한 여성 청취자의 사연.
아들이 밤늦게까지 안 들어오다가 '부글부글'과 걱정 지수가 최고로 치달을 무렵이 되어서야 들어왔다. 화를 내려는 순간 아들이 애교를 떨며 붕어빵 봉투를 내밀었다.
마음이 다소 풀려 붕어빵을 먹는데 속에 팥이 아닌 크림만 들어있었다.
"엄만 팥이 든 걸 좋아해."
그러자 아들이 말했다.
"그건 여자친구가 다 먹었어."
나도 그랬을까?
그래서 삼십 년 키워놓으니 세 시간만에 '웬 년'이 채가는 게 아들이라 했던가.
산책에서 돌아오는 길에 붕어빵을 샀다.
늘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어 지나치곤 했는데 그 날은 웬일인지 기다리는 사람이 없었다.
팥이 들은 걸로만 사서 아내와 나누어 먹었다.
'반중(盤中) 조홍감'이 아니라도 품어가면 반기실 어머니지만 안 계신지 오래다.
고래빵은
너무 크고
새우빵은
너무 작고
장어빵은
너무 길고
가자미빵은
너무 넓적하고
내 입에 꼭 맞는다
붕어빵
- 이상교, 「붕어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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