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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인류세 쫌 아는 10대』

by 장돌뱅이. 2023. 2. 12.

『인류세 쫌 아는 10대』는 저자가 대학 시절의 동아리 회원이어서 읽게 되었다.
저자가 환경 전문가임을 이미 알고 있는 터라 책의 주제가 환경일 거라고 짐작은 했지만 '인류세'는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뭐지? 인류가 '힘(勢)'으로 자연을 오염시켰다는 고발일까? 아니면 오염시킨 자연에 대해 인류가 앞으로 지불해야 할 '대가(稅)'를 말하는 것일까? 

알고 보니 인류세(人類世)는 지질학 용어였다. 지구는 자신의 역사를 지층에 기록한다. 지질학자들은 46억 년에 달하는 지구의 역사를 지층의 특성에 따라 구분한다.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의 대(代, Era)라는 큰 구분은  여러 개의 '기(記, Period)'로, '기'는 다시 여러 세(世, Epoch)로 나뉜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는  약 1만 1,700년 전에 시작된 신생대 제4기 '홀로세(Holocene Epoch)'이다. 

새로운 지질시대 '인류세(Anthropocene)'의 등장은 지구에 커다란 변화가 진행 중에 있으며 그 주된 요인이 인류라는 뜻이다.  책에서는 그 시점을 대략 1950년 경부터라고 말하고 있다.  산업혁명과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과학과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1945년 인류가 핵폭탄을 사용한 이후 강대국들의 경쟁적인 핵실험이 맹렬하게 행해지던 시기였다. 

우주의 빅뱅으로 태어난 지구는 38억 년 전에 비로소 생명이 살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고 한다. 4억 년 전엔 육상동물이 생겨나고,  공룡시대인 중생대 쥐라기· 백악기를 거쳐, 현생 인류는 40만 년 전에 나타났다. 오래 전인 것 같지만 장구한 지구의 역사에 견주면 작은 점에 불과한 가까운 과거이다.  전체 역사를 12개 월로 생각하면 인류는 겨우 12월 31일 23시 2분에 출현한 것이다.

오랜 세월동안 지구의 다른 생명체는 환경에 순종하고 적응해 온 것에 비해 이 '늦둥이 막내'는 환경 자체를 변화시키는 유일한 생명체가 되었다. 인류는 문명과 과학과 진보의 이름으로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다른 생명체를 멸종시켰다. 그것도 매우 짧은 시간 동안 급속하게. 

그 결과 우리는 대기 오염, 수질  오염,  방사능 오염, 생태계 교란, 생명체의 멸종, 쓰레기와 플라스틱 범람, 독성 물질 사용, 이산화탄소 배출, 온난화, 만년설과 영구동토층의 축소, 해수면 상승, 폭염, 폭우, 폭설 등등 기후변화을 나타내는  단어와 현상에 익숙하게 되었다. 동전의 양면처럼 인류가 생활의 편의와 풍요의 이면에 함께 만들어온 것들이다. 

『인류세 쫌 아는 10대』은 이전의 시기와 확실히 구별되는 인류세의 흔적으로 핵 실험으로 인한 방사선 물질과 석유의 산물인 플라스틱, 그리고 (뜻밖에도) 닭뼈 화석을 꼽았다.

1945년 일본의 두 도시에 투하되어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핵폭탄의 위력은 이후 냉전의 국제 정세 아래서 군사적 목적의 핵 개발 시대를 열었다. 세계 도처에서 수많은 핵실험이 이루어졌고 그 결과 남극의 빙하에서조차 1963년 기준, 평균치에서 50배나 높은 방사능 수치가 검출되었다. 지구는 그 시기의 특성을 몸속에 정직하게 기록해두고 있었던 것이다.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핵발전소는 1986년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 2011년 3월 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누출 사고라는 재앙을 일으켰다. 체르노빌 원전 폭발로  20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며 약 9만 3천 명의 피폭자들이 암과 같은 질병에 걸렸다.  또한 원전 반경 30킬로미터 이내의 지역에 살던 약 37만 명의 주민이 삶의 터전을 잃고 떠나야 했다. 일본이 바다에 버린(앞으로도 버릴)  원자로 노심보다 1만 배나 높은 방사능 오염수는 앞으로 인류에게 어떤 재앙을 가져다줄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직 핵은 인간 관리 능력의 밖에 있는 것이다.

*2015년 나라별 1인당 플라스틱 연간 사용량 (출처 : 『인류세 쫌 아는 10대』)

플라스틱은 19세기 후반에 최초 등장하여  제2차세계대전 이후 대량 생산되면서 현대 문명의 새 장을 열었다. 목재보다 강하고, 철보다 가벼우며 고무보다 단단한 데다 가격까지 싼, 게다가 깨지지도 않는 데다가 모양도 자유자재로 만들어 낼 수 있고 다양한 색상을 입힐 수 있는 이 발명품은 모든 산업과 일상생활에 필수품이 되었다. 그러나 잘 분해되지 않는 플라스틱의 또 다른 특성은 생태계를 위협하는 칼날이 되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1950년엔 불과 200만톤이었던 연간 플라스틱 생산량은 2019년에는 4억 6천만 톤으로 급증되었다. 이중 79%는 매립되고 12%는 소각되며 재활용은 고작  9퍼센트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생산된 플라스틱은 세계에서 8번째로 넓은 아르헨티나의 국토 전역을 발목 높이로 덮을 만큼 어마어마한 양이며, 지구의 바다 위에는 떠다니는 플라스틱이 모여 곳곳에 거대한 쓰레기섬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플라스틱은 파도와 햇빛으로 잘게 부서지거나 서 바닷속으로 녹아들어 바다 생물의 몸속에 침투하여 그들의 생존을 위협한다. 또한 물론 먹이사슬을 통하여 인류의 식탁 위에도 오르고 있다. 지난 10년간 필리핀에서 자연사한 고래 63마리 중 50마리의 뱃속에서 플라스틱 쓰레기가 나왔으며 북해 연안에서 죽은 갈매기의 95퍼센트에서도 미세플라스틱이  나왔다. 그런가 하면 두바이 사막의 낙타 위 속에서도 비닐봉지가 발견된다.

쥐라기와 백악기를 대표하는 화석이 공룡화석인 건 이해가 가지만 현재의 인류세를 대표하는 화석이 닭뼈라는 건 놀랍고 선뜻 이해도 가지 않는다. 하지만 한 해 동안 전 세계 지구인이 무려 650억 마리의 닭을 먹어치운다거나 우리나라에서는  2017년  9억 3,600만 마리가 도축되어 1명당 매년 20마리의 닭을 먹어치웠다는 통계를 접하게 되면 고개가 끄덕여지게 된다. 현재 세계 77억 인구는 239억 마리의 닭과 함께 동거를 하고 있다. 사람 한 명당 닭 3마리인 셈이다. 먼 훗날 지구를 방문하여 이 시대의 지층을 연구하는  외계인이 있다면 그는 아마 지구가 닭의 행성이라고 생각할 것이라는 책 속의 유머가 근거 없는 유머만이 아닌 것이다.

오늘날 닭은 이미 단순한 가축이 아닌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는 상품이다. 닭은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척추동물이 되었으며 인간에 의해 다리와 가슴살이 비대해지는 등의 원형에 가장 많은 변화가 가해진 동물이기도 하다.『죽음의 밥상』이란 책에선 '이제 닭은  1950년대의 조상들보다 세 배나 빠르게 성장하면서 먹이는 3분의 1밖에 먹지 않는다'고 말한다. 닭의 수명은 10년 정도이지만 공장식 사육에선 성장 발육제로 빠르게 키워 5∼6주 사이에 도축되어 상품이 된다. 자연스러운 닭의 생리적 습성과 모습이 아닌 변형된 상태로 키워지고 죽임을 당하는 것이다.

닭뿐만이 아닐 것이다. 항생제와 성장 촉진제 그리고 공장형 가축 사육은 조류 독감이나 돼지 열병 같은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심각한 상황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지난 몇 년 우리를 고통으로 몰아넣은 휘몰아친 코로나 팬데믹도 이렇게 인류에 의해 자행된 동물의 상품화와 학대, 파괴된 생태계와 먹이사슬의 불균형에서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전 글 참조 : 
<<육식의 반란>>  중 "팝콘치킨의 고백")

 

『육식의 반란』

유튜브로 전주MBC의 3부작으로 된 다큐멘터리『육식의 반란』을 보았다. 2012년 12월에 방송된 『육식의 반란』1편 "마블링의 음모"는 이른바 '꽃등심'이나 '와규(和牛)', '투뿔(++)' 등으 로 부르는

jangdolbange.tistory.com

지구의 역사에는, 우리가 잘 아는 공룡의 멸종을 포함한, 다섯 번의 대멸종이 있었다. 그것은 끔찍한 재난이라기보다는 지구 혹은 우주라는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가 자기 운동의 과정에서 맞이한 일종의 자연현상이었다.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여섯 번째의 '멸종'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인류가 자신의 행위로 멸종의 원인을 제공하는, 피할수 있었던 인위적 대재난이라고 많은 과학자들이 경고하고 있다. 그것이 우리가 인류세에 주목하는 이유다.

인간은 공룡의 멸종을 연구한다지만 공룡은 무려 1억 5천만 년 이상 존재를 했던 생명체이다. 현생 인류가 겨우 40만 년 만에 지구의 종말을 걱정하게 만들었다면, 인류는 공룡 멸종의 원인을 연구할 것이 아니라 그 장구한 세월 동안 존재할 수 있었던 공룡의 생존 비결을 배워야 할 것이다.

책 말미에 내가 평소처럼 생활하면 얼마만큼의 토지가 필요한지(생태 발자국 Ecological Footprint )를 알아보는 16개의 설문이 있었다.  나의 점수는 275점으로 모든 사람들이 나처럼 살면 지구가 3개나 필요하다고 나왔다. 익숙해진 생활양식을 총체적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이야기겠다.

지구 환경을 지키는 행동 강령 5가지도 있다. 개인적인 '지키기'가 잘못된 방향으로 치닫는 인류세를 올바른 방향으로 돌려놓기에는 역부족이겠지만, 환경을 이야기할 때 자주 말하는 원칙,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자'에 충실한 일상적인 지침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우선 나는 아내에게 자주 지적받는 화장실 불끄기 부터 잊지 말아야겠다.)

1. 소중한 생명의 물 아껴쓰기
2. 쓰레기 줄이기
3. 전기 절약하기 - 대기 전력을 줄이자.
4. 일회용품 줄이기
5. BMW 이용하기
    - B : Bus 또는 Bicycle, M : Metro (지하철), W: Walk(걷기)
6. 올바른 먹을거리 선택(즉석 가공식품 먹지 않기)

『인류세 쫌 아는 10대』는 청소년을 위한 환경개론서다. 물론 나처럼 의식도 행동도 '생태맹'인 어른이 읽어도 무난해 보였다. '∼다'로 끝나지 않고 이야기 투로 글을 풀어나간 점도 친근감이 있어 좋았다. 이오덕선생님도 글보다 말이 우선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비슷한 내용이 책의 여기저기에 흩어져 나오는 산만함은 약간의 아쉬움이었지만.

곧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손자'저하'가 10대가 되면  이 책을 안 읽어도 되는 세상이면 좋겠다. 그런데 그럴 기미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환경 문제를 포함한 지금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는 나처럼 은퇴하여 백수가 된 우리 세대가 어린 세대에게 진 빚이다.
위 여섯가지 행동지침 이외에 무언가를 더 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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