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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육식의 반란>>

by 장돌뱅이. 2021. 6. 9.

유튜브로 전주MBC의 3부작 다큐멘터리『육식의 반란』을 보았다.

2012년 12월에 방송된 『육식의 반란』1편 "마블링의 음모"는 이른바 '꽃등심'이나 '와규(和牛)',
'투뿔(++)' 등으 로 부르는 소고기 지방(마블링)에 관한 이야기이다. 마블링은 소들을 광활한 목초지에 소를 풀어놓는 방목에서 공장식 축산으로 전환하면서 생겨난 '문제'다.
미국 축산업자들은 짧은 기간에 대량 생산을 할 목적으로 소들을 축사에 가두고 활동을 제한하였다.
또한 사료를 풀 대신 옥수수를 먹이면서 소의 육질에 마블링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렇게 만든 소고기는 연한 육질로 소비자들의 호응을 받았다. 

마블링의 신화는 일본과 한국으로 전해져 근육 사이에 지방이 미세하게 분포된 소고기를 최고급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소고기의 지방은 돼지고기의 그것과는 달리 몸에 좋다는 속설이 있지만 사실은 어느 것이나 몸에 해로운 기름덩어리일 뿐이다. 현재 미국이나 호주에서 소비자들이 마블링이 없는 고기를 선호하는 이유이다.

소고기가 흔한 세상이 되었다. 전국의 거의 모든 지자체마다 자신의 이름을 딴 상표의 한우를 내놓는다. 한우의 등급체계가 마블링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탓에 어느 곳이나 지방 함량이 높은 소고기를 경쟁적으로 생산한다.

한동안 나도 '두부처럼 부드러운 식감'의 꽃등심을 최고로 쳤다. 지금은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찔깃찔깃 씹는 맛이 있는 육질의 소고기를 찾게 되었다. 건강에 대한 지식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어렸을 적 먹던 소고기 맛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부터이다.

『육식의 반란』의 2편 "분뇨사슬"은 공장화 된 대량 사육이 불러온 환경오염에 관해 말한다. 

우리나라 소, 돼지, 닭은 약 4천만 마리라고 한다. 이들은 서울의 인구를 상회하는, 사람 1,400만명에 해당하는 똥과 오줌을 배출한다.
(소 한마리는 사람 16명 분량의 배설물을 내놓는다. 200마리의 돼지는 하루에 똥 4톤과 오줌 5톤을배출한다. 6만 마리의 닭을 키우는 양계장에서는 한 주에 89톤의 배설물이 나온다.)
문제는 다량의 살충제와 항생제가 함유된 이 엄청난 양의  오물을 처리할 비용은 높고, 시설도 부족하다는 점이다. 결국 어쩔 수 없이, 혹은 고의적으로 많은 양의 오물이 바다나 하천에 버려진다.

그 결과, 좁은 국토의 우리나라는 세계 제1의 토양 오염 위험국가가 되어버렸다. 문제의 해결은 처리 시설을 늘리는 데 있지 않고 가축 사육 수의 조절에 있다. 그를 위해선 육류에 대한 시장의 수요가 감소해야 한다. 다시 말해 각자가 고기를 덜 먹는 수밖에 없다.

『육식의 반란』3편은 "팝콘치킨의 고백"이다.
성장이 정상보다 3배나 빠르다는 '팝콘치킨'은  45일이면 3kg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한국 닭의 평균 도계 중량은 1.5kg이다.
일본의 2.8kg, 미국의 2.5kg과 비교하면 병아리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만 유독 작은 닭이 시장에 나오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른바 '영계'가 몸에 좋아서? 부드러운 육질을 선호해서? 아니다. 병이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방송은 말한다. 아무리 항생체와 살충제를 투입해도 열악한 환경에서 밀식사육을 하는 병아리는 한 달이 넘어가면 전염병이 발생한다. 그 이전에 어린 닭을 서둘러 도계장으로 보내야 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조류독감은 연례행사가 되었다. 정부는 국민의 세금으로 보상금을 지급하면서 닭과 오리 수천만 마리를 살처분했을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닭고기의 맛은 뼈와 머리, 닭발, 껍질에 많이 있다고 한다. 생후 20일의 병아리에는 제대로 된 닭고기의 맛이 들어있지 않다.  '영계'가 특별히 몸에 좋다거나 삼계탕에 '영계'가 필수라는 생각은 근거가 없는 것이다. 삼계탕의 역사는 길지 않다.  기껏해야 100년 안쪽이다. 기록으로는 일제 강점기에 처음 나왔다고 하지만, 지금처럼 일반화된 것은 양계산업과 인삼재배가 활성화된  1960년대 이후이다. 더군다나 조선시대에 인삼은 재배와 가공, 유통까지 국가가 철저히 관리했기에 매우 귀한 재료였다.

무엇보다 '영계'라는 말의 내력이나 출처가 의심스럽다. 옛날엔 '영계백숙'이란 말 자체가 없었다. 조선시대에 가장 흔했던 닭요리는 물론 '백숙白熟'이다. 백숙은 닭고기만이 아니라 아무런 조미도 하지 않고 쩌낸 모든 고기 음식을 백숙이라고 했다.  오늘날의 백숙은 조선시대의 '연계증軟鷄蒸'과 비슷하다. 연계증은 '연계백숙軟鷄白熟' , 혹은 물로 쪘다고 수증계(水蒸鷄)라고도 했다 한다. 하지만 귀한 사위에게도 묵은 씨암탉(陳鷄)을 대접했지 '영계'를 잡지는 않았다.(*황광해의 글 참조)

그런데 비즈니스의 영악함을 감추기 위해 한국인이 옛날부터 '영계'를 좋아했다고 바람을 잡으면서 약품 범벅의 병아리를 치킨으로, 삼계탕으로 국민들에게 공급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모든 문제는 공장식 축산이라는 대량 생산을 위한 기업화에서 비롯되었다. 수요가 공급을 필요로 했고 또 공급은 수요를 부추겼다. '더 빠르게, 더 많이'라는 효율의 논리는  건강과 환경에 재앙을 불러왔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누리는 풍요의 의미를 돌아보아야 할 때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동물들 중에서 인간의 똥이 가장 고약한 냄새를 피운다고 한다.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먹어치우는 탐욕스러운 식성이 큰 이유일 것이다. 하물며 자연스럽게 성장한 생명이 아닌 화학적 약품으로 만들어낸 고깃덩어리까지 먹고 있으니 말할 것도 없겠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우리 몸에 들어가 살이 되고 피가 되고 뼈가 된다. 그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 음식물이 지닌 업까지도 함께 먹어 그 사람의
체질과 성격을 형성한다. 이를테면 육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고기를 먹을 때 고기의
맛과 더불어 그 짐승의 업까지도 함께 먹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 짐승의 버릇과
체질과 질병 그리고 그 짐승이 사육자들에 의해 비정하게 다루어질 때의 억울함과 분노와
살해될 때의 고통과 원한까지도 함께 먹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다.

-법정스님, 『홀로 사는 즐거움』중에서-

내공이 깊은 스님의 글은 섬뜩하게 다가오지만 단번에 육식을 끊고 채식으로 돌아서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변화는 익숙한 것들과 결별하는데서 시작된다고 하지 않던가.
단호한 내리침 같은 결별을  염두에 두면서 아내와 조금씩이라도 육식을 줄이자고 다짐해 보았다.
최근에 읽은 일본 만화 『심야식당』19권에는 이런 말이 나왔다.

"밥에다 낫토랑 된장국만 먹어도 죽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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