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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제주 함덕 17

by 장돌뱅이. 2022. 11. 5.

전형적인 가을 날씨. 티끌 하나 없는 하늘 아래로 한라산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어제 아내의 지인이 같은 숙소 옆방에 체크인을 했다. 함덕이 처음인 지인을 위해 아침에 빵집 "오드랑"에서 마농바게트를 사 오며 우리도 같은 것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그로 인해  한동리에서 언덕과 들길을 따라 행원포구까지 걷는 것으로 평소보다 조금 늦은 아침 산책을 했다. 길은 밭담을 끼고 휘어지며 오르내렸다. 마치 오래간만에 고향을 찾아가는 듯한 따뜻한 감성이 샘솟는 길이었다. 그렇듯 걷는 일은 숨어있는 내면의 길을 찾는 일이기도 하다. 길옆 표지판에 박노해의 글이 쓰여 있었다.

"마음아 천천히 천천히 걸어라. 내 영혼이 길을 잃지 않도록."  

조선시대 군사, 통신 시설로 사용되었던 한동리의 좌가연대(佐可烟臺).

세화포구 근처 연미정에서 전복밥을 먹었다.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은 식당이고 음식이었다. 하지만 그 또한 여행에 늘 있는 일이다. 바람과 파도는 잔잔했고 기온도 온화한 오후였다. 해안길을 걸어  해녀박물관으로 향했다. 

해녀박물관은 말과 글로만 알아오던 해녀의 삶과 일터에 대한 이모저모를 실물과 모형, 사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곳이었다. 태왁, 망사리, 빗창(해물 채취 도구), 호미, 까꾸리, 물안경(족세눈, 왕눈) 등 작업 도구와  물수건, 물적삼, 물소중이, 까부리(모자) 등 해녀가 물질할 때 입는 물옷 같은 것에서부터 불턱이나 지드림 같은 생활의 일면까지 짧은 시간에 알아볼 수 있었다.

해녀박물관
물수건, 물적삼, 물소중이 등으로 구성된 해녀의 물옷
까부리는 물질할 때 쓰는 모자로 뒷목덜미와 양빰을 덮는다

불턱은 해녀들이 바다로 들어가기 위해 옷을 갈아입거나 작업 중 물에서 나와 잠시 휴식을 취하는 곳이다. 물질에 대한 기술과 정보를 교환 습득하는 곳이며 해녀 생활의 중요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불턱 모형

제주 해녀들은 음력 2월에 영등굿을 할 때 쌀을 한지에 싸서 바다에 던지는 '지드림'을 한다. '지드림'은 풍어와 안전조업을 요왕(용왕)께 빌면서 쌀알을 한지에 싸고 무명실로 묶은 '지'를 바다에 던지는 것이다. 

옛날에는 해녀 대신에 잠녀(潛女) 또는 잠수(潛嫂)라고 했다고 한다. 잠수의 수는 물 수(水)가 아니라 형수 수(嫂)를 써 존칭의 의미를 담았다. 그러나 해녀의 실제 삶은 한자 표기와 상관없이  '태왁을 등에 지고 가족을 등에 지고' 바닷속으로 들어가야 했던 고단한 것이었다. 거기에 중앙 정부가 요구하는 공출의 짐까지 져야 했다.  해녀는 모진 삶의 시련을 이겨낸 제주의 상징이자 표상과 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징그럽게 따라다니는
세월의 밑바닥으로부터 삶을 건져 올리는
숨비소리는

살아가는 게 살아가는 게 아니라서
한이 맺힌 곳에 또 한을 맺게 하는 삶을 씹어 뱉는

모든 삶의 근거를 되묻는 말같이
죽은 줄 알았던 내 안의 내가 울기 시작하는 것같이

바다를 거울삼아 자맥질가는 말문이 막히는 소리,
생의 바깥에서 근근이 살아가는
소박하고 선량한 눈물이고 아픔인 소리 같다, 이런 슬픔이

전복이며 고동, 성게까지
죽지 못해 이어가는 삶까지
지나가 버린 낮과 밤까지

수평선에 빨래처럼 걸쳐놓고는 위험을 무릅쓰고
바닥을 헤엄쳐 다니느라 숨이 잦아드는 헛바람 새는 소리
독사같이 모질고 매몰차다

-  박종국, 「숨비소리」 -


해녀박물관 전망대에서 본 세화리 앞바다

해녀박물관의 정면 언덕 위에는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탑'이 서있다. 1932년 1월 일제의 가혹한 수탈에 항의하여 봉기했던 구좌, 성산, 우도 일대의 해녀들을 기려 세운 것이다.

조천읍도서관에 책을 반납하고 빌리러 가는 길에 하늘의 구름 모양이 예사롭지 않았다. 저녁노을도 그랬다. 두부볶음김치를 만들었다. 아내가 특히 좋아하는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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