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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제주 함덕 19

by 장돌뱅이. 2022. 11. 9.

제주에 와서 한 번도 거르지 않았던 아침산책을 나가지 않았다. 날이 더 추워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누워서 조천읍도서관에서 빌려온 (만화)책을 읽는 맛이 좋았기 때문이다.
한껏 게으른 자세로 있다가 옆방의 지인이 준 감자를 삶아 아침으로 했다.

나는 간장게장을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지만 아내는 매우 좋아한다. 검색을 해서 간장게장을 먹으러 갔다. 며칠 전 아내가 평소에는 외면하던 해장국을 다분히 나를 위해 먹으러 나선 것과 같은 이유다. 부창부수(夫唱婦隨)와 부창부수(婦唱夫隨)의 공존이다. "제주동문 간장게장"의 게장은 적절한 염도와 달작지근한 게살로 그런 나를 영락없는 밥도둑으로 만들어 놓았다. 초로의 주인아주머니 혼자서 운영하여 조용하고 아담한 분위기도 좋았다.

식당을 나와 관덕정으로 가는 길에 동문시장을 지났다. 여행객들로 북적였다. 아내가 점찍어두었던 오메기 떡집은 애석하게도 당일 준비 물량이 완판 되어 문을 닫은 상태였다.

관덕정(觀德亭)과 그 앞마당은 원래 활쏘기대회를 비롯한 관아의 옥외 행사가 열리던 곳이었다.

*「탐라순력도」 중 "제주사회(射會)" 일부분. 오른쪽에 관덕정이 보인다.


근대에 들어서면서 관덕정 앞 광장은 제주의 커다란 역사적 사건의 현장이 되었다.

1901년 "신축항쟁(이재수의 난)" 때에는 민란의 장두였던 이재수가 프랑스 선교사를 등에 업고 각종 악행을 저지른 천주교인 300여 명을 이곳에서 처단한(현기영의 소설 『변방에 우짖는 새』 참고) 하였으며, 특히  4·3항쟁이 이곳에서 있었던 1947년 3·1절 발포사건으로 시작되었고, 지도자였던 이덕구가 이곳에서 처형되어 실질적으로 항쟁이 끝난 현장이기도 하다. 

관덕정 광장에 읍민이 운집한 가운데 전시된 그의 주검은 카키색 허름한 일군복 차림의 초라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집행인의 실수였는지 장난이었는지 그 시신이 예수 수난의 상징인 십자가에 높이 올려져 있었다. 그 때문에 더욱 그랬던지 구경하는 어른들의 표정은 만감이 교차하는 듯 심란해 보였다. 두 팔을 벌린 채 옆으로 기울어진 얼굴. 한쪽 입귀에서 흘러내리다 만 핏물 줄기가 엉겨 있었지만 표정은 잠자는 듯 평온했다. 그리고 집행인이 앞가슴 주머니에 일부러 꽂아놓은 숟가락 하나, 그 숟가락이 시신을 조롱하고 있었으나 그것을 보고 웃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하여 그날의 십자가와 함께 순교의 마지막 잔영만을 남긴 채 신화는 끝이 났다. 민중 속에서 장두가 태어나고 장두를 앞세워 관권의 불의에 저항하던 섬 공동체의 오랜 전통, 그 신화의 세계는 그 날로 영영 막을 내리고 말았다.

- 현기영의 『지상의 숟가락 하나』 중에서 -

서울에 있을 때는 잘 몰랐지만 제주에 와서 보니 거의 매일 저녁 4·3 관련한 뉴스가 나와  항쟁이 여전히 진행 중임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얄궂게도 2021년 3월 5일 제주4·3특별법 개정안 통과를 축하하는 기념식이 열린 장소도 이곳이었다. 

돌하르방은  제주 어디 가나 만날 수 있는 쉽게 만날 수 있다. 육지의 장승처럼 잡귀를 막아내는 수호신 역할을 해왔다고 한다. 무섭기도 하고 익살스럽기도 하다. 쉽게 만날 수 있다고 했지만 대부분 최근에 만들어진 것들이고 18세기부터 내려오는 오리지널 돌하르방은 모두 47기뿐이라고 한다.

유홍준은 삼성혈과 관덕정에 있는 하르방이 제주 돌하르방의 전형성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했다. 제주 도서관에서 빌린 그의『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제주편』을 들고 가서 관덕정 돌하르방을 쳐다보며 읽었다. '철모를 삐딱하게 걸치고 차렷 자세를 취한 헌병'이란 표현이 재미있다.

관덕정 앞에는 명작 중의 명작인 한 쌍의 돌하르방이 있다. 장승의 기본 모습대로 통방울 눈에 주먹코를 하고 한 손은 가슴에, 한 손은 배에 움켜쥐고 머리에는 벙거지를 쓰고 있지만 유독 관덕정 돌하르방이 멋있고 힘있고 재미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 표정과 몸짓의 표현에 있다. 통방울눈과 주먹코는 한껏 과장해 절집의 사천왕처럼 무섭고 이국적인 풍모다. 그런데 그 사나운 표정과는 어울리지 않게 벙거지를 꺼벙하게 올려써 웃음이 절로 나온다. 마치 차렷 자세를 한 육군 헌병이 철모를 장난스럽게 걸친 것과 같다. 게다가 고개를 6시 5분으로 비스듬히 숙이고 몸을 왼쪽 또는 오른쪽으로 약 80도로 비틀어 정면정관(正面正觀)을 피했다. 덕분에 관덕정 돌하르방에서는 생동감과 인간적인 친밀감이 동시에 느껴진다. 그래서 관덕정 돌하르방은 계층과 지역과 시대를 넘어 누구나 좋아하는 형상이 되어 마침내 제주의 마스코트로 각광을 받고 있다.

-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제주편』중에서 -

 관덕정 옆 제주목 관아는 일제강점기에 집중적으로 흔적도 찾기 힘들 만큼 파괴되었으나 고증을 통하여 2002년에 복원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오래 그 자리에 있어온 관덕정과는 달리 새집의 이물감은 어쩔 수 없어 보였다. 제주목 관아에 대해 아는 지식도 없으니 공원을 산책하는 기분으로 천천히 걸어 다니다 나왔다. 그나마 따사로운 가을 햇빛이  있어 아내와 오붓한 분위기를 나눌 수 있었다. 

저녁엔 열무김치비빔밥. 이 또한 아내가 즐겨하는 음식이다.
열무김치를 담글 수 없는 사정이라 마트에서 사다가 소스만 만들어 비비고 달걀프라이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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