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함덕 해변을 걸었다. 기온은 다시 온화해지고 바람도 한결 잦아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오드랑 빵집에서 어니언 베이글을 사다가 버섯수프와 함께 먹었다.
제주살이가 10일 정도 남았으므로 이제부턴 냉장고 속의 식재료를 줄여나가야 한다.
점심엔 며칠 전 아내의 친구가 사다준 갈치를 꺼냈다. 재료가 워낙 싱싱한 터라 그냥 프라이팬에 구웠을 뿐인데도 여느 갈치구이 전문식당의 맛에 뒤지지 않았다
제주시 용담동에 있는 용두암은 해외여행 자유화 이전, 제주도가 신혼여행지로 각광을 받던 시절에 제주 인증샷을 찍는 장소였다. 신혼부부의 집들이를 갈 때마다 벽에 걸린 용두암 배경의 사진을 볼 수 있었다.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가지 못한 나는 아내에게 빚처럼 남아 있는 곳이기도 했다.
세월이 지나 아내와 용두암을 찾았을 때 우리는 실망을 하고 말았다. 기묘한 형상은 맞으나 우리가 사진을 두고 상상하던 만큼은 아니었던 것이다. 주변의 난삽한 환경을 카메라 뷰파인더에서 배제하기 위해선 하늘을 배경으로 용두암을 잡아야 했다. 몇십 년 만에 다시 용두암에 가보았다. 주변은 단정하게 정비되어 있었지만 거대한 호텔과 상가들이 밀집해 있어 용두암은 더욱 왜소해진 느낌이었다. 하늘을 배경으로 용두암을 잡기 위해선 더욱 가까이 다가서 자세를 낮추어야 했다.
용두암에서 나와 해안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걸었다. 카페와 음식점, 노래방 등이 줄지어 서있고 차량의 통행량이 많은 도로였다. 우리는 바다를 바라보며 걸었다. 거칠 것 없이 탁 트인 바다를 보면 일상에 옹졸하게 매어있던 마음이 잠시 풀어지기도 한다.
용담포구를 지나 어영공원까지는 대략 3km의 거리였다. 어영공원 옆 카페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딸아이네와 지인들과 문자를 주고받았다. 아내는 오늘 하루 대략 5km(8천 걸음)쯤을 걸었다. 매일이 신기록이다. 제주 전지훈련(?)의 성과가 만족스럽다.
매일 저녁 삼사십 분은 손자친구들과 영상 통화를 한다.
첫째 친구는 요즈음 수수께끼를 좋아하여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준비를 해두어야 한다.
-초록색 옷을 입고 있을 때는 집에만 있지만 빨간색이나 노란색 옷을 입으며 집을 떠나는 것은?
(나뭇잎)
난센스 퀴즈도 이해를 잘한다.
-축구선수들은 어떻게 웃을까?
(킥킥킥)
첫째 친구는 요즈음 세 자릿수 덧셈과 뺄셈을 한다. 나보고 문제를 내라고 해서 의기양양 풀기도 하고, 거꾸로 자신이 '어려운' 문제를 만들어 내가 쩔쩔매며 푸는 모습을 즐기기도 한다.
둘째는 중구난방 종합 엔터테이너가 되어야 한다. 사진을 보여주고 노래를 불러주거나 이야기를 해야 한다. 물건을 뒤로 숨기는 사소한 개인기에도 과장된 놀라움을 표해야 한다. 자신이 통화하는 중에는 누가 옆에서 끼어들면 안 된다. 둘째가 할아버지를 부르는 소리는 다부지다. 나의 모습이 화면 속에 보이지 않으면 점점 크게 부른다.
"하브지! 하브지! 하브지!"
나는 그게 좋아서 자꾸 숨곤 한다.
아기는 어른의 질서보다도
장난감의 무질서 속에 산다
할아버지는 그 여백 속에 있다
-김광섭, 「아기와 더불어」 중에서 -
저녁은 밥 대신 해물잡채를 만들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