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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제주 함덕 22

by 장돌뱅이. 2022. 11. 10.

아침 산책 대신 엎드려 강풀의 만화 『조명가게』를 읽었다. 세상에 못다 한 사랑과 책임과 반성을 다하기 위해 떠도는 영혼들의 이야기가 너무 작위적이긴 했지만 따뜻해서 좋았다.

버스를 타고 제주 시내로 갔다. 김만덕기념관을 가기 위해서였다.
김만덕기념관은 'MUST'의 목표가 아니라 단순히 걷기의 반환점이었다.

동문시장 근처에서 내려 걷다가 빵집 "아베베"를 다시 보게 되었다. 며칠 전 간장게장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 맞은편 아베베 앞에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룬 사람들이 시선을 끌었다. 뭘까  검색해 보니 유명 빵집이었다. 나오는 사람들 손엔 모두 빵을 담은 커다란 봉투 하나씩이 들려 있었다. 손님들이 너무 많아서인지 매장 내엔 테이블도 없고 오로지 포장 판매만 하고 있었다.
마치 세상의 모든 빵들이 이곳에서 나가는 것처럼 바빠 보였다.

그런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가게 안에만 몇 명의 손님이 있을 뿐 가게 밖에 긴 대열이 없었다. 평소 제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 해도 기다리면서까지는 먹을 생각이 없지만 이렇다면 굳이 지나칠 이유가 없어 우리도 들어가 몇 개의 빵을 골랐다.

동문시장 가까운 길가 상점에서 제주산 용과를 내놓고 있었다. 

용과(Dragon Fruit)는 베트남 중부지역이 원산지라고 한다. 해변의 모래 섞인 땅에서 자라는 선인장에 달리는 과일이다. 겉은 붉지만 속은 흰색에 검은깨 같은 것이 박혀 있다. 식감은 푸석하고 밍밍한 맛이다. 최근 제주도에서 온실로 재배되고 있다고 하는데 상업적인 결실을 맺었는지는 모르겠다.

지난 6월 태국을 다녀오며 여행기에 용과에 대해 쓴 글이다.
이렇게 상품으로 시장에 나온 제주산 용과를 직접 보니 신기했다. 

점심은 관덕정 뒤편 서문로터리 근처 복집식당에서 갈칫국으로 했다.
예전에도 먹어본 적이 있어 갈치로 국을? 하는 신기함은 없어졌지만 비린내가 나지 않을까 하는 소심한 마음은 여전하여 조심스레 국물부터 맛보았다. 괜찮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각재기국을 두 번이나 먹은 뒤라 아내와 나는 각재기국 우세의 평가를 내렸다.  갈칫국은 각재기국처럼 얼갈이배추가 들어가지만 추가로 늙은 호박이 들어간다. 호박이 무슨 역활을 하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식사를 하고 김만덕기념관으로 가는 길에 관덕정을 지났다. 단체 관광객들로 보이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제주목 관아로도 같은 여행사로 온 사람들이 입장을 하는 중이었다. 코로나가 끝나가면서(?) 단체 여행객들이 많이 늘어난 듯하다. 작년 제주살이 동안은 볼 수 없었던 여행사 버스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중국인 관광객들이 보이지 않는 것은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들을 학수고대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도 많을 터이니.

산지천을 따라 부두 쪽으로 내려가는데 초등학생 아이들 셋이서 발가벗고 수영을 하고 있다.
세상에 11월에! 춥지 않냐고 물어보니 '우리들은 상남자라 괜찮아요!'라고 쾌활하게 웃는다. 상남자가 이 경우에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른들 감기 걱정시키는 게 저 또래 아이들의 일이기도 한지라 엄지를 세워주었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기생에 의탁해 살다가 이름을 기생의 명단에 올린 김만덕은 스무 살이 넘어 관에 읍소하여 양민 신분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  이후 물건을 제 때에 사고파는 재능으로 큰 부자가 된다. 정조 19년(1795) '제주 사람의 3분의 1이 굶어 죽었다'는 큰 기근이 들자 만덕은 자신의 재산을 풀어 육지의 쌀을 사들이고 굶주린 사람들에게 베풀었다.

이 소식을 들은 정조는 만덕의 소원을 들어주라고 했다. 이에 만덕은 서울에 올라가 궁궐을 보고 금강산을 보고 싶다고 했다. 당시 제주는 출륙금지령에 묶여 여인은 제주 밖으로 나올 수 없었지만 정조는 특별한 조치로 이를 가능하게 해 주었다. 또한 금강산 가는 길목의 고을들로 하여금 그녀에게 양식을 지급하게 했다.

조선 후기 실학자 박제가는 만덕을 두고 "여자라는 운명에 항거하여 창명을 건너 서울의 궁궐에 가서 임금님을 알현하고 명산을 구경하였으니 이 세상에 태어나고 이 세상을 떠나는 동안 넉넉하게 멋쟁이로 살다 간 사람으로 귀하다 할 만한 사람"이라고 기록했다. 그의 선행만큼이나 금강산을 구경하겠다는 '만덕할망'의 소원이 통쾌하고 멋지게  느껴진다.  

추사(秋史) 김정희는 김만덕의 삶에 대해 ‘은광연세(恩光衍世)’라며 그 뜻을 기렸다. 은혜의 빛으로 세상을 밝힌다는 뜻이라고 한다. 기념관 영정 뒤에는 판각의 복제품이 유리상자 안에 보관되어 있다.

김만덕기념관에서 내려다 본 제주서부두의 모습

만보 가까이 걸은 아내는 집에 돌아와 바로 자리에 누웠다. 걸음도 걸음이지만 돌아오는 길에 버스가 유난히 빨리 달려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마다 허리에 가해지는 충격 때문인 것 같았다. 내일부턴 제주 시내 방문을 자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한숨 자고 일어난 뒤에는 두부덮밥을 맛있게 먹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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