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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제주 함덕 18

by 장돌뱅이. 2022. 11. 7.

간밤에 바람이 많이 불었다. 기온도 많이 떨어졌다.
여느 때처럼 반바지 운동복 차림으로 아침 산책을 나가니 종아리에 감기는 공기가 서늘했다.
함덕 해변의 모래에는 밤새 강한 바람에 지나간 흔적이 잔물결처럼 남아 있었다.
이 정도라면 한 겨울에는 바닷가 집과 상가로 불어닥치는 모래바람이 장난이 아닐 것 같았다.
해변 전체를 비닐로 덮는 월동 준비가 이해가 되었다.

제주 시내에 나가 점심을 했다. 돌하르방식당에서 각재기국으로 먹었다. 며칠 전 숙소 근처 함덕촐래식당에서 처음 먹은 각재기국은 아내와 나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연하게 푼 된장과 초록의 배춧잎이 어우러진 각재기탕은 통영의 봄철 음식 도다리쑥국에서 쑥 향기를 뺀 맛처럼 슴슴하고 은근했다.
식탁 위에는 다진 마늘과 매운 양념장이 있었지만 아내와 나는 넣지 않았다.
그보다는 재료 본연의 은은하고 달착지근한 맛을 느끼고 싶어서였다. 

백발의 할아버지 주인장은 주문을 받는 대로 뚝배기를 불에 올려 즉석에서 탕을 만들었다.
미리 만들어둔 솥에서 퍼주는 것이 아니었다.

원래 국립제주박물관은 비오는 날의 일정으로 잡아 두었다. 한 달을 지내다 보면 변덕스러운 제주 날씨에 비 오는 날이 며칠은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제주살이 3분의 2가 지나도록 연일 쾌청한 날씨만 계속되었다. 오늘 역시 맑았지만 바람이 불고 추워서 실내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육지와는 다른 제주의 역사와 문화를 잠시 개관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유배문화에대한 소개가 있는 것도 제주박물관의 특색인 것 같았다. 고려 말 김만희, 한천, 조선 15대 왕 광해군에 이르기까지 정치인만 헤아려도 무려 2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기록에 남지 않은 일반인까지 포함하면 훨씬 많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유배문화란 정확히 무엇인지, 유배자들이 제주의 문화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유배문화를 언급할 정도로 제주도가 유배 최적지(?)였다는 사실에서 당시  중앙 권력의 제주도에 대한 지리적 ·사회적 인식의 정도를 가늠해 볼 수는 있겠다.

머리가 희어진 나이에 전시물을 통하여 무엇인가를 새롭게 알게 된다고 한들 얼마나 알며 얼마나 오래 기억을 하겠는가. 새삼스러울 수도 있는 그런 욕심이야 오래 전에 버렸으니 그저 아내와 함께 쉬엄쉬엄 걸으며 보고 읽는 시간이 좋았을 뿐이다.

모르겠네, 천지 사이에         (不知天地內)  
몇 년이나 더 살지.                 (更得幾年活)
이제부터 죽는 날까지는      (從此到終身)
일체 한가한 세월로 삼으리.(盡爲閑日月)

- 백거이(白居易), 「취음선생전(醉吟先生傳)」중에서 -

실감영상실에서 두 번에 나누어  20여 분간 상영하는 영상은 나중에 손자들과 제주에 올 때 보여주면 좋을 것 같았다. 제주의 자연과 이야기를 환상적으로 표현한 영상이었다. 

저녁엔 매콤달콤한 오징어덮밥을 만들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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