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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제주 함덕 14

by 장돌뱅이. 2022. 11. 1.

남흘동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김녕서포구를 거쳐 김녕해수욕장까지 걸었다.
투명하고 서늘한 물빛의 바다에서 싱싱한 아침 기운이 바람에 실려 전해 왔다.
힘을 내서 걷자! 아침에 어울리는 말이다.

아침에는
운명 같은 건 없다.
있는 건 오로지
새날
풋기운!

운명은 혹시
저녁이나 밤에
무거운 걸음으로
다가올는지 모르겠으나,
아침에는
운명 같은 건 없다.

- 정현종, 「아침」 -

용천수인 청굴물은 김녕 해안의여러 용천수 중에서도 유난히 차갑다고 한다.
여름철이면 많은 사람들이 이 물로 병을 치료하기 위해 2-3일씩 묵어가곤 했다고 한다.

김녕 성세기알 바닷가에 옛 민간 등대 도대불이 있다. 도대불은 제주 해안가 마을의 포구마다 하나씩 있었다고 한다. 바다에 생을 기댄 사람들로선 배들의 안전한 귀환이 제일 중요했을 것이다.
1972년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면서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검은색 용암이 펼쳐진 대부분의 제주도 해안과 달리 김녕 해안은 곱고 하얀 모래 해변이다. 이 흰모래는 원래 얕은 바다에 살던 조개와 해양 생물의 골격이 부서져 해안으로 밀려와 쌓인 것이라고 한다.

산책길의 김녕 해변은 비닐 그물로 덮여 있었다.
세찬 겨울 바람에 모래가 해안 마을로 날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일종의 월동준비인 것 같았다.

숙소에서 1.5km 정도 떨어진 곳에 함덕촐래식당까지 걸어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제주도에 오면 흔하게 만나는 돌담.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는 바람과 추위를 막아내는 일종의 비닐하우스와 같은 의미겠지만 내게는 제주도 사람들이 오랫동안 가꾸어온 아름다운 설치미술로 보인다. 바람이 빠져나갈 수 있도록 약간은 성기게 쌓는 것이 기술이라고 하던가. 땅을 개간하며 나온 돌로 쌓았을 것이니 수고로움이 남해안이나 지리산 계곡에서 만난 계단식 논밭에 못지않았으리라.

식당 함덕촐래밥상은 오직 한 가지 음식, 각재기국만 낸다. 각재기국은 봄가을에 올라온 배추에 각재기(전갱이)를 넣고 약하게 된장을 풀어 푹 끓여낸 국이다. 생선으로 끓인 국이지만 비린내는 전혀 나지 않았다. 대신에 심심한 듯 구수하고, 담담하면서도 시원한 맛을 느낄 수 있었다. 함덕촐래밥상에서는 각재기국과 함께 고등어구이와 돼지고기볶음, 그리고 자리젓갈 등으로 푸짐하게 상차림을 해주었다. 촐래는 반찬을 의미하는 제주의 말이라고 한다. 아내는 평소와 다르게 과식을 하며 억울하다는 투로 말했다.
"왜 벌써 배가 불러오는 거야."

식사를 마치고 카페 도도다로 자리를 옮겨 시간을 보냈다. 아담한 초록의 정원을 가진 조용한 카페였다. 주문한 음료와 함께 귤 몇 개를 가져다준다. 귤 농사를 하는 이웃이 준 거라고 한다.
이웃이 준 귤을 다시 손님에게 덤으로 줄 수 있는 귤 인심. 제주라서 가능한 일이겠다.

귤밭 사이를 걸어 집으로 왔다.
중간에 조천도서관에 잠시 들려 책을 빌려왔다.

감자조림을 만들어 냉장고 속 밑반찬을 더해 상차림을 했다.
매일 저녁마다 새로운 메뉴를 만들어보겠다는 계획, 아직은 순항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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