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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함덕19

제주 함덕 16 버스에서 내렸을 때 아직 옅게 남아 있던 아침 안개는 마을길을 따라 월정리 해변까지 가는 동안 말끔히 걷혔다. 그리고 시리게 푸른 하늘과 바다의 경계선이 또렷하게 드러났다. 텅 빈 해변엔 장난을 치며 오르내리는 한 쌍의 남녀가 보였다. 그들의 말소리와 웃음소리가 파도소리와 함께 실려왔다. 지나가며 눈이 마주치자 사진을 찍어줄 수 있냐고 말을 건네 왔다. 베트남이나 태국에서 왔을까 짐작하며 물어보니 말레이시아에 왔단다. 그들은 초면의 이국의 낯선 남자 앞에서도 전혀 쑥스러워움 없이 다양한 포즈로 사랑을 표현했다. 나도 함께 즐거워 여기저기 좋은 배경을 추천까지 해가며 꽤 여러 장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아내와 연애를 하던 젊은 시절 그들처럼 공개적인 장소에서 적극적인 사랑 표현을 해보진 못했지만 마음은 그 .. 2022. 11. 4.
제주 함덕 15 삼양해수욕장에서 한 아침 산책. 철 지난 해변은 바람과 파도소리만 잔잔할 뿐 조용했다. 함덕이나 김녕해수욕장과 달리 삼양 해수욕장은 해변이 검은 모래로 이루어져 있다. 제주에서 검은 바위와 돌이 널린 바닷가는 자주 보았지만 검은 모래의 해변은 처음이었다. 이곳이 유일한가? 모르겠다. 여름철엔 모래찜질로 유명하다고 한다. 삼양해수욕장도 모래가 날리는 것을 막기 위해 해변을 천막으로 덮는 월동 준비가 진행 중이었다. 아침은 콘수프와 제철인 단감으로 했다. 점심은 식당 "골목"에서 해장국을 먹었다. 아내는 해장국이나 내장탕, 곰탕 등을 대체적으로 싫어하는 편이지만 나를 위해 살신성인(?)의 자세로 해장국을 함께 먹어주었다. 감사할 따름이다. 옛말에 뚝배기보다 장맛이라는 말이 있다. "골목" 옆에 있는 커피점 .. 2022. 11. 2.
제주 함덕 14 남흘동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김녕서포구를 거쳐 김녕해수욕장까지 걸었다. 투명하고 서늘한 물빛의 바다에서 싱싱한 아침 기운이 바람에 실려 전해 왔다. 힘을 내서 걷자! 아침에 어울리는 말이다. 아침에는 운명 같은 건 없다. 있는 건 오로지 새날 풋기운! 운명은 혹시 저녁이나 밤에 무거운 걸음으로 다가올는지 모르겠으나, 아침에는 운명 같은 건 없다. - 정현종, 「아침」 - 용천수인 청굴물은 김녕 해안의여러 용천수 중에서도 유난히 차갑다고 한다. 여름철이면 많은 사람들이 이 물로 병을 치료하기 위해 2-3일씩 묵어가곤 했다고 한다. 김녕 성세기알 바닷가에 옛 민간 등대 도대불이 있다. 도대불은 제주 해안가 마을의 포구마다 하나씩 있었다고 한다. 바다에 생을 기댄 사람들로선 배들의 안전한 귀환이 제일 중요했을 .. 2022. 11. 1.
제주 함덕 13 아침 산책으로 올레길 19코스 북촌리에서 동복리에 이르는 길을 걸었다. 올레 패스포트에는 19코스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해 놓았다. "바다만도 아니고 숲만도 아니다 바다, 오름, 곶자왈 마을, 밭··· 제주의 모든 것이 이 길안에 있다. 밭에서 물빛 고운 바다로, 바다에서 솔향기 가득한 숲으로, 숲에서 정겨운 마을로 이어지는 길의 전환. 지루할 틈이 없다." 오늘 길은 '솔향기 가득한 숲으로, 숲에서 다시 물빛 고운 바다로'였다. 동복리 바다로 내려오는 길에 핸드폰이 울려 꺼내보니 제주도에서 보낸 안전 안내 문자다. "이태원사고 관련 사고 수습과 전국적 애도 분위기 상황입니다. 각종 축제와 행사, 특히 할로윈 행사를 준비 또는 참여하는 분은 안전에 각별한 유의 바랍니다." 이태원사고? 할로윈 행사에 무슨 .. 2022. 10. 31.
제주 함덕 12 아침에 산책을 나가지 않았다. 평소와 비슷한 시간에 일어났는데 자리에서 미적거리다가 하루 거르기로 했다. "어제 기념일 준비로 피곤했나?" 아내가 웃었다. 아침 식사는 어제 남은 샐러드에 달걀 프라이를 더해서 먹었다. 점심 무렵 함덕해수욕장에서 아내와 201번 버스를 탔다. 조천리 정거장에 내려 해변의 올레길 18코스에 합류를 했다. 바닷가 마을 곳곳에 용천수가 있었다. 용천수는 지하수가 암석이나 지층의 틈새를 통해 지표로 솟아나는 물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식수는 물론 빨래물과 목욕물을 얻을 수 있는 용천수를 중심으로 마을을 형성하였다. 조천지역에는 30개가 넘는 용천수가 남아 있다고 한다. 용천수 탐방길 안내도에는 23곳의 용천수가 표기되어 있다. 궷물(궤물), 절간물, 수거물, 수룩물, 앞빌레, 알물.. 2022. 10. 30.
제주 함덕 8 오늘 아침 산책은 서우봉 정상(109.5m)으로 잡았다. 이번 여행을 마치기 전에 아내와 함께 오를 수 있기를 바라는 곳이라 사전답사의 의미도 있었다. 서우봉을 향해 오를수록 눈에 들어오는 함덕의 바다와 해변, 하늘과 구름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자못 장쾌하여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아침식사를 어제처럼 찐밤과 우유로 했다. 찐밤을 두 끼 연속 먹었으니 나머진 냉동시켜놓고 내일부턴 다른 음식을 준비하기로 했다. 날이 쌀쌀해져서 그런지 오늘은 사랑의 인사(엘가)나 부베의 연인,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 같은 달달한 음악을 들었다. 점심은 함덕 서쪽에 있는 존맛식당에서 나는 문어차돌짬뽕을 아내는 문어차돌냉파스타를 먹었다. 존맛식당의 '존맛'은 젊은 세대들이 사용한다는 '욕 나올 정도로(X나 ) 맛있다 '의 줄.. 2022. 10. 26.
제주 함덕 5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박완서의 소설 제목처럼 아침에 한라산은 보이지 않았다. 한라산이 있던 자리는 구름에 가려 마치 지평선이 있는 듯했다. 오늘은 아침 산책을 나가지 않았다. 미숫가루와 달걀프라이로 아침을 먹고 MLB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경기를 보았다. 샌디에고 파드레즈와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3차전이었다. 우리나라 김하성 선수가 샌디에고의 1번 타자로 뛰었지만, 김하성 선수가 없었더라도 아내와 나는 샌디에고를 응원했을 것이다. 7년 넘게 살았던 곳이기 때문이다. 야구는 아내와 내가 좋아하는 운동이다. 미국에 사는 동안 샌디에고의 홈구장 펫코파크를 여러 번 갔었다. 미국의 다른 지역을 여행을 할 때마다 그곳의 야구장을 방문하는 것을 계획에 꼭 넣었다. 오늘 샌디에고는 져서 시리즈 통산 1 : .. 2022. 10. 23.
제주 함덕 3 아침에 일어나면 베란다에 나가 한라산 안부를(?) 묻기로 했다. 한라산은 오늘도 어제처럼 몸 전체로 밤새 안녕함을 전해주었다. 아침 산책에서 돌아오며 다시 오드랑 베이커리에 들렸다. 어제 마농바게트를 먹었다고 했더니 직원은 인절미브레드를 추천해 주었다. 아내는 단맛이 너무 강하다며 어제의 마농바게트를 지지했다. 점심은 산책길에 눈여겨봐둔 제주산방식당. 오래전부터 모슬포항 부근에서 이름을 알리더니 이제는 제주 곳곳에 지점을 연 모양이다. 함덕점은 올해 문을 열었다고 한다. 아내는 비빔면, 나는 고기국수를 만두 두 개가 같이 나오는 세트로 주문했다. 예상대로 아내는 밀면을 좋아했다. 젊은 직원의 경쾌한 목소리도 맛을 더했다. 식당 맞은편에 "만춘서점"이란 작은 책방이 있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갈 수.. 2022. 10. 22.
제주 함덕 2 기온이 뚝 떨어져 쌀쌀하고 바람이 불었다. 하늘은 더할 수 없이 맑아 한라선의 실루엣이 선명하게 드러나 보였다. 새벽녘에야 잠들었을 아내가 깰까 조심스레 문을 닫고 숙소를 나섰다. 초행의 숙소 주변을 눈에 익히고 아내와 오늘 갈 곳 미리 둘러볼 겸 산책을 시작하기 위해서였다. 모든 여행에서 아침마다 내가 하는 일이기도 하다. 여행을 떠나오기 전부터 이번 여행은 함덕해수욕장만 왕복하며 보낼 수 있어도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아내의 허리로 인한 소박한 바람이었다. 숙소에서 함덕해수욕장에 이르는 도로의 상태를 살피고 소요시간을 체크하며 걸었다. 인터넷을 통하여 대략의 정보는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확인을 해보아야 했다. 해수욕장은 멀지 않았다. 편도로 채 10분 남짓 걸렸다. 아내의 걸음으로는 거기에 추가로 10.. 2022. 10.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