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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제주 함덕 2

by 장돌뱅이. 2022. 10. 22.

기온이 뚝 떨어져 쌀쌀하고 바람이 불었다. 하늘은 더할 수 없이 맑아 한라선의 실루엣이 선명하게 드러나 보였다. 새벽녘에야 잠들었을 아내가 깰까 조심스레 문을 닫고 숙소를 나섰다. 초행의 숙소 주변을 눈에 익히고 아내와 오늘 갈 곳 미리 둘러볼 겸 산책을 시작하기 위해서였다. 모든 여행에서 아침마다 내가 하는 일이기도 하다.

여행을 떠나오기 전부터 이번 여행은 함덕해수욕장만 왕복하며 보낼 수 있어도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아내의 허리로 인한 소박한 바람이었다. 숙소에서 함덕해수욕장에 이르는 도로의 상태를 살피고 소요시간을 체크하며 걸었다. 인터넷을 통하여 대략의 정보는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확인을 해보아야 했다. 해수욕장은 멀지 않았다. 편도로 채 10분 남짓 걸렸다. 아내의 걸음으로는 거기에 추가로 10분을 더해야 할 것이다. 식당과 쉴 수 있는 카페도 알아보았다.

산책에서 돌아오는 길에 오드랑(Audrant) 베이커리에 들렸다. 어느 빵을 고를까 생각하는 사이 모든 사람들이 하나씩 집어 드는 빵을 보게 되었다. 이 집에서 제일 유명하다고 옆사람이 말해주었다. 마농바게트였다. 마농은 마늘의 제주어라고 한다. 아내도 만족스러워했다. 원래 아침은 간편 메뉴로 직접 만들어 먹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이런 정도의 맛이라면 한 번쯤 이탈해도 좋지 않겠냐고 아내와 의견 일치를 보았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음악을 들으며 뒹굴거리다 점심 무렵이 지나 함덕해수욕장으로 향했다. 함덕의 바다는 투명한 연녹색 물빛으로 유명하다. 아내는 생각보다 잘 걸어 주었다. 해수욕장 한쪽 끝에 있는 카페 델문도까지를 최대치로 생각했는데 그곳을 지나 전망대까지 가보자고 했다. 카페 델문도는 바다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카페가 아니고 마치 시장통 같아서 앉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해변의 이면도로에 있는 카페 "보라지붕"은 해변 전망도 없고 외관도 수수하지만 조용해서 좋았다. 이름 그대로 지붕이 보라색이었다. 로제떡볶이와 당근케이크로 식사를 했다. 맛이 괜찮았는지 아내가 다음엔 집에서도 고추장양념 대신에 로제떡볶이를 한번 만들어 달라고 했다.

카페를 나와선 길을 잘못 잡는 바람에 조금 먼 길을 걸어 숙소로 돌아왔다. 초행의 해변 이면도로가 복잡해서 헷갈렸지만 나의 아침 조사가 허술한 탓이다. 아내가 힘들어했다. 집으로 돌아와 아내는 지쳐 잠이 들었다. 나는 해가 서쪽 하늘에 마지막 빛을 남길 때까지 거실에서 책을 읽었다.

저녁엔 순두부를 만들었다. 사위가 만들어준 양념에 내가 한 일은 육수를 적당히 풀고 끓이다가 순두부를 넣은 것뿐이다. 맛이 진하고 구수했다. 된장찌개에서는 나의 솜씨가 사위를 압도한다고 자타가 공인하는데 순두부에선 아무래도 사위의 우세를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얼마 전부터 매일 저녁 9시 전후는 손자 둘과 영상통화 시간이다. 둘이서 서로 하겠다고 다투는 통에 순서를 정해놓고 차례로 한다. 둘째 손자는 그의 개인기를 보며 과장된 반응을 보여주면 되지만 큰손자와는 수수께끼, 난센스 퀴즈, 낱말 맞추기, 역사 인물 맞추기 등이 주제여서 아내와 나는 미리 인터넷을 뒤져가며 준비를 해둔다. 오늘은 제주도에 왔으니 제주도에 관한 문제를 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산은 백두산, 그렇다면 남한에서 제일 높은 산은?"
"ㅅ ㄹ ㅎ"라고 쓴 종이를 보여주며 묻는 식으로.

제주의 삼다(三多)와 삼무(三無)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옛날부터 제주도 사람들은 열심히 일을 하고 정직해서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고 구걸하지도 않는대.
그래서 없는 세 가지는?"
힌트를 주어 가며 도둑과 거지를 맞추게 하고 대문이 남았다.
"집에 들어가기 위해 제일 먼저 통과해야 하는 거?"
손자의 생각은 기발했다.
"비밀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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