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제주도 여행을 위해 예약을 했다. 그 후 아내가 불운한 사고로 허리를 다쳐 취소를 할까 생각했지만 예약금을 날려도 그냥 두기로 했다. 여행까진 2달 정도가 남아 있어 그 시간에 희망을 걸어보기로 한 것이다. 다행히 아내의 상태는 매일매일 조금씩 나아졌다. 이제는 집안에서 보조기를 벗고 걸을 정도가 되었다. 마침내 담당의사는 한라산 등반을 안 하는 조건으로 흔쾌히 여행을 허락해 주었다.
한라산 등반? 언감생심이다. 숙소 주변을 산책하는 것을 여행의 전부로 삼았다.
아내가 많이 회복되었다고 하지만 아직은 한 시간 남짓 천천히 산책을 하는 정도라 우선은 제주도까지 가는 것이 문제였다. 집에서 출발하면 제주도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네다섯 시간을 눕지 못하고 계속 앉거나 서 있는 자세를 유지해야 하는데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승용차는 허리를 굽히고 타야 해서 지붕이 높은 벤 형태의 영업용 차량을 불러 공항까지 갔다. 공항에서는 항공사의 휠체어 서비스를 받았다. 신체가 불편한 사람을 위한 배려는 훌륭했다. 별도의 보안검색대를 우선적으로 통과하는 것은 물론 휠체어를 실을 수 있는 특수차량으로 비행기 탑승까지 편안하게 도와주었다. 나는 생각보다 수월한 진행에 "앞으로 다 나아도 허리보조대를 하고 여행 다니자"라고 했다가 아내의 어이없어하는 눈총을 받기도 했다. 아내는 제주까지 가는 동안 여느 때처럼 잠을 자지 못하고 자주 옅은 신음소리를 냈다. 몇 시간을 눕지 못하는 있는 것이 아직은 무리인 것 같았다. 제주공항에서도 탑승할 때와 같은 휠체어 서비스를 받았다.
공항 밖에서는 아내의 친구 부부가 우리를 맞아 주었다. 6개월 일정으로 제주살이를 하고 있는 친구였다. 따끈한 전복죽까지 준비해 와서 우리를 감읍시켰지만, 아내가 빨리 누워야 해서 숙소 도착 후 커피 한 잔의 보답도 못하고 훗날을 기약해야 했다. 전복죽을 먹고 아내는 침대에 누워 이내 잠이 들었다.
아내가 자는 동안 짐 정리를 하고 숙소 근처에 있는 마트에서 장을 보았다. 작년 제주살이에서도 그랬듯 이번에도 아침저녁은 만들어 먹고 점심은 사 먹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어떤 음식을 어떻게 먹는가는 우리에게 주요한 여행의 일부이다.
제주 첫 음식은 아내와 미리 돼지고기 구이로 정해 두었다. 아내는 고기를, 특히 돼지고기를 썩 좋아하지 않지만 몇몇 곳에서는 예외다. 제주도 돼지고기도 거기에 해당된다. 구태여 제주 특산품이라는 흑돼지를 찾을 필요 없이 일반 돼지고기도 다른 지역의 고기와는 식감부터 다르다고 했다.
나는 파채 들깨무침과 집에서 준비해온 매실무침을 곁들여 상차림을 했다. 오래간만에 맥주를 한 캔 사 왔는 데 뜻밖에 아내도 한 모금하겠다고 했다. 불감청이언정 고소원 아닌가. 돌아갈 때는 탑승절차가 좀 번잡스럽더라도 허리보조대를 풀고 일반 탑승 라인에 서자고 잔을 들었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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