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宗廟)는 조선 시대 역대 왕과 왕비, 그리고 죽은 뒤 왕으로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神主)를 봉안한 사당이다. 정문인 창엽문(蒼葉門)은 정면 3칸으로 아담하다. 이제까지 단순 출입문으로만 생각했는데 '푸른 잎'이라는 이름을 알고나니 초록 가득한 이 계절과 잘 어울려 보인다.
창엽문을 들어서면 길게 박석이 깔린 길이 펼쳐진다. 길의 가운데는 혼령이 다니는 신로이고 , 오른쪽은 임금이 사용하는 어로(御路), 왼쪽 길은 왕세자가 사용하는 세자로(世子路)이다.
"종묘에서 길은 단순한 길이 아니라 제례의 절차를 암시하고 행위를 지시하는 상징과 암시의 길이다. 즉, 길은 제향을 위한 통로로서 종묘에서 길을 이해하는 것이 제례를 이해하고 더 나아가 종묘를 이해하는 길이 된다."
- 한국문화유산 답사회, 『답사여행의 길잡이』 중에서 -
하지만 예전과 달리 요즘 종묘에서 길은 우선 탐방객들에겐 '강요된' 길이다.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없고 한 곳에 오래 머물 수도 없다. 예약한 시간에 입장하여 선생님을 따라다니는 유치원생들처럼 안내자를 따라다녀야 한다. 이유가 있어 만들었겠지만 아내와 내겐 답답하고 지루한 방식이었다. 종묘에 대해 상식 이상의 특별한 지식이 필요하지도 않으니, 그저 산책 겸하여 숲도 보고 걷다가 다리 아프면 쉬기도 하면 좋을 텐데 그럴 수 없는.
종묘 관람의 하이라이트라 할 정전은 대대적인 보수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작업지지대에 가려 정전의 외곽선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내년 2월 말까지 공사가 진행된다는 안내가 붙어 있었다. 오래전에 올린 사진과 글을 대신 찾아보았다 (*이전 글 참조 : 종묘(宗廟))
정전 서쪽에 있는 영녕전(永寧殿)은 온전히 볼 수 있었다. 영녕전은 정전과 구조가 같으나 정전보다 규모가 작고 높이도 낮다. 그래도 오래간만에 온 데다 공사 중으로 어수선한 정전을 본 뒤라 햇살 가득한 마당이 넓어 보였고 단정한 지붕은 엄숙하고 위엄이 있어 보였다. '길이 편안하라'는 뜻의 영녕전엔 34위의 신주가 모셔져 있다고 한다.
사실 자유관람이 아님에도 종묘를 찾은 것은 얼마 전 일제 강점기에 단절된 창경궁과 종묘이 90년 만에 연결되었다는 뉴스를 보았기 때문이다. 아내와 나는 더운 날씨를 무릅쓰고 창경궁 쪽으로 넘어가 관람을 계속하려고 했다. 학창 시절 쪽문 같은 곳으로 넘나들던 기억을 되살리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연결 공사가 끝났음에도 종묘와 창경궁의 자유로운 왕래는 여전히 불가능했다.
직원의 설명에 따르면 서울시와 문화재청 간 '문화재 관람 방식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서'라고 한다. 창경궁은 자유관람이지만 종묘는 예약을 통한 시간제 관람이고, 휴관일도 창경궁은 월요일, 종묘는 화요일로 이에 대한 개편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직원 역시 뉴스 보도를 보고 온 시민들의 질문과 불만이 많다고 난처해했다. 그런 사정이면서도 보도는 뭐하려고 그렇게 호들갑스럽게 앞질러하는 것인지······.
창엽문으로 되돌아 나와 갈증을 식혀줄 시원한 음식을 찾아 근처 "우래옥"으로 향했다. 우래옥은 서울 시내에서 평양냉면으로 손꼽히는 식당이다. (*이전 글 참조 :을지로4가 "우래옥" )
점심시간 무렵이어서 우래옥 앞에는 대기인원이 많았다.무인 등록기에 순서를 등록하니 95번째였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기다리는 거 질색이어서 여느 때 같으면 미련 없이 돌아섰겠지만 우선 목이 말라 식당 옆에 있는 애드커피라는 카페로 들어갔다. 평소와 다르게 순서를 바꿔 식후 아닌 식전 커피를 했다. 편리한 세상이라 커피를 마시는 동안 핸드폰 앱이 나의 순서를 알려주었다.
이곳에서는 평양냉면보다 김치말이를 자주 먹는다. 참기름의 고소한 맛이 더해진 새콤한 김치국물에 국수와 밥이 들어 있는 음식이다. 그악스럽게 '맛집'을 고집하고 싶지는 않지만 오랫동안 그 자리에서 한결같은 맛을 내온 식당엔 든든한 믿음이 느껴져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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