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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발왕산과 선자령

by 장돌뱅이. 2022. 8. 16.

해마다 대관령에서 여름을 나는 야니와 아니카 님 부부의 초대로 두 분이 사는 숙소를 방문했다. 
서울보다 시원하다는 얘기는 미리 들어 알고 있었지만 상상 이상이었다. 
에어컨이나 선풍기에만 갇혀 지내다가 모처럼 찾은 '초록초록'에 둘러싸인 숙소는 시원하고 쾌적했다.

옥수수와 감자떡으로 점심을 하고 케이블카로 발왕산에 올랐다.
며칠 동안 퍼붓던 큰비가 씻어준 덕분에 하늘은 더없이 맑았다.
일망무제의 시야에는 산들이 겹겹이 굽이쳤다.

스카이워크에 오르고 '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 년' 간다는 주목나무 숲길을 걸었다.

이튿날 아침, 노을이 좋더니 이내 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오후부터는 비가 예보되어 있었다. 부부는 우리를 선자령 출발 지점까지 차로 데려다주었다. 거기서부터 야니님은 우리와 함께 산행을 하고 아니카 님은 혼자서 차를 몰고 하산 지점으로 갔다. 근처 카페에서 노트북으로 회사일을 하며 우리를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두 분의 완벽한 계획과 친절한 안내 덕분에 우리는 '황제 투어'를 할 수 있었다.

한 친구가 내게 선자령의 눈꽃은 반드시 봐야 한다고 여러 차례 동행을 권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함께 하지 못했는데 이번에 겨울 아닌 여름에 걷게 되었다. 여름 선자령은 하얀 눈 대신에 푸른 초원과 줄지어 선 풍력발전기들이 보며 걷는 길이었다.  날은 흐렸지만 산 능선이 선명하게 드러나 호쾌한 느낌을 주었다. 
바람결을 따라 가지런히 눕혀진 풀들이 잔잔하게 흔들렸다. 아내와 나는 십 분마다 한 번 꼴로 '좋다!'고 감탄하며 걸었다. 

 호사다마(好事多魔) - 세상엔 좋은 일을 시기하는 나쁜 귀신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행복할 때 그 귀신이 눈치채지 못할 만큼만 행복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선자령 정상에 다다를 때까지 우리가 내지른 즐거운 탄성이 마귀의 잠을 깨웠을까?
하산길에 아내는 크게 넘어져 허리를 다치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목장의 관람 트럭을 얻어 타고 내려와야 했다.  
나이 들수록 낙상은 위험하다. 아내의 상처가 깊지 않고 오래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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