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면 베란다에 나가 한라산 안부를(?) 묻기로 했다. 한라산은 오늘도 어제처럼 몸 전체로 밤새 안녕함을 전해주었다.
아침 산책에서 돌아오며 다시 오드랑 베이커리에 들렸다. 어제 마농바게트를 먹었다고 했더니 직원은 인절미브레드를 추천해 주었다. 아내는 단맛이 너무 강하다며 어제의 마농바게트를 지지했다.
점심은 산책길에 눈여겨봐둔 제주산방식당. 오래전부터 모슬포항 부근에서 이름을 알리더니 이제는 제주 곳곳에 지점을 연 모양이다. 함덕점은 올해 문을 열었다고 한다. 아내는 비빔면, 나는 고기국수를 만두 두 개가 같이 나오는 세트로 주문했다. 예상대로 아내는 밀면을 좋아했다. 젊은 직원의 경쾌한 목소리도 맛을 더했다.
식당 맞은편에 "만춘서점"이란 작은 책방이 있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갈 수 없는 법이어서 들어가 이것저것 책을 뒤적여보았다.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실내에는 "Have a book time", "Reading is sexy"라는 재미있는 표어가 붙어 있었다.
언젠가 발리를 여행할 때 한 민박집에서 뉴질랜드에서 온 부부를 만난 적이 있다. 그들은 매일 같이 방 앞에 있는 의자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왜 여행을 와서 책만 읽느냐고 했더니 오히려 건너편 언덕에 보이는 계단식 논과 야자나무 이외에 다른 무슨 관광(sightseeing) 이 필요하냐며 되물었다. 평소에 못 읽는 책을 읽는 것이 자신들에게는 충분한 여행이자 휴식이라고 했다.
여행에 대한 신선한 깨달음을 준 그들 부부를 떠올리며 나도 황인숙의 시집 『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를 샀다. 숙소에 돌아와 '다친 비둘기 같은' 아내가 이 바다에서 '물고기처럼 팔팔해지'길 바라며 시 한 편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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