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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미국

샌디에고 걷기 23 - CLEVENGER TRAILS SOUTH

by 장돌뱅이. 2012. 6. 15.

부할절 전 금요일.
"GOOD FRIDAY"라고 이름도 '굳'하게 휴일이었다.
오후에 산행을 위해 집을 나섰다.

아내가 동행하지 않는 산행이라
좀 산길이 멀고 험한 곳을 골라보았다.
높고 험할수록 좋은 산행이라는 생각에서는
벗어난지 한참이지만
오래간만에 땀을 흘리며 산길을 걷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CLEVENGER TRAIS SOUTH.
원래는 북쪽 트레일을 염두에 두었는데
오전에 집에서 너무 해찰을 부리다가
출발이 늦어진데다가 초행길이라 산행시간을 가늠할 수 없어
안내서에 좀더 짧고 편한 (MODERATELY STRENUOUS) 곳으로
나와 있는 남쪽 코스를 잡았다.

위 사진의 능선 왼쪽 끝이 오늘 산행의 반환점이었다.
 

 

트레일 초입에서 한 사내를 만나 동행이 생기는가 했더니
30분 정도만 걷다가 내려갈거라고 해서 이내 헤어지게 되었다.
그 뒤로는 내내 혼자 걸었다.

일요일이면 오르내리는 사람들로 체증을 빚는
서울 근교의 산들에 비하면 이곳은 너무 적막강산이다.
 

 

 

 

 

 

말을 내뱉기는 쉬우나
침묵을 익히기는 힘들다.
저절로 침묵할 수 밖에 없었던 산길은
그러나 무료하지 않았다.

하늘과 햇볕과 구름과 바람.
흙과 바위와 풀과 나무.
범상할 수도 있는 흔한 것들이
유난히 눈부시게 느껴졌던 것은
내가 만드는 소리가 발걸음 소리와 숨소리 뿐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려오는 길.
침묵의 시간이 내게 너무 길었을까.
나도 모르게 어느 새 입속으로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런 나를 의식하자 작은 목소리로
그러나 마음 속으로는 우렁차게 부르며
행진하는 병사처럼 발걸음을 옮겼다.

   노래 부르세 즐거운 노래
   이른 아침 안개를 뚫고
   내일은 전선 멀리 떠나갈
   이 밤을 노래부르세...
 

 

 

 

자연의 초록을 볼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은 샌디에고에서
산 전체를 감싼 초록빛은 봄이 절정임을 알려준다.

곳곳에 꽃들이 피어나 있다.
번성하라는
생명을 가진 것들의 의무이자 숙명을 위해
아주 작고 여린 것들이 짧은 봄의 기운을 받아들여
또 한번의 삶을 완성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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