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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미국

하와이8 - 하나우마 베이 그리고 북부 해안

by 장돌뱅이. 2012. 6. 8.

하와이로 여행을 오기 전 엘에이에 살고 있는 친구를 만났다.
80년대 초 가족과 함께 하와이로 이민을 떠난 뒤 그곳에서 공부를 하고
아내도 하와이에서 만났으니 나름 하와이에 대해 ‘모르는 것 빼고 다 안다’고
자부를 하는 친구였다. 

그에게 하와이 여행에서 놓쳐서는 안 될 단 한 곳만 추천해보라 했더니
잠시 뜸을 들여 생각을 한 끝에 하나우마 베이 HANAUMA BAY 를 말했다.
그러면서 “요즈음 들어 예전에 비해 형편없이 망가지긴 했더라마는...” 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위 사진 : 하나우마 베이

아침 일찍 하나우마 베이로 향했다. 시간이 늦으면 입장 순서를 기다리는 긴 줄에 서서
지루함을 견뎌야 한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오래 기다리지 않고 바로 입장할
수가 있었다. 해변으로 내려가기 전 하나우마베이의 보호를 위한 짤막한 홍보영화를
보아야 했다.  


* 후무후무누쿠누쿠아푸아아의 실제 모습 (출처 : 네이버)

영화관 앞 뜰에 하와이를 상징하는 물고기의 상이 있었다.
‘후무후무누쿠누쿠아푸아아 HUMUHUMUNUKUNUKUAPUAA’ 란 긴 이름을 가진 쥐치 모양의
물고기였다. 뜻은 ‘돼지주둥이를 가진 물고기’라고 한다. 이름의 길이와 뜻이 모두 재미있다. 

해변으로 내려가는 게단에서 보이는 하나우마베이는 바다를 향해 터진채
삼면이 야트막한 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곳에 위치해 있었다. 해안선은 완만한 곡선으로
휘어지며 부드러운 인상을 더했다. HANAUMA라는 말이 ‘굽어져 있는(CURVED)’이란
뜻이라고 한다. 

우리는 스노클링기어를 빌리고 야자수그늘에 자리를 편 후 바닷물로 뛰어 들었다.
그런데 우리가 들어간 곳만 그랬을까. 제법 먼 반경으로 헤엄을 치고 다니며 보아도
물속은 우리가 동남아의 스노클링 포인트에서 보던 열대 바다의 모습이 아니었다.

‘예전에 비해 형편없이 망가지긴 했더라’는 친구의 충고에 불구하고 아내와 나는
‘부자 망해도 삼년은 간다’는 식의 근거 없는 낙관적인 기대를 하고 있던 참이었다.
대부분의 산호는 꺼멓게 죽어 있었다. 마치 오래전에 침몰한 폐선박의 잔해처럼 음산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 사이로 가끔씩 물고기 몇 마리가 어슬렁거리기는 했지만 그것은 마치
철거통지서를 받고도 살던 집을 떠나지 못하는 철거민들처럼 애잔하게 보일 뿐이었다.
‘후무후무누쿠누쿠아푸아아’의 고향은 그렇게 폐허가 되어 있었다.

   등이 굽은 물고기들
   한강에 산다
   등이 굽은 새끼들 낳고
   숨막혀 헐떡이며 그래도
   서울의 시궁창을 떠나지 못한다
   바다로 가지 않는다
   떠나갈 수 없는 곳
   그리고 이젠 돌아갈 수 없는 곳
   고향은 그런 곳인가
                -김광규의 시, 「고향」-

“BEING LOVED TO DEATH BY OVER A MILLION VISITORS A YEAR... ” 라는
론리플래닛의 글귀가 풍자적으로 읽힌다. 자연에 대해 우리가 저질러온 ‘사랑’이
잘못되었음을 알았을 때 그것은 종종 되돌리기에는 너무 멀리왔거나 늦었을 때이다.
사회와 역사의 발전을 위한 진보적인 사고와 행동은 미덕일 수 있지만
자연에 대해서는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가는 철저한 ‘보수’가 미덕인 이유이다. 

몇 차례 장소를 바꿔가며 물속을 들여다보았지만 특별한 차이는 없었다.
하나우마 베이는 멀리서 보는 것이 더 아름답다는 결론을 내리고
우리는 예정보다 조금 앞당겨 자리를 거뒀다. 아침 일찍 서둘렀더니 배도 출출해왔다.

어제 들렸던 레오나드에 다시 들려 말라사다스로 간단한 요기를 했다.
태국에서 먹었던 로띠보이와 비슷한 점도 있었지만 로띠보이보다는
단맛이 덜하고 은근하고 구수한 맛이 있었다.

숙소로 돌아와 샤워와 휴식을 취한 후 H2 프리웨이를 타고 오하우의 북부 해변을 향했다.
와히아와 WAHIAWA를 조금 지나 ROUTE 99로 빠져 직진을 하니 돌 파인애플 농장 DOLE
PINEAPPLE PLANTATION이 나왔다. 나에게는 돌 파인애플이라는 상표보다 로고가 눈에 익다.
하와이 파인애플의 생산이 이곳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20세기 초에는 하와이 경제의
중심을 차지하기도 했겠지만 이제는 많이 쇠퇴되어 그 존립조차 위태롭다는 말이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농장보다 기념 상품점이 더 성업인 것 같았다. 파인애플 쥬스,
파인애플 아이스크림, 티셔츠, 컵 등 다양한 파인애플 관련 상품들이 판매되고 있었다.
한국사람들이 유난히 많이 보이는 곳이기도 했다.

아내와 나는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서 나누어 먹으며 주변의 파인애플 농장을
잠깐 둘러보았다. 쇠퇴했다고 하지만 농장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아득히 넓었다.
땅은 붉은 빛깔이었다. 파인애플 나무는 생각보다 키가 작고 잎새 주변으로 가시가
달린 것이 선인장처럼 거칠어 보였다. 그곳 어디쯤에선가 우리의 선조들이 땀을
흘렸을 것이라 생각하니 고철이 되어 방치된 옛 장비 하나도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와하우의 북부 해안은 보통 할레이와 HALE'IWA에서 카후쿠 KAHUKU 로
이어지는 해안을 말한다. 이곳은 겨울철 파도가 높아 세계적인 서핑지로 알려져 있다.
매년 겨울 세계프로서핑대회가 이곳에서 열린다고 한다.
우리가 북쪽 해변으로 가는 이유도 그 높은 파도를 보기 위해서였다.
어제 하와이신문에 오늘 이곳의 파도가 심할 것이라는 기사를 눈여겨 보아둔 터였다.  


*위 사진 : 쿠아 아이나 샌드위치 의 내외부

해변으로 가기 전 할레이와 시내에서 점심을 하기로 했다.
식당은 쿠아 아이나 샌드위치 KUA AINA  SANDWICH SHOP.
나는 사실 햄버거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패스트후드가 건강에 나빠서? 뭐 그런 이유가 아니다.
도대체 이놈의 음식은 먹는 방법이 (경상도 말로 하자면) ‘상그럽다’ (불편하고 어렵다).
두툼한 빵에 야채와 고기, 토마토와 야채 등을 넣은 것이 입을 한껏 벌려도
베어 물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다. 먹다보면 테이블 위에 내용물을 흘리기가 일쑤여서
아내로부터 아직도 턱받이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지청구를 듣게 만든다.
보통 사이즈도 그런데 이른바 ‘빅맥’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그런 불편함과 지청구를 감수하고서라도 먹어야 할만큼 이 식당의 햄버거는
맛이 있었다. 어떤 이는 하와이 최고라고 했지만 아내와 나는 우리 생애 최고의 햄버거라고
인정했다.


*위 사진 : 책을 읽는 할머니. 파도 소리와 함께 하는 독서의 맛은 어떨까?

할레이와 비치 HALE'IWA BEACH, 와이메아 비치 WAIMEA BEACH, 반자이 파이프라인
BANZAI PIPELINE, 선셋비치 SUNSET BEACH 등으로 이어지는 북부 해변의 파도는
예상대로 높았다. 

 


*위 사진 : 어린 학생들이 높은 파도에 놀란 듯 황급히 뒷걸음질 치고 있다.

해안을 향해 거대하게 밀려오던 바닷물이 어느 지점에서 끝이 말리며 한껏 높아졌다간
일순간에 커다란 천둥소리와 함께 곤두박질치듯 무너져 내렸다. 아내와 나는 해변마다
차를 세우고 해변으로 나가 그 표효하는 듯 한 파도의 웅장함과 굉음을 즐겼다. 

오늘의 마지막 일정인 폴리네시안문화센터를 가기 전에 지오반니 GIOVANNI'S에서
좀 이른 저녁을 먹었다. 이 식당은 일종의 포장마차였다. 리어카 대신에 흰색 차량을
사용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그런데도 이곳의 명성은 가히 국제적이다.
차량의 외부에 쓰여진 각종 언어들이 그것을 증명한다. 물론 한국말도 있다.

이곳의 주 메뉴는 SHRIMP SCAMPI,  마늘 소스가 들어간 새우요리가 밥과 함께 나온다.
길옆에 주차되어 있는 차에서 주문을 하고 그 앞에 있는 야외 테이블에서 먹는다.
파리가 달려드는 것이 좀 귀찮았지만 맛은 괜찮았다.

오늘의 마지막 일정인 폴리네시안 문화 센터 POLYNESIAN CULTURAL CENTER.
이곳을 관람하는 데는 다양한 옵션이 있다. 픽업 서비스 여부, 식사를 포함하는 여부,
그런 것을 다 포함해도 관람 좌석에 따른 차등 등 여러 가지다.

우리가 선택한 표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저녁에 야외극장 PACIFIC THEATER 에서 하는
HORIZON SHOW 관람 외에  몇 가지 사항이 추가되는 조건이었다. 


*위 사진 : 우리가 문화센터에 도착했을 때 사모아빌리지에서 마지막공연이 있었다.
               7개의 빌리지에서 벌어지는 공연 중 유일하게 본 것이 되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하루종일을 보내도 괜찮다고 했지만 우리는 북부해변을 돌아보는

것으로 나머지를 대체하고 저녁 7시반부터 시작하는 HORIZON SHOW 만 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충분히 만족했다. 

1963년 문화센터가 문을 열었을 때 어떤 사람들은 여행객들은 하와이에 문화적인
것을 보기 위해 오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문화센터는 하와이 여행자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이는 곳 중의 하나가 되었다.

태평양에 산재하고 있는 사모아 통가 뉴질랜드 마르케사스 타히티 피지 하와이 등
7개 섬의 생활과 문화를 집단 무용과 노래로 표현했다는 공연에 대해 그 수준과 내용을
평가할만한 안목과 바탕을 아내와 나는 지니고 있지 못하다.
어느 공연이 어느 섬의 것인지 조차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거꾸로 우리 사회는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여행자에게 밤 시간을 보낼
어떤 '소프트웨어'를 가지고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이유는 간단하다. 

세상엔 몇몇 사람만 알아볼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고품격의 예술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클래식음악과 대중음악이, 본격미술과 응용미술과 만화가 동등한 가치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듯 여행객을 위해 자신들의 전통문화를 부담 없는 방식으로 전달하는 것도
유용하며 또 긴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전문가들이라 자부하는 사람들일수록 나서야할
문제이기도 하다.  

폴리네시안 문화센터의 저녁공연은 와이키키에서 오고가는 길이 좀 멀었다는 사실만
빼곤 (공연이 늦은 시간에 끝나므로) 화려한 의상과 현란한 춤사위의 볼거리로 최소한
저녁 한 나절을 지루하지 않게, 가족과 함께 재미있고 유익하게, 보낼 수 있는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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