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진71

안면도에서의 하루 8월 초 아내와 함께 안면도 마검포에 있는 후배의 별장에 다녀왔습니다. (후배녀석은 별장이 아니라 '농막'이라고 우깁니다만). 지상의 모든 것을 불볕으로 달구던 해는 서쪽 하늘에 걸리어 마지막 불꽃을 장엄한 노을로 태우고 있었습니다. 노을을 보면 나이 먹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직 죽음까지는 몰라도 나이 먹는 사실에 대한 겸손한 수용. 안타까울 것 없고 조바심칠 필요없는 넉넉함으로. 다만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그 시간이 노을처럼 아름답기를 바랄 뿐입니다. 어둠이 내린 후에 해변에서 돌아와 나중에 도착할 사람들과의 하루 저녁을 위해 백사장이라 이름 붙여진 시장에 나가 조개류와 새우, 붕장어를 샀습니다. 그리고 앞마당에 불을 피우고 달이 별장 서쪽의 해송 너머로 기울도록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 2012. 4. 20.
봄이 오는 길. - 강원도 문막에서 - 2012. 4. 19.
나무, 겨울나무. 일생동안 나무가 나무인 것은 무엇보다도 그늘을 가졌기 때문이라고생각해 본 적이 있다 하늘의 햇빛과 땅의 어둠을 반반씩, 많지도 적지도 않게 섞어서 자기가 꼭 살아온 그만큼만 그늘을 만드는 저 나무가 나무인 것은 그늘이라는 것을 그저 아래로 드리우기만 할 뿐 그 그늘 속에 누군가 사랑하면 떨며 울며 해찰하며 놀다가도록 내버려둘 뿐 스스로 그늘 속에서 키스를 하거나 헛기침을 하거나 눈물을 닦거나 성화를 내지 않는다는 점이 참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말과 침묵 사이, 혹은 소란과 고요 사이 나무는 저렇게 그냥 서 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듯 보이는 저 갈매나무가 엄동설한에도 저렇게 엄하기만 하고 가진 것 없는 아버지처럼 서 있는 이유도 그늘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빈한한 집안의 지붕 끝처럼 서 .. 2012. 4. 19.
저 산 아래 내가 쓰러져불겄다 시방 강화도에 고려산까지(?) 있다는 사실은 이제까지 여행지로서 강화도에 대해 후한 점수를 주어왔던 내게 그 점수를 더욱 높여 주어야 하는 이유가 되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강화도는 우리 민족의 시조인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참성단을 비롯, 청동기시대의 유적인 고인돌이 무려 120여기나 있으며, 몽고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한 왕궁이 옮겨온 곳이기도 하다. 또한 근대사의 여명에 서양 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섰던 처절한 항쟁의 유적이 즐비한 곳이다. 때문에 사람들은 강화도를 일컬어 문화와 신화의 원형질을 담고 있는 땅이라고 말한다. 거기에 바다와 개펄, 산과 들의 수려한 자연이 어우러져 있으니 강화도는 여행자에게 커다란 ‘종합선물세트’ 같은 곳이다. 고려산은 높이 436미터의 높지 않은 산으로 강화읍에서 5k.. 2012. 4. 18.
이 땅의 무릉도원 언제부터인가 벚꽃과 유채꽃이 우리 봄꽃의 대표처럼 행세를 하게 된 세태에 작은 불만을 가지면서 그 대안을 구했을 때 국토는 골골마다 흐드러진 복숭아꽃으로 한 가지 대답을 주었다. *위 사진 : 경북 영덕 지품면에서 *위 사진 : 경기도 이천 장호원에서 아내와 내가 그곳을 ‘무릉도원’이라 부르면, 그 꽃을 생활로서 대하며 그곳에서 사시는 분들은 꽃그늘의 의미를 읽지 못하는 철딱서니 없는 도시인의 경박함이라 혀를 차실 것이다. 하지만 도시의 탁한 환경에서 잠시라도 벗어나 마음 편히 깊은 숨을 쉴 수 있고, 우리가 사는 국토에 대한 자부심을 키울 수 있는, 우리 시대에 얼마 남아있지 않은 아름다운 현장을 찾아 찬양하고싶다는 구실을 붙인다면 그런 질타로부터 조금은 비껴설 수 있을지 모르겠다. *위 사진 강원도 .. 2012. 4. 18.
2003 캄보디아 여행기(끝) - 똔레삽 호수를 지나며 문을 두드려서 깨워주는 ‘모닝콜’에 잠이 깨었다. 똔레삽 호수를 가로질러 프놈펜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선 아침 일찍 일어나야 했기 때문에 전날 저녁에 미리 부탁을 해둔 터였다. 짐을 꾸려 밖으로 나오니 타고 갈 작은 픽업 트럭이 벌써 숙소 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위 사진 : 시엠리엡에 머무는 내내 친절하고 따뜻하게 우리를 대해 주었던 숙소의 종업원들. 차에 오르려는데 숙소의 종업원이 작은 플라스틱 병에 든 음료수를 한 병 내밀었다. 아침에 앙코르 사원으로 향할 때마다 음료수 한 병씩을 꼭 가지고 가던 것을 챙겨주는 것으로 생각하여 물값을 주려고 하자 받질 않는다. 선물이라는 것이다. 지난 밤 내가 시엠리엡에 머무는 동안 친절히 대해 준 데 대한 감사의 뜻으로 약간의 팁과 작은 인삼차 한 곽을 선물로 .. 2012. 4. 9.
2003 캄보디아 여행기 7. - 앙코르 사원군1 * 위 사진 : 프놈펜에서 시엠리엡 갈 때 타고간 시엠리엡에어 비행기 앙코르 왓은 시엠리엡에 있는 한 사원의 이름이다. 동시에 그것은 시엠리엡의 주변의 방대한 지역에 걸쳐 흩어져있는 모든 사원을 지칭하는 대명사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가 앙코르 왓을 보러간다고 할 때 그것은 대체로 8세기에서 13세기에 걸쳐 시엠리엡 지역에 세워진 엄청난 사원군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말이 된다. 이번 앙코르 왓 순례도 그 ‘대명사’ 방식으로 보기로 했다. 개개의 사원에 의미를 두기 보다는 전체를 하나의 앙코르왓으로 보기로 했다는 뜻이다. 따라서 개개의 세워진 시기나 세운 사람의 구분 따위는 무의미한 것으로 제쳐 두었다. 내가 그나마 앙코르 왓 순례를 위해 준비를 한 것은 시엠리엡의 숙소에 도착하여 2박3일동안 돌아보고자 .. 2012. 4. 7.
어려운 학업을 마친 소년처럼 어려운 학업을 마친 소년처럼 가을이 의젓하게 돌아오고 있습니다 푸른 모자를 높게 쓰고 맑은 눈을 하고 청초한 얼굴로 인사를 하러 오고 있습니다 "그동안 참으로 더웠었지요" 하며 먼 곳을 돌아 돌아 어려운 학업을 마친 소년처럼 가을이 의젓하게 높은 구름의 고개를 넘어오고 있습니다 - 조병화, ‘가을’ - 비가 참 많은 올해입니다. 그래도 이제 기온은 완전 가을입니다. 아직도 남은 더위가 마지막 힘을 한두번 쓰긴 하겠지만 말입니다. 땀을 흘리며 보낸 시간들이 영글어가는 조롱박처럼 소담스런 결실로 남는 ‘의젓한’ 가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높은 구름의 고개를 넘어 가을이 오고 있습니다. (2005.09) 2005. 9.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