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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캄보디아

2003 캄보디아 여행기(끝) - 똔레삽 호수를 지나며

by 장돌뱅이. 2012. 4. 9.

문을 두드려서 깨워주는 ‘모닝콜’에 잠이 깨었다. 똔레삽 호수를 가로질러 프놈펜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선 아침 일찍 일어나야
했기 때문에 전날 저녁에 미리 부탁을 해둔 터였다.
짐을 꾸려 밖으로 나오니 타고
갈 작은 픽업 트럭이 벌써 숙소 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위 사진 : 시엠리엡에 머무는 내내 친절하고 따뜻하게 우리를 대해 주었던 숙소의 종업원들.

차에 오르려는데 숙소의 종업원이 작은 플라스틱 병에 든 음료수를 한 병 내밀었다.
아침에 앙코르 사원으로 향할 때마다 음료수 한 병씩을 꼭 가지고 가던 것을 챙겨주는
것으로 생각하여 물값을 주려고 하자 받질 않는다.
선물이라는 것이다.

지난 밤 내가 시엠리엡에 머무는 동안 친절히 대해 준 데 대한 감사의 뜻으로
약간의 팁과 작은 인삼차 한 곽을 선물로 주었더니 그에 대한 답례인 것 같았다. 
한사코 손사래를 치는 통에 물값 2000리엘(0.5불)을 도저히 건네 줄 방법이 없었다.

이른 새벽 낡은 픽업 짐칸에 앉아 시엠리엡을 가로질러 부두로 나가는 동안
손아귀에 들어오는 작은 플라스틱 물 한 병이 내내 마음을 훈훈하게 했다.
세계의 공통어는 영어가 아니라 사랑이고 상대에 대한 관심이라는, 누군가의 글이 떠올랐다.

트럭은 몇 군데의 숙소를 돌며 손님들을 태웠다.
열명 가까운 인원이 타자 트럭은 배가 기다리고 있을 똔레삽 호수를 향해 비포장 도로를 덜컹거리며 달렸다.
똔레삽 호수로 가는 길은 지난 며칠간 파묻혀 있던
옛 앙코르의 감미로운 환상에서 벗어나 냉엄한 현실로 돌아가는 길이기도 했다.


*위 사진 : 톤레삽 호수 주변의 가난한 사람들.

호수에 가까워질수록 길 양 옆에는 너무도 작고 엉성한 집들이 아침 햇살 속에 스산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퇴색한 잿빛 정도가 아니라 아예 검게 썩어가는 풀잎으로 지붕을
엮은 가옥들의 무너질 듯한 모습은 보는
아내와 나의 가슴 또한 무너지게 했다.


가난은 문법상의 추상명사가 아니라 그 속에서 사람이 살고 있기에 잔인한 현실인 것이다.
꾀죄죄한 모습으로 방문 앞에 앉아 지나가는 트럭 위의 우리를 향해 흔들어 주는 철모르는
어린아이들의 작은 손짓도 애처롭게 보였다. 그래도 그런 아이들의 모습이 지붕의 틈새로
빠져 나오는 아침 짓는 연기와 함께 황량하고 칙칙하게 가라앉은 거리의 분위기를 다소나마 가볍게 만들어 주었다.


*위 사진 : 혼잡스런 선착장의 모습

프놈펜까지 가는 배를 타기 위해서는 호숫가의 선착장에서 일단 작은 쪽배로 갈아타야 했다.
아마 수심이 낮아 큰 배는 접안을 할 수 없기 때문이겠지만 접안을 위한 어떤
특별한 시설이나 장비도 없는 선착장이었다.
선착장이라기보다  그냥 자연 그대로의 나룻터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곳이었다.
우기와 건기에 따라 호수의 물의 높이가 변하므로 특정 장소에 어떤 설비를 한다는 것이 무의미했을 지도 모른다.

선착장은 프놈펜으로 가는 사람들과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 뒤엉켜 혼잡스러웠다.
나룻터를 빠져나가는 물가에는 도로변에서 본 것과 같은 작은 집들이 처마를 맞대고 지어져 있었다.

  EXPRESS SERVICES TO REACH SIEM REAP(PHNOM PENH) ARE OVERCROWDED,
  AND OFTEN APPEAR TO HAVE NOTHING IN THE WAY OF SAFETY GEAR. 
  IT'S BEST TO SIT ON THE ROOF OF THE EXPRESS BOATS. TRY NOT TO SIT
  INSIDE THE BOATS, ......AS YOU WOULD HAVE LITTLE CHANCE OF SURVIVAL
  IF THE BOAT OVERTURNED. 
                                                  - LONELY PLANET -

기적소리와 함께 낡은 캄보디아국기를 펄럭이며 프놈펜을 향해 배가 출발했다.
배는 에어컨이 가동되는 선실을 갖추고 있었지만 나는 배의 지붕 위에 자리를 잡았다.
론리플래닛의 충고를 따른 것은 아니었다. 그냥 똔레삽호수를 한껏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론리플래닛의 설명과는 달리 내가 탄 배에는 안전튜브가 비치되어 있었다.

배의 나이를 알 수는 없었지만 똔레삽 호수가 건기에는 그다지 깊지 않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는다해도 안전사고를 염려해 지붕으로 가라고 권하는 것은 좀 지나쳐 보였다.

지붕에 오른 사람들은 모두 캄보디아인이 아닌 여행자들이었다.
저마다 적당한 공간을 차지하고 앉아 혹은 눕거나 엎드린 채 여행의 한가로운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자 인류문명의 고향이다.
캄보디아에서 똔레삽 호수와 강이 또한 그렇다.
그 옛날 앙코르 왕국이 똔레삽의 호수를 끼고 번영과 강성함을 누렸고
지금의 수도 프놈펜도 똔레삽 강변에 자리 잡고 있다.
모든 캄보디아인은 똔레삽과 더불어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론리플래닛에 따르면 똔레삽은 캄보디아 인구의 40%에게 생계수단을 제공하고
캄보디아 단백질 섭취량의 60%는 똔레삽의 강에서 나는 고기로부터 충당된다고 한다.
똔레삽에서 흘러내린 똔레삽강은 프놈펜에서 메콩강과 만나게 된다.
우기철에 메콩강의 수위가 올라가면 이 물은 똔레삽 강을 통하여 똔레삽 호수로 흘러든다.
이때 똔레삽 호수는 건기때보다 일곱배의 크기로 면적이 확장되고
수심도 2.2.미터에서 10미터 이상으로 깊어진다고 한다.
건기가 오면 반대로 똔레삽의 물이 메콩강으로 흘러들어가게 된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이 경이로운 순환으로 똔레삽 호수와 강은 세계에서 가장 풍요로운
물고기의 보고가 되었으며 물가에는 비옥한 농토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위 사진 : 똔레삽 호수의 저녁 풍경.

육지를 뒤로 밀어내고 배가 앞으로 나가면서 점차 바다 한가운데로 나가는 느낌이었다.
탁한 황토색 호숫물은 광활하게 펼쳐져 수평선을 만들고 있었다.
간간히 고기를 잡는 작은 배들이  옆을 지나갈 뿐 사방은 완벽하게 물뿐이었다.
아직 우기의 초입이어서인지 수심이 깊지 않은 듯 배는 간간히 스크류에 걸린 수초를
제거하기 위해 멈추어 섰다가 가기를 반복했다.

지붕 위의 여행자들이 하나 둘 제자리에 누워 잠을 자기 시작했다.
곁에 있던 카렌 KAREN이란 중년의 영국여성만이 나처럼 잠을 자지 않고 있었나 보다.
배가 미끄러지는 황토빛 호숫물에서 시선을 거두다 문득 그녀와 눈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아침에 시엡리엡에서 같이 픽업 짐칸에서 만난 사이라 구면이라면 구면이었다. 

5월 초에 영국에서 출발하여 태국-캄보디아-베트남-싱가폴-오스트랄리아-뉴질랜드-
COOKE 아일랜드- LA를 거쳐 내년 3월경에야 집으로 돌아가는 먼 길을 여행 중인
여인이었다. 우선 그 기간의 오램에 나는 놀람과 호기심을 보냈다.

이제까지 한달씩의 짧은(?) 여행만을 다녔는데 성에 차지 않아 더 늙어지기 전에
가보고 싶은 곳을 여행해보려고 회사에 요청을 하여 급여를 동결하는 조건에 사인을
하고 일년의 휴가를 냈다는 것이다.

평소에도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두 시간정도의 달리기와 사이클링을 한다는
그녀는 무엇 때문에 여행을 하느냐니까 “FEEL FREE? AND LIBERATED?"라는
물음표를 끝에 단 흔한 대답 끝에 우리가 매일 식사를 하듯이 특별한 의미나 이유를 댈 수 없는 행위일 뿐이라고 했다.
원래 자유란 ‘아무 데도 보이지 않아도 내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와 함께 숨쉬는 공기(空氣)’ 같은 것 아니었던가.

끝이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를 건너던 배는 어느 덧 배 양편으로 강변을 가깝게 거느린
좁은 강으로 들어섰다. 호수가 강물이 되어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강변을 따라 아침에 보았던 집들과 같은 모양의 집들이 남루하게 이어졌다.
너무 잔인해 보이는 그들의 가난에 카렌의 말처럼 자유롭고 해방된 느낌의 나의 여행이 죄스러워지기까지 했다.

나는 손을 흔드는 강변의 아이들을 향해 같이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리고 거기에 나의 간절한 위로와 격려를 함께 실어 보냈다.
30세 미만의 인구가 전 국민의 60% 이상을 차지한다는 젊은 캄보디아의 내일에 거는 희망도 함께 섞어서.

한 서양인이 말했다.
“THEY DESERVE BETTER THAN WHAT THEY HAVE RECEIVED.”

그렇다.
혁명과 학살, 전쟁과 쿠테타, 마약과 매춘 대신에,
앙코르의 빛나는 유산을 인류에게 남겨주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리고 설혹 앙코르가 없다고 하더라도,
같은 하늘 아래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적어도 지금보다는 나은
삶을 누릴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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