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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캄보디아

2003 캄보디아 여행기19 - ‘평양랭면’ 집

by 장돌뱅이. 2012. 4. 9.


시엠리엡에 북한(사람)이 운영하는 ‘평양랭면’집이 생겼다.

유명한 평양 옥류관의 냉면과 같은 맛이라고 한다.
원래부터 평양냉면을 좋아하는 우리 가족으로서는시엠리엡에서 만난 ‘오리지날’ 평양냉면을 외면할 까닭이 없었다.
시엠리엡에 머무는 동안 그곳으로 매일 한번씩 '출근'을 했다. 맛이 있었다.

종업원들, 그들의 말로 ‘접대원’은 친절하고 예뻤다.
인터넷에는 이곳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과 긍정적인 의견이 혼재해 있다.
긍정적인 의견은 대체로 나처럼 음식이 맛있다는 것과 종업원들이 예쁘고 친절하다는 것이다.

부정적인 의견은 가격이 비싸고 종업원들의 친절도 따지고 보면 장삿속에 다름 아니며
현실적으로 이곳의 주요 고객이 될 수 밖에 없는 “남한 관광객들의 시선이 냉면보다도
접대원 여성들에게 더 주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간판의 문구도 거슬려한다.  

     심지어 부아를 치밀게 했던 것은 간판의 문구였다.
     “아름다운 평양처녀들이 여러분들을 친절하게 봉사해 드리겠습니다.”
     평양랭면이 냉면과 함께 평양에서 온 아리따운 여성들을 상품화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면 내가 너무 지나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말 그대로 친절하게 봉사하겠다는 선전이 무슨 문제가 될까라고도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중략>...교포들과 관광객들이 미모의 여성들 때문에 평양냉면을 찾게하고
    그것을 의도적으로 방조한다면 그런 외화벌이는 여간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다.
                                      -유재현의 인도차이나여행기 중에서-


캄보디아를 얘기할 때는 객관적이고 여유로웠던 유재현의 글이 ‘평양랭면’을 얘기하면서는 좀 흥분하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아마 북한이라는, 아직 우리 사회가
능숙하게 처리하지 못하는, ‘우리의 반쪽’을 대하는 우리의 일반적인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아름다운 평양처녀들’의 ‘친절한 봉사’의 의미를 너무 ‘자본주의적’으로 해석한 것은
아닌지...... 

그들이 스스로 지칭하는 ‘접대원’이라는 말이 그것이 우리 사회의 ‘접대원(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접대라는 단어의 본래의 뜻에 충실한 말이듯이,
‘친절한 봉사’도 그대로 단어의 아름다운 뜻으로만 받아들이면 별문제가 없는 것이 되겠다.

실제로 식당 안에서 접대원들의 일이란 우리 시회의 식당 종업원처럼 손님을 접대하는
것이고 다른 점이라면 식당안의 간이무대에서 가라오케 음악에 맞춰 노래를 불러주거나
때때로 집단으로 춤을 추어 분위기를 돋우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 위 사진 : 평양랭면집의 접대원.

무엇보다 이들은 평양의 “대외봉사학원”이란 기관에서 2년동안 접대원으로서의
교육을 받았다는 것이 우리 사회와는 다른 점이다.
북한이 단순히 외화벌이를 목적으로 이런 식당을 해외에 개설한 것인지 아닌지,
그래서 얼만큼의 수익을 올리는지 나는 아는 바 없다. 다만 우리 사회에는 없는
특이한 장소이자 제도이니 특이한 그대로를 인정하여 받아들이면 되겠다.

처음 평양랭면집에 들어섰을 때 한 접대원이 안재욱의 노래 “FOREVER”를 멋지게 부르고 있었다. 
시엠리엡에 들렸다가 무슨 이유로 이곳을 찾게 되건 우리가 “특별히
긴장하거나 진지해야할 이유가 없다“는 것은 옳은 말이다.

그러나 오늘날 어디서건 북한사람을 만나면서 냉철한 이성만으로 무장한 채
꼿꼿하고 건조한 감정으로만 초지일관할 수 있는 한국사람이 얼마나 될까.
더군다나 감정의 폭이 한껏 확장되어 있는 여행자로서 말이다.
식당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부터 식사를 하는 내내 나는 얼마쯤 안타깝고 서럽기도한 묘한 감정에 묻혀 있어야 했다.


* 위 사진 : 평양 냉면

시엠리엡의 식당에는 10명의 접대원과 10명의 주방 및 관리 인원이 있다고 한다.
접대원 최향옥씨가 가져온 식단표의 음식 이름도 우리와는 다소 다른 느낌이 묻어났지만 정겨웠다. 

    돼지 세겹살(三層肉)
    신선한 남새쌀라드
    감자빵가루튀기
    계란색쌈
    낙지찹쌀말이튀기
    가지튀기즙볶음 등등.


* 위 사진 :평양소주와 새우완자튀기

나는 첫날 평양소주 한 병과 새우완자튀기를 시켰다.
평양소주는 알콜도수 25%로 고량주와 비슷한 맛이 났다.
냉면의 맛은 접대원의 말대로 평양의 옥류관 냉면의 맛과 같은지는 모르겠으나 훌륭한 맛이었다.
접대원들은 우리 귀에도 익숙해진 ‘반갑습니다’와 ‘휘파람새’를
부르기도 했지만 주로 남한 가요들을 불렀다.

다음날 일정을 위해 반병 정도만 마셨을 뿐인데도 제법 취기가 느껴진 것은
꼭 평양소주의 알콜 도수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아내도 그랬을까?  며칠 사이 얼굴을 익힌 접대원들과 악수를 하고 돌아서는 여행 마지막날,
숙소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아내는 괜스레 붉어진 눈시울을 감추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철길이 철길인 것은
      길고 긴 먼 날 후 어드메쯤에서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우리가 아직 내팽개치지 못했다는 뜻이다.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길이 이토록 머나먼 것은
      그 이전의, 떠남이
      그토록 절실했다는 뜻이다.
      만남은 길보다 먼저 준비되고 있었다

                            -김정환의 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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