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목이재를 넘으며>
*위 사진 : 선암사에서 굴목이재로 오르는 길은 온통 선경이었다.
선암사에서 너무 시간을 보낸 탓에 굴목이재를 오르는 고개길은 다소 걸음을
재촉해야 했지만 아내는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후회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해가 중천에 떠오르면서 산길엔 봄기운이 완연했다.
추위 때문에 입었던 두툼한 파커를 벗어도 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휴식을 취하는 바위 옆 언덕엔 보랏빛 얼레지가 쫑긋이 고개를 들어 보이곤 했다.
선암사를 떠난지 20분이 채 안되어 만난 편백나무 숲은 다시 우리의 걸음을
더디게 만들었다. 인공림인지 자연림인지 모르겠으나 시원스레 쭉쭉 뻗은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서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아내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숲속으로 들어가 나무를 끌어안고 심호흡을 해보았다.
가슴 가득한 청량감에 우리도 숲이 된 것 같았다.
옛길을 걸으면 늘 겸손이란 단어를 생각하게 된다. 굴목이재로 오르는 길도 피할 것을 피하고
돌아가야 할 것을 돌아가며 가늘게 이어지는 향수어린 옛길이었다.
길은 몸을 돌린 수줍은 새악시처럼 예쁘게 똬리를 틀며 고개를 향했다.
실제로 먼 옛날에는 신혼길의 가마가 이 고개를 넘어다녔다고 한다.
굴목이재는 조계산 동쪽의 선암사와 서쪽의 송광사를 잇는 해발 650미터의 나지막한 고개를 말한다.
고개 정상부는 평지로 이루어져 있어 올라오는 방향에 따라 선암굴목이재와 송광굴목이재로 불리기도 한다.
그 정상부에 보리밥으로 유명한 굴목이재 식당이 있다. 그 원래 옛날에는 주막이 있던 자리라고 한다.
*위 사진 : 굴목이재 마루. 조계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 나 있다.
된장국 그리고 젓갈과 야채와 더불어 나오는 보리밥상은 푸짐했다.
거기에 아내와 동동주로 낮술까지 곁들이니 일어서기도 힘들 만큼 배가 부풀어 올랐다.
우리는 배부름을 핑계삼아 식당의 평상에 누워 또 해찰을 부리며 빈둥거렸다.
서울로 되돌아 가는 기차시간을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머물고 싶었다.
산허리 진달래 밭 위로 봄 햇살은 눈부시게 쏟아져 내렸다.
정말 환장하게 좋은 날이었다.
<여행시기 2004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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