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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지난 국토여행기 2 - 서울 성북동과 성북동 사람들(끝)

by 장돌뱅이. 2012. 7. 2.

<간송미술관>
돈을 두고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라’는 말이 있다.
중년의 나이가 지나도록 나는 돈 벌기가 힘들다는 것만 알 뿐이지만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니 ‘정승같이’ 쓰는 것을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권력자에게 좀더 가까이 서기 위해 부정한 선거 돈을 ‘차떼기’로 넘겨주고 핏줄에게 세금 없이 재산을 물려주기 위해 온갖 편법과 로비를 저지르는 회장님이나 이미 보통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재산을 갖고 있으면서도 더 많은 욕심을 채우기 위해 피를 나눈 형제끼리 재산 다툼의 법정을 위해 돈을 쓰는 재벌이 있는가 하면,철없는 아들의 주먹다툼에 어른스럽게 따끔한 가르침을 주기는커녕, 힘깨나 쓰는 장정들을 대거 동원하여 아들을 대신해 사적인 앙갚음을 하는데 돈을 아끼지 않는 ‘끈끈한 자식 사랑’의 회장님도 있다.

1906년에 서울 장안의 큰 부호의 아들로 태어난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의 경우는 ‘정승같이’ 돈을 쓰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드문 예에 속한다.
휘문고보를 졸업하고 1929년 일본의 와세다대학을 졸업한 전형필은 물려받은 막대한 재산을 가치 있게 쓸 수 있는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민족문화재의 수집과 보호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다.
가산을 탕진한다는 비방도 그는 열정을 막을 수 없었다.

그것은 사적인 취향과 단순한 독점의 만족감을 떠난, 민족문화재의 광범위한 보호로서의 사명감을 지닌 수집이었다. 그의 안목은 갈수록 높아졌고 따라서 그가 잡는 물건들은 예외 없이 민족미의 정수들이었다. 그의 눈은 당시 탐욕스러운 일본인 수집가와 골동상을 앞지르곤 했다. 어쩌다 일본인들에게 놓친 물건이 있을 때면 있는 힘을 다하여 다시 사 오고야 마는 투쟁을 벌였다. 그것은 문화재를 통한 일제와의 대결이었다. (...) 가령 일본인에게 빼앗기게 된 국보급의 고려청자 하나를 시급히 일본에서 되사오기 위해 시골의 농장 하나를 팔아야 했던 일도 있었다.
- 이구열, 『한국문화재수난사』중에서 -

국토와 더불어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들이 일제에 의해 조직적으로 침탈되는 상황에서 민족의 혼이 스민 문화재를 보호한다는 일은 독립운동의 한 부분으로 보아야 한다.
독립운동이란 결국 민족의 주체성을 지키거나 회복하는 일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1936년 간송은 성북동 숲 속, 지금의 성북초등학교 옆에 한국 최초의 개인 미술관을 세운다. 2층으로 된 하얀 건물의 입구에는 보화각(葆華閣)이라는 현판이 걸렸다. ‘민족문화의 정화(精華)들이 수북하게 모여진 집’이라는 뜻으로 간송에게 문화재에 대한 견식과 안목을 심어준 독립운동가 오세창이 써준 글이라고 한다.

보화각은 지금의 간송미술관이다. 간송미술관은 평소에 일반인들이 출입을 할 수 없다.
매년 5월과 10월에 소장문화재를 전시할 때만 가볼 수 있다. 아내와 내가 기대감으로 기다리는 시간이기도 하다. 푸른 숲길을 걸어 들어가면 원래의 모습처럼 하얀빛으로빛나는 미술관에서 아내와 나는 겸제의 진경산수와 신윤복의 풍속화를 만날 수 있었다.
선조들의 힘차고 세밀한 붓놀림 위에 간송의 고마운 민족 사랑이 겹쳐 보였다.
그가 없었으면 결코 누리지 못할 자부심과 호사 아닌가!

<김광섭의 시, 「성북동 비둘기」>
성북동의 글을 마무리 하려니 한 가지 더 생각나는 것이 있다.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배웠던 시,「성북동 비둘기」이다. 성북동 여행길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성북동 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시일 터이니 이 기회에 한번 기억을 더듬어 보는 것도 괜찮겠다.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 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먹을
널찍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 1번지 채석장에 도루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들을 聖者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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