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 한용운의 심우장>
심우장은 만해 한용운이 생의 마지막을 보낸 곳으로 성북동의 깊숙한 곳, 좁고 가파른 골목길을 올라가야 있다. 1933년에 만해가 직접 지었다고 한다. 언덕 중턱에 북향으로 들어선 정면 4칸, 측면 1칸 규모의 일자형 목조골기와집이다. 왼편 끝이 사랑방이고 가운데 2칸은 안방이며 오른쪽 끝은 부엌이다.
방 안에는 그의 글씨, 연구논문집, 옥중공판기록 등의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심우장(尋牛莊)은 불자가 자신의 본마음을 깨달아 가는 과정을 소에 비유한 심우(尋牛)에서 유래한 것이다. 만해는 해방 일 년 전인 1944년 5월 9일 이곳에서 사망했다.
여행 중 어떤 장소를 보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을 것이다.
하나는 그곳이 품고 있는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경관은 볼품이 없을지라도 그곳에 스민 어떤 내력이나 사연을 마음속에서 음미해 보는 것이다. 심우장은 당연히 후자의 경우에 해당된다. 일제의 탄압에 철저한 비타협으로 꿋꿋하게 맞서면서도 민족문화에 한 획을 긋는 빼어나고 다양한 저술 활동으로 일생을 보낸 한용운 - 그의 행적은 아내와 내가 심우장의 작은 툇마루에 앉아 그가 직접 심었다는 마당의 향나무를 바라보는 시간을 뿌듯한 자부심 같은 것으로 채워주었다.
사람들이 각자의 자유를 보유하여 남의 자유를 침범치 않는다면, 사람의 자유와 동일하고, 저 사람의 자유가 이 사람의 자유와 동일해서 각자의 자유가, 모두 수평선처럼 가지런하게 될 것이며 이리하여 각자의 자유에 사소한 차이도 없고 보면 평등의 이상이 이보다 더 한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 「조선불교유신론」중 -
반만년의 역사를 가진 나라가 오직 군함과 총포의 숫자가 적은 이유 하나 때문에 남의 유린을 받아 역사가 단절됨에 이르렀으니 누가 이를 참으며 누가 이를 잊겠는가. (···) 가령 이번에 일본이 조선의 독립을 부인하고 현상유자가 된다 하여도 인심은 물과 같아서 막을수록 흐르는 것이니 조선의 독립은 굴러내리는 둥근돌과 같이 목적지에 이르지 않으면 그 기세가 멎지 않을 것이다.
-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1919년 7월 일제 검사의 심문에 대한 답변서로 작성됨) 중 -
나는 시인 한용운의 시를 좋아한다.
그가 남긴 시들은 내가 다 이해하기 힘든 심오함과 거대함을 지니고 있다.
교과서에 실려 시험에 자주 출제되면서 학창 시절의 우리를 무척 괴롭혔던(?) 시 한 편을 다시 음미해보자.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垂直)의 파문을 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搭) 위에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詩)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 한용운의 시, 「알 수 없어요」-
'여행과 사진 > 한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난 국토여행기 2 - 서울 성북동과 성북동 사람들(끝) (0) | 2012.07.02 |
---|---|
지난 국토여행기 2 - 서울 성북동과 성북동 사람들3 (0) | 2012.07.02 |
지난 국토여행기 2 - 서울 성북동과 성북동 사람들1 (0) | 2012.06.27 |
지난 국토여행기 1 - 남도의 땅끝으로 봄마중을 가다(끝) (0) | 2012.06.27 |
지난 국토여행기 1 - 남도의 땅끝으로 봄마중을 가다5 (0) | 2012.06.2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