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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지난 국토여행기 1 - 남도의 땅끝으로 봄마중을 가다5

by 장돌뱅이. 2012. 6. 26.

<시인 김남주 생가(生家) >

*위 사진 : 김남주 생가의 안과 밖

해남군 삼산면 봉학리의 김남주 생가에는 그의 동생이 살고 있었다.
그는 우리가 찾은 날 방문객을 위해 대문을 열어놓은 채 인근 도시로 목포로 출타 중이었다.
우리는 주인 없는 텅 빈 집 안팎을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생가 앞에 서 있는 표지판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이 집에서 우리 민족의 꿈을 가슴 가득히 담고 살다간 시인이 태어났다. 그 이름은 김남주. 시인은 1946년 10월 16일 아버지 김봉수씨와 어머니 문일님 여사 사이의 3남 3녀 중 차남이었다. 1964년 광주제일고등학교에 입학했으며, 그 뒤 검정고시를 통하여 전남대 영문과에 들어갔다. 1974년 ‘창작과비평’ 여름호에 시 ‘잿더미’ 등 7편의 작품으로 등단하였다. 1977년 해남에서 정광훈, 홍영표, 윤기현 등과 만나 해남농민회의 농민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광주에서 황석영, 김상윤, 최권행 등과 더불어 민중문화연구소를 개설 활동하였다.
1979년 10월 ‘남민전’ 사건에 관련되어 징역 15년을 받고 복역하던 중 1986년 독일 함부르크 국제 펜대회에서 석방 촉구를 결의하였고, 1988년 미국 팬클럽 명예회원으로 선정되었다. 그 해 미국 펜클럽본부 손태그 회장 등이 석방 요청을 한 바 있으며, 그 해 12월 가석방 조치로 마침내 시인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그리하여 1989년 투쟁동지이며 긴 세월 옥바라지를 맡아온 박광숙여사와 결혼해서 아들 토일을 두었다.
1991년 신동엽창작기금을 받았으며 민주화 및 민족통일에 정열을 다 바치다가 1994년 2월 13일 췌장암으로 사망하였다. 시집 ‘진혼가(1984)’ ‘나의칼 나의피(1987)’ ‘조국은 하나다(1988)’ ‘사랑의 무기(1989)’ ‘사상의 거처(1991)’ ‘이 좋은 세상에(1992)’ 등이 간행되었다. 그의 시 세계는 조국의 민주화 자주화 그리고 통일에 대한 뜨거운 염원으로 가득 차 있고 그의 언어는 폭발적인 남성언어로서 세상의 잠을 깨우는 힘으로 빗발쳤다. 여기 그를 사랑했던 내가 생가 표지문을 쓴다. (시인 高 銀)

표지문에 나와 있는 바, 김남주. 그는 혁명가이고 전사며 동시에 시인이다. 아내와 나는 그 모든 호칭 앞에 '진정한'이라든가, '순결한' 혹은 '철저한' 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떠올리곤 한다.

80년대 내내, "낫 놓고 ㄱ자도 모른다고 / 주인이 종을 깔보자 / 종이 주인의 모가지를 베어버리더라 / 바로 그 낫으로"(「낫」전문) 라거나,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자가 / 외적의 앞잡이이고 수천 동포의 / 학살자일 때 양심 있는 사람이 / 있어야 할 곳은 전선이다 무덤이다 감옥이다 / 도대체 형제의 살해 앞에서 저항하지 않고 / 누가 자유일 수 있단 말인가"(「학살」부분) 라는 그의 시를 읽으면 섬찟하면서도 어딘가 켕기듯 불편해지곤 했다.
그 '섬찟'과 '불편'의 정직한 크기만큼 내가 영위했던 일상이 허위임을 드러났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는 자신의 시처럼 감옥에 갇혔고 종이 한 장 연필 한 자루 주어지지 않는 20세기 한국의 감옥에서 '전사답게' 칫솔을 뾰족하게 갈아 우유곽을 긁어 시를 썼다. 그는 말했다. "나는 사랑하고 증오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그리고 그는 사랑과 증오의 대상을 엄정하고 거침없이 구분했다.

불과 20여 년 전까지 우리 땅에 존재했던 일들이 아주 오래 전의 기억처럼 감각적으로 멀어 이제 김남주의 시가 필요 없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럴지도 모른다. 어떤 의미로건 세상은 변했다.
그러나 김남주만큼 세상을 치열하게 사랑한 사람은 흔치 않아 보인다.
지금이 어떤 세상이건 아내와 나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그를 잊지 못할 것이다. 기억하는 것은 부정한 세상에 대해 지극히 작고 약한 우리가 오래전부터 해올 수 있었던 유일한 저항이기도 하므로.

겨울을 이기고 사랑은
봄을 기다릴 줄 안다
기다려 다시 사랑은
불모의 땅을 파헤쳐
제 뼈를 갈아 재로 뿌리고
천년을 두고 오늘
봄의 언덕에
한 그루 나무를 심을 줄 안다

사랑은
가을을 끝낸 들녘에 서서
사과 하나 둘로 쪼개
나눠 가질 줄 안다

너와 나와 우리가
한 별을 우러르며

- 김남주의 시, 「사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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