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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딸아이의 결혼

by 장돌뱅이. 2014. 9. 23.


결혼식을 마친 딸아이가 신혼여행을 떠났다.

식을 마치고 집으로 와 덕담을 나누던 친척들마저 돌아간 뒤
아내와 둘이만 남게 되자 휑해진 거실에 남은 적막함이 유난히도 깊었다.

긴장이 풀리면서 피곤함을 견디지 못한 아내가 잠자리에 들고난 후
나는 밤이 깊도록 혼자 맥주를 마셨다.
뿌듯한 성취감과 허전한 낭패스러움이, 기쁘면서도 약간은 서글픈 감정이 번갈아가며 다가왔다.

지난 두달 가까이, 정확히 말하자면 딸아이의 짐을 꾸리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잘못 길들여진 '불독처럼(딸아이의 표현)' 짜증을 달고 살았다.
사소한 일에도 울컥울컥 화를 내었다.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잘 제어가 되지 않았다.
평소 불뚝 성질을 부리면서도 오분만 지나면 이내 풀어졌던 것과는 달리
지난 두달간은 뒤끝마저 길게 끌고 다녔다. 게다가 그 짜증의 상대가 터무니 없게도 딸아이였다.
보다 못한 아내가 화를 내기도 했다.
"아니 잘 못해주다가도 시집 갈 때가 되면 잘 해주려고 하는 게 부모일 것인데
어째 당신은 거꾸로야?! 안 그러다가 도대체 왜 그래!"

모를 일이었다. 딸아이를 둔 아버지는 딸아이의 마음을 사로잡은 남자 친구 '녀석'에게
처음엔 눈을 흘기기 마련이라는 세간의 통설은 이 경우 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처음 대면을 했을 때부터 난 사윗감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성실한 모습과 차분한 심성이 명랑한 성격의 딸아이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고
직접적으로 그런 표현도 자주 했다.

그런데 본격적인 혼인절차에 들어가면서 '멍게에 달린 혹처럼(아내의 표현)'
불쑥불쑥 솟구치는 심통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그러다보니 점점 일상적인 대화까지 퉁명스러워졌다.
만약 딸아이의 붙임성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면 관계가 심각해졌을 수도 있는 정도였다.

이튿날 회사에서 신혼여행 중인 딸아이에게 메일을 보냈다.

-"이 메일을 볼 때쯤엔 솜사탕 같은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있겠구나.
축하하고 다시 또 축하한다.
그리고 나도 엄마도 기쁘고 또 기쁘다.

마지막 2개월 짜증을 달고 살아 미안하다.
앞으로는 짜증부릴 기회조차 없을 터이니
아빠의 마지막 심술로 네가 이해해라.

아무쪼록 남편 열심히 사랑하고 또 지극히 사랑 받는 삶이 되길 빈다.
주례 선생님이 말씀 하셨듯,
이제 서로 무조건 편파적으로 내 편인, 평생동지가 생긴 것 아니겠냐?
둘이서 똘똘 뭉쳐서 신혼여행보다 더 달콤한 생활을 만들어가길 바란다."-

퇴근 후에도 여전히 아내는 피곤에서 해방되지 못한 모습이었다.
밥을 안 먹었는데도 별로 배가 고프지 않다고,
외식을 권유하자 특별히 먹고 싶은 것도 없다고 했다.
뭔가 서글픈 듯 기쁘고, 허전한 듯 충만한 감정의 상태가 나와 같아 보였다.
우리가 처음으로 겪은 큰 일이었으니 그 후유증이 생소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다.
맹물에 밥을 말아 저녁을 먹고 아내는 다시 자리에 누웠다.
그러면서 사고로 자식을 영원히 떠나 보낸 부모들도 있는 터에
딸아이 시집보냈다고 이러는 건 감정의 사치 아니겠냐고 자신을 추스리기도 했다.
그런 아내를 나는 꼬옥 안아주었다.

이제 딸아이 부부는 독립된 개체로 자신들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들 앞에 놓인 일상은 때로는 가볍고 때로는 묵직할 것이다.
때로는 새롭고 때로는 진부할 것이다.
나는 그들이 그런 자잘하면서도 변덕꾸러기인 일상을,
사랑으로 -
우리가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지상에 남길 유일한 발자취인,
오직 사랑으로, 예쁘게 가꾸길 바랄 뿐이다.
결혼 30년의 아내와 내가 지나간 시간을 돌아볼 때마다 깨닫는 건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한 삶은 늘 축제이고 축복이라는 평범한 사실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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