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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중국26

지난 여행기 - 1999북경7 12. 천안문 (天安門) 천안문(티엔안먼)은 우리가 9시 뉴스 시간에 북경 특파원이 소식을 전하는 뒷 배경 자주 나와 가보지 않아도 이미 낯익은 곳이다. 한가운데에 거대한 마오저뚱의 초상화가 걸려있고 그 왼쪽에는 '중화인민공화국만세', 오른 쪽에는 '세계인민대단결만세'라고 붉은 바탕에 흰 글씨가 씌여 있는 곳이다. 천안문은 명나라 영락(英樂)15년(1417)에 건설되었는데, 지어질 당시에는 승천문(承天門) 이라고 불렀다한다. 이후 전화로 소실되었다가 1651년 청나라 때 재건되었으며 이때부터 천안문이라고 불렀다. 청나라 때 천안문은 황제가 조령을 발표하던 곳이며, 1911년 12월 25일 중국의 마지막 황제 부의가 퇴위조서를 발표한 곳이고, 1949년 10월 1일 모택동 주석이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을 선.. 2017. 9. 1.
지난 여행기 - 1999북경 6 10. 한 밤의 은밀한 유혹 따르릉, 따르릉, 따르릉. '무슨 전화지?' 잠결에 손을 뻗어 전화를 집어 올렸다. 동시에 이곳이 베이징이고 이 한 밤중에 내게 전화 올 데가 없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헬로우?" "··· 맛싸지?" 뜻밖에 여자의 음성이었다. "??? ··· 헬로우?" 영문을 알 수 없어 다시 물었다. "··· 맛싸지? ··· 맛싸지?" 목소리는 더 느끼해졌다. 순간 알아챘다. 은밀한 유혹이었다. 객실마다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상대가 남자일 경우 추파를 던진다는······ 그녀는 내가 무슨 말을 하건 낮은 목소리로 '맛싸지'라는 말만 반복했다. 아마 영어가 안 되기 때문일 것이고 그 말만으로 의미 전달이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가족과 함께 머무는 방에 그것도 나름 .. 2017. 8. 31.
지난 여행기 - 1999북경5 8. 북경오리구이(北京烤鴨) 만리장성에 오르는 일과 북경 오리구이(베이징카오야)를 먹어 보는 일을 북경에 가면 해야 할 일 두가지라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만리장성이야 이견이 있을 수 없겠지만 북경오리? 아마 북경오리의 위상을 높이려는 수사(修辭)일 수도 있겠다. 우리는 북경오리의 원조라고 맣는 "전문 전취덕고압점" 前門 全聚德烤鴨店으로 갔다. 1864년에 창업하여 무려 13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곳은 치안먼(前門) 앞의 치아먼따지에(前門大街)에 있다. 이 식당은 오늘날 대중적인 음식점이 되었지만 몇 십 년 전만 해도 그렇게 쉽게 보통 사람들이 들어가 먹을 수 있는 오리구이 집이 아니었다고 한다. 철저한 예약제로 운영하던 이 집은 예약도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라 이 집에서 설정한 일정한 손님 기.. 2017. 8. 31.
지난 여행기 - 1999북경4 6. 천단공원 (天壇) 호텔 체크인을 마치고 고궁,만리장성과 더불어 북경을 대표하는 천단(티엔딴)으로 향했다. 북경엔 구꿍(古宮,흔히 말하는 자금성)을 중심으로 남북으로는 천단과 지단, 동서로는 일단과 월단이 대칭을 이루고 있다. 각 단에는 각각의 신이 모셔져 있다. 천단에는 하늘의 신이 모셔져 있다. 천단은 명,청 양대의 황제들이 하늘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중국의 황제는 자신이 하늘의 아들로서 하늘의 명을 받들어 인간을 다스린다는, 그래서 자신의 권한이 신성한 것이라는 의식을 백성들에게 심어 봉건체제를 유지하고자 한 것이다. 황제가 제사를 위해 천단으로 이동할 때 백성들은 부복하여야 하며 고개를 들어 황제를 쳐다보면 그 대가는 바로 죽음이었다고 한다. 우리는 천단공원의 남문으로 들어가 기년전.. 2017. 8. 30.
지난 여행기 - 1999북경3 4. 중국 국내선 비행기 타기 먼저 1984년에 중국을 여행한 한 서양 아저씨의 경험담을 들어보자. 물론 15년전의 이야기이니 지금은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우리처럼 중국도 맹렬히 변화하고 있는 중이므로. 나는 공항에 (출발 예정시간) 3시간 전에 도착해야만 했는데 비행기는 5시간이나 지연된 후에야 출발했다. 비행기는 낡은 러시아 제트기로, 금속으로 된 껍데기는 금이 가고 찌그러져서, 쓰다 버린 담배갑의 은박지 같았다. 좌석은 너무 좁게 배치되어 있어 무릎이 아팠고 다리에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였다. 좌석은 꽉 찼으며 사람들은 모두 무거운 짐을 들고 탔다. 그래서 머리통을 깰 만큼 큰 짐짝들이 머리 위 선반에서 떨어졌다. 비행기가 이륙하기도 전에, 사람들은 머리를 숙이고 손을 맞잡은 채 토하기 시작했.. 2017. 8. 30.
지난 여행기 - 1999북경2 2. 먹어야 산다 간 밤에 손님과 마신 술 때문에 배가 더부룩했다. '우정이 깊으면 단숨에 마셔야 한다'는 중국말이 있다는 선배의 충고를 따라 호기를 부리며 수없이 간뻬이(干杯)를 했던 것이다. 밥 생각은 없었지만 나는 한 손으로 배를 쓸며 호텔 식당으로 내려갔다. 그 때 나는 제품 수출 관련하여 중국을 방문 중이었고 하루종일 장거리 이동을 하면서 중국인들과 협상을 계속하려면, 그리고 저녁 때 마다 퍼부어지는 독한 중국술 세례를 견디려면 식사라기 보다 안주를(?) 조금이라도 미리 먹어 두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아침으로 오렌지 쥬스 한 컵과 달걀 후라이 2개를 먹으려고 했다. "오렌지 쥬스 앤 투 후라이드 에그스" " ...???....셔머?" 그러나 주문을 받으려고 다가온 남자 종업원에게 나의 주문.. 2017. 8. 29.
지난 여행기 - 1999북경1 여행기간 :1999년 10월 ============================================================== 1. 일생을 살아도 알 수 없는 땅, 중국 참으로 큰 나라이다. 국토의 면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그렇다. 고대 시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역사에서 중국을 빼고 무엇을 얘기할 수 있을까? 시인 고은은 '그 곳에서 일생을 살아도 알 수 없는 땅'이라고 중국을 말했다. 일생을 살아도 알 수 없을 터인데 사나흘 머무르고 중국에 대하여 이렇다 저렇다 함부로 말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이런 위험은 중국보다 작은 나라의 경우에도 해당되는 것이지만) 우리나라 남자들은 군대 3년 동안의 이야기를 30년 동안 울궈 먹는다고 한다. 남들이 한 경험까지 빌려와서 자신의 이야기로.. 2017. 8. 29.
중국 상하이 출장 상해는 내가 제일 처음 가본 중국이다. 90년대 초반이었다. 앞선 출장 선배들의 무용담을(?) 통해서 당시에도 이미 중국은, 특히 경제특구벨트에 해당되는 해안도시들은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사회와 별로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직은 이영희 선생님의 저서 『전환시대의 논리』,『우상과이성』,『8억인과의 대화』등을 읽은 여운이 남아 있던 터라 "홍교국제공항(虹桥国际机场)"에 비행기가 미끄러져 내릴 때는 미지의 사회에서 헤쳐나가야 할 업무의 중압감 한편으로 제법 가슴이 두근거리는 설렘도 느껴보았다. 그 당시에 중국여행을 위해서는 출발 전 외무부에서 "특정국가여행"이라는 허가 직인을 여권에 받아야 했고, 속성 비자를 받기 위해 멀리 홍콩을 경유하며 하루를 지내야 했던 만큼 중국이라는 '금단의.. 2016. 3. 29.
중국 양저우 출장 2박 3일의 중국 양저우(扬州) 출장. 가고 만나고 오고 - 여행이 아닌 출장은 매번 이렇게 짧고 단순한 일정이었으면 좋겠다. 양저우를 가기 위해선 먼저 난징(南京)으로 가야했다. 처음 경험하는 중국 동방항공으로 두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거기서 차로 한 시간 남짓을 달리면 되었다. 내게 있어 중국 출장의 전성기는 20여 년 전이었다. 비자 이외에 '적성국가여행' 허가를 받아야 할 때 시작하였다. 그때는 직항편이 없거나 다양하지 않아 서해 바다만 건너면 되는 가까운 목적지를 가기 위해 멀리 홍콩으로 에두르기도 했다. 중국 하면 "개방"이니 "경제특구" 등의 말들이 대화 속에 자주 거론되던 시기였다. 그 시절 중국은 이른바 "비동시적이고 비동질적인 것들이 동시에 혼재"하던 모습으로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2015. 8. 3.